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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26. 2023

옷 깃이 스쳤다고 전부 인연은 아니다

관계는 강도보다는 빈도다

 "형, 잘 지내셨죠? 늦은 시간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해요"


음주 한 잔에 용기 내 과거 친했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안 하고 산지 2년이 되어간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전화를 걸면서도 자주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에 울리는 벨소리를 뒤로하고 끊을까 고민도 했다.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은 지인도 갑작스러운 전화에 조금은 당황한 목소리였다.


 "어? 이게 얼마만이야. 그럼 난 잘 지내지. 김 부장, 아니 김 이산가? 잘 지내지?"


어색함과 상대의 당황이 느껴지자 어느새 올랐던 취기마저 깨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전화를 했으니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안부에,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까지 몇 마디를 건넸다.


 "회사는 괜찮죠? 회사명 바뀐 것도 몰랐네요. 형수랑 애들은 잘 지내죠?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 대화를 끝으로 이어갈 대화가 없음에 스스로 더 당황했다. 아무리 술 한잔의 용기를 빌었다고 하지만 서로 쌓았던 세월이 있는데 잠시 짧은 세월의 벽에 현타가 왔다. 짧은 통화였지만 반가운 마음은 작았고, 늦은 후회만 크게 다가왔다.   


처음 지인을 알게 된 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미국 출장길에서였다. 서로 다른 회사에 다녔지만 미국의 한 회사 본사에서 함께 교육을 들었다. 그렇게 인연은 시작됐고, 한국에 와서도 꾸준히 연락하며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했다. 지인과 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연락하며 지냈었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은 모임을 가졌고, 카톡이나 전화로 소통은 기본이었다. 생일이나 기념일엔 카톡 선물에 늘 서로를 응원하며 지냈었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간에 소통도 줄어들었다. 내 업무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소원해졌다. 과거만 해도 업무적으로도 할 얘기가 많았었는데 바뀐 업무로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며칠에 한 번씩 하던 톡도 몇 달로 바뀌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하던 전화도 몇 달에 한 번씩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지인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긴 시간을 소통하며 이어온 관계도 몇 년을 소원하게 지냈더니 당장 오늘처럼 짧은 통화조차도 어려움을 느꼈다.

살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자주 소통하고, 연락하지 않으면 그 옷깃 스친 인연도 그걸로 끝이다. 실제 대면으로 인사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든 관계는 시작이 있어야 관계 형성도 되고, 형성된 관계도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이어지기 마련이다.


관계는 스친 인연정도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인연은 그냥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정도가 전부다. 더 이상의 진전은 기대가 어렵다. 호감을 갖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하고,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표현해야 한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알 수 없다.


꼭 말로 해야 아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작 오해는 먼저 하는 타입이다. 할 말은 꼭 해야 하고, 귀찮더라도 감정은 표현해야 제 맛이다. 단순히 어제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만날 인연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관계를 시작하고, 형성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선택, 결정 그리고 노력이 필요함은 불변의 진리다.


10년을 다닌 회사에서 2년 전 현재 회사로 이직했다. 이직 전 사무실 개인 짐을 정리했다. 더불어 10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명함도 함께 정리했다. 10년이나 다녔던 회사여서 그런지 명함 숫자만 해도 오륙백 개가 넘는 것 같았다. 한두 번 만났던 고객부터 여러 차례 일했던 협력업체 직원, 동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명함통에 갇혀 있었다.


명함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른 사람부터 명함만 봐서는 얼굴이나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 많은 명함들 중에 스마트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은 고작 오륙십 명밖에 되지 않았다. 10 퍼센트 남짓 나와 관계가 형성되었거나 현재까지 이어진 사람들이다. 9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며 정리될 인연들이지 싶다. 고작해야 10년을 다녔던 회사에서 만난 인연이라고는 일 년에 다섯, 여섯 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10퍼센트의 인연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관계는 시작만큼이나 유지도 어렵다. 특히나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인연은 많은 시작이 있지만 꾸준함은 어렵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꾸준히 관계가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각별한 파트너십이나 동료애로 서로 간의 이해관계와는 별개의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할 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형성되고 이어지는데도 관계의 선택과 유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듯하다. 단순히 한 순간의 호감만으로는 긴 시간 관계를 유지하기는 무엇보다 어렵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복잡하지 싶다.


잡아놓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속담이나 관용구는 아니지만 연애때와 달라진 결혼 생활을 꼬집어 아내들이 얘기하면 못난 남자들이 곧잘 쓰는 표현이다. 이는 남녀 관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소원해지기 시작하는 관계에서 빗댈 수 있는 말이다. 관계를 꾸준히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자주 소통하고, 연락하는 사이여야만 발전되고,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계는 강도보다는 무엇보다 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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