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Jan 03. 2024

고작 1분이면 된다고요?

첫인상이 주는 불편하고, 강렬한 진실

'저기요,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선배, 동기들과 어울려 간 주점에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야 떳떳하게 신분증을 제시했지만 동기들보다 한 살 어린 나로서는 신분증 검사가 곤욕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난 빠른 년생이었다. 동갑내기로 알고 있는 동기들이 아는 게 그냥 불편하고,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 일은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휴학을 여러 차례 한 덕에 그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동년배인데 직장 연차는 한, 두 해가 빠른 선배뿐만 아니라 늦은 학번의 직장동료까지 불편함은 줄지 않았다. 동년배 선배가 한참 후배 취급을 하거나 나보다 어린 직장동료가 말을 함부로 할 때면 묻지도 않은 나이 설명에 구차해지기 일쑤였다. 가끔 내 인내에 한계가 올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고민은 오히려 다른 욕구와 불만으로 번졌다. 동안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변의 부러움이나 칭찬은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업무적 역량과 직책을 무시하는 것 같은 태도만 신경 쓰였다. 그래서 매번 처음 사람들을 만나거나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경계하는 자세를 보이곤 했다. 어릴 적 가졌던 그 경계심이 시간이 지나도 한 동안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이십, 삼십, 사십 대는 그렇게 지났다.


'세월을 제대로 맞았어', '못 본 사이 고생 많이 했나 봐'


얼마 전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했던 말들이다. 최근 일, 이 년 사이에 부쩍 듣는 얘기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대놓고 놀렸다. 선, 후배 가릴 것 없이 이젠 나이 먹은 태가 난다는 말을 인사처럼 잊지 않는다. 자꾸 들어서 그런지 거울을 보면 나조차도 언제 이렇게 늙었나 싶을 정도다. 그땐 몰랐지만 '동안'이란 말이 나이가 들면서 듣고 싶은 말이 될 줄 몰랐다.


그 시절 내게 건넨 말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왜곡된 사고 때문에 항상 자기 검열을 받아야 했다. 최근에 와서야 사람들이 건넨 '동안'이라는 칭찬의 말이 친근함의 표현이나, 자연스러운 관계 발전을 위한 멘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젠 제 나이로 보이다 못해 가끔 더 들어 보인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정말 요즘 마음이 '아! 옛날이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이지 싶다


얼마 전 딸아이의 부탁으로 늦은 시간 집 근처 편의점에 음료를 사러 나갔다. 편의점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찾았지만 찾던 음료수는 없었다. 음료수를 찾을 요량으로 계산대로 시선을 옮겼다. 옮긴 시선이 멈춘 자리에는 60대가 훌쩍 넘어 보이는 직원인지 사장인지 모를 분이 서있었다. 조금 더 보면 70대까지도 보일 듯싶었다. 그런 그에게 난 찾는 음료의 재고 현황을 물었다. PC로 재고를 확인 후 그는 창고에서 음료를 찾아왔다. 음료는 여섯 개짜리가 한 묶음이었고, 70대 어른이 한 손으로 들기에는 조금 무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이 한 손으로 음료를 들고 왔고, 빤히 보는 내가 겸연쩍어서인지 날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제가 이래 봬도 힘이 워낙 좋아서요"

 "하하, 무척 건강해 보이시네요"

나이가 있어 보이는 그의 친근함이 싫지 않아 난 그의 농담에 맞장구를 쳤다.

  "저기 혹시 교장 선생님 아니세요"

  "네~? 아닌데요"


하지만 내 농담에 돌아온 그의 뜬금없는 답변 때문에 난 한 번 외모 고민에 빠졌다. 그날 이후 처음 본 동네 편의점 직원 시선에 비친 내 얼굴 어딘가에 있을 교장 선생님의 인상을 찾곤 한다. 난 요즘 그런 이유로 평소보다 더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안 그래도 관리 안 한다고 가끔 잔소리하던 아내는 이젠 나하고 같이 못 다니겠다고까지 말한다. 내일부터 일일일팩이라도 해야 할지 이젠 '노안' 고민을 해야 하나 걱정이다.

'보자마자 이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첫눈에 반했죠. 제 눈엔 이 사람밖에 안보이더라고요'

아쉽게도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얘기는 아니다. 달달한 로맨스 장르 드라마나 첫눈에 반한 연인들 간에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흔치는 않지만 남녀 관계에서는 간혹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처음 주었던 인상이 강렬했다는 의미다.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다.


사람들이 만남에 있어서 처음에 주는 인상은 중요하다.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팀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매력이나 호감도, 신뢰도, 공격성 등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0.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간과하기 어려운 첫인상이 아주 짧은 찰나에 결정이 된다는 말이다. 많은 오류는 있지만 의외로 첫인상이 주는 영향은 꽤 크다.


첫인상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70퍼센트가 지원자의 첫인상을 보고 면접에서 감점처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마다 주는 첫인상은 짧지만 강렬하게 남는다. 짧은 말에서도, 자연스러운 동작에서도, 때로는 외모에서도 첫인상은 상대에게 많은 걸 주입시킨다. 따라서 자신의 언행, 태도 등을 평소에도 짚어보고, 체크해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개인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면접자리, 미팅, 인터뷰 등 타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차고 넘칠 것이다. 따라서 처음 만나는 자리의 중요도에 따라 자신이 줄 수 있는 처음 인상을 만들 필요도 있다. 관계도 종종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한 결혼정보 회사의 정보에 따르면 60퍼센트 사람의 답변이 맞선자리에서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이내라고 했다. 5분 이내라고 답한 사람도 20퍼센트가 넘는다. 반대로 여러 번 만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응답자는 고작 1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보여주는 결과만큼이나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주는 인상은 생각보다 빨리 결정된다.


함께 일한 후배의 성실한 업무 태도, 같이 수업 듣는 동기의 열정적인 수업 참여, 처음 만난 어색한 자리에서 뛰어난 화술과 에티켓 있는 태도를 보인 이성의 모습 등 사람을 기억하는 데는 다양한 상황과 환경이 있기 마련이다. 굳이 첫인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초기 모습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처음주는 인상, 태도에서부터다. 단순히 아주 짧은 시간으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짧지만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는 것이 바로 첫인상이다. 사람사이 관계를 맺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릴 수도 혹은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이 날 수도 있다. 다만 그 관계의 시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첫인사, 첫 만남이고 그 처음 만남에서 뺄 수 없는 것이 첫인상인 것은 변함이 없다.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될 듯싶다.


이전 08화 옷 깃이 스쳤다고 전부 인연은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