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Oct 04. 2022

정말 무뚝뚝해도 괜찮을까

너무 무례하신 거 아닌가요

아침 7시 6분, 매일 같은 출근길이다. 지하철 대화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출발역이 종점인 대화역에서 종착역도 종점인 수서역이다 보니 늘 앉아서 출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한 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지만 앉아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그리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긴 거리를 서서 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오늘도 난 대화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덜 부대끼는 의자 가장 끝자리에 앉았고,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출근 루틴대로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사소한 고민을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에 머릿속에 꼬물꼬물 올라오는 기억 하나가 튀어 올랐다. 며칠 전 열심히 썼던 글 하나가 편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무리가 되어서 큰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메일을 받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오마이뉴스 기사에 채택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브런치의 글처럼 잔잔한 감동이나, 작은 공감을 주는 이야기와는 다른 결의 이슈가 되거나, 많은 사람의 공감이 필요한 내용이 있어야 했다. 한 번의 수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사로는 쓰기 어렵다는 편집자의 쪽지를 받고서 수정 기사 보완을 포기해야 했다.

  

그 생각이 떠올라였을까. 한 동안 지하철에서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동기부여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오늘은 무언가 쓰고 싶어서였는지 갑자기 스마트폰 메모장을 띄웠다. 그렇게 뭐래도 쓰고 싶은 생각에 난 스마트폰 메모장을 두드리며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난 한참을 글을 쓰다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스마트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시선을 움직였다. 그렇게 옮겨간 시선 한편 내 발 옆에 지팡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지팡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팡이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위쪽으로 차마 시선을 들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내 시선은 그래도 한쪽 마음이 불편한지라 정확한 연령대를 확인하고자 곁눈질로 슬쩍 옆을 바라봤다. 칠십이 훌쩍 넘어 보이는 어르신 한분이 불편한 지팡이만큼이나 흔들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서있었다. 처음엔 출근 지하철 붐비는 3호선에 탄 어르신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직 한시 간 이상을 더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 그 긴 시간을 일어서서 갈 생각을 하니 조금은 끔찍했고, 전날 회식 이후의 출근길이라 몸도 많이 무거웠다. 마지막으로는 양쪽 끝 경로석 쪽으로 타시면 충분히 앉아가실 법한데 굳이 중간으로 만원 지하철 탄 어르신이 조금은 얄미웠다. 그렇게 한 두정거장 가면 내리지 않을까 싶어 잠깐 못 본 체해보려고도 했지만 마음이 불편해 결국 다음 정거장에서 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이 쪽에 앉으시겠어요?"

어르신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눈을 마주치며 자리를 권했던 난 어르신의 다음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손으로 나를 밀쳐내던 그는 앉으면서까지 내겐 고맙다는 눈인사 한 번 없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당당함으로 자리에 몸을 밀어 넣었다. 고맙다는 인사보다는 그가 날 잠시 바라본 시선에는 '이제야 비켜주냐'는 원망과 짜증 섞인 눈빛이 가득 담긴 모습이었다.


자리를 양보하고도 무언가 찜찜함에 잠시 자리에 앉은 노인분을 쳐다봤고, 그렇게 앉아서 스마트폰을 꺼내 두드리는 그에게서 '괴팍함'이라는 단어로 내 머릿속에 노인을 매조지하고서야 난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잠시 언짢았던 마음을 정리하고 메모장에 써 내려가던 글을 멈췄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오랜만에 서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잠시 책을 들여다보던 날 다시 한번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내 한쪽 발을 무언가가 두드리고 있었고, 처음엔 그냥 흔들리는 지하철이라 누군가의 발이 부딪쳤나 싶었지만 반복적으로 내 발을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두드리는 느낌이 드는 내 발로 시선을 내리는 순간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의아한 행동으로 잠깐 책에 머물던 시선을 발아래에 머물게 했다. 내 발을 반복해서 두드리는 건 조금 전 자리를 양보했던 노인의 지팡이였고, 두드리는 이유는 자신의 발 앞으로 너무 밀려든 내 발이 거슬려서 비키라는 추임새였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서있는 사람의 발은 자유롭지가 않다. 밟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앉아있는 사람들이 양보하며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노인은 자신의 발 앞에 바짝 붙어있는 내 발이 거슬렸고, 자신의 감정을 지팡이로 표현하며 내게 비키라는 말보다 더 기분 나쁜 행동을 보였다.


순간 헛웃음이 났지만 난 조금 움직여서 그의 발 앞에서 내 발을 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발을 빼니 지팡이로 두드리는 노인의 행동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만원인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했던 난 오늘따라 한 노인의 무례함에 나의 도덕적인 잣대까지 흔들릴까 걱정이 됐다.


얼마 전에 읽었던 이케다 준의 『무뚝뚝해도 괜찮습니다』에서는 '상냥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생각한다'라고 했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생긴다. 즉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면 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했다. 약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내가 마음에서 주고자 할 때 결정한 것이지 받아들이는 사람이 당연히 받으면 상처가 되는 법이다. 상처가 걱정되면 차라리 무뚝뚝한 무관심이 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당연하지 않게 생각되는 것들조차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서 양보하고, 호의를 베푸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무례함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상처를 입지 않을 만큼 단단하거나 견고함이 없으면 차라리 무뚝뚝함을 무장한 무심함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 단단하거나 견고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조금은 무뚝뚝한 나를 표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오늘 같은 날엔 말이다.



이전 11화 살아보니 학교 성적이 꼭 인생 성적은 아니더구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