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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16. 2024

아내가 울었다

가족 관계에는 정답과 오답이 없는 대신 해답은 있다

 "다녀왔어요~"

 "네"


주방에서 저녁 준비하는 아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짤막한 대답뿐이다. 오늘도 아내는 저기압이다. 벌써 삼일째다. 아내의 기분이 왜 그런지 알지만 며칠째 집안 분위기가 같아서 걱정이다. 오늘은 어떻게든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을 제시간에 함께 하려고 부지런히 퇴근해 왔지만 요즘은 부쩍 아내와 둘이 마주 앉아 먹는 일이 많다. 대학 다니는 아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고등학생인 딸도 학원시간 때문에 먼저 식사하는 날이 많다. 오늘도 딸아이는 학원시간 때문에 먼저 식사하고 내가 퇴근할 무렵 학원을 나섰다. 식탁에 앉아있다 딸아이가 현관을 나가자 금세 아내에게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한숨인지 막힌 숨을 토해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내는 금세 표정을 풀고 말문을 연다.


 "눈에 보이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고, 신경을 쓰면 입을 닫아 버리고,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방학하기 전만 해도 좀 바꿀 거 같이 얘기하더니 아직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고민일 것이다. 포기하기에는 이르고, 공부를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 자녀를 옆에서 보기는 부모 입장에서 너무 힘이 든 일이다. 딸에게 바라는 건 나중에라도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오늘을 열심히 보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하라고 해도 본인이 안 하면 어쩌겠어요. 할 만큼 했잖아요. 괜찮아요"


아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더 이상 할 말도, 보탤 말도 없었다. 그냥 아내가 마음 다치지 않게, 딸과 관계 회복이 빠른 시간에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로할 수밖에. 하지만 내가 한 괜찮다는 말 때문인지 아내의 표정은 무거워졌고 눈가가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나 갱년 긴가 봐요. 편하게 마음 다잡으려고 해도 우리 지수 저럴 때마다 속이 상해서... 쟤 때문에 '안 하겠다는 놈 안 시킨다'는 우리 교육철학도 다 깨고. 지금 제일 신경 써야 할 시기에 쟤는 사춘기가 왔나 봐요. 최악이라고 하던데. 수험생 때 사춘기 오면. 얘기하려고 마주 앉았다가 본인 불편한 얘기만 나오면 표정부터 바뀌니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의 눈물까지 보니 더 마음이 쓰였다. 갑자기 딸아이에게 본전생각이 났다. 정말 큰아이 낳고 4년 만에 태어난 딸이라 아내가 얼마나 이뻐했는지 너무 잘 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만은 아내에게 딸아이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딸이었다. 세상 자기 자식 안 예쁜 부모 있겠냐만은 아내는 늘 따뜻한 엄마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아이에게 지극 정성이었다. 그래서인지 종종 딸이 약한 소릴 할 때면 자기가 너무 싸고 키워서 더 그런가 싶다는 얘기도 종종 할 정도다. 그랬던 딸이 이렇게 엄마 속을 긁어대니 옆에서 보는 내가 '본전' 생각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잠시 뒤 아내는 울음을 그쳤고 조금 진정된 모습이다. 그 사이 아들이 귀가했다. 학기를 마치고 방학인데도 아들은 요즘도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곧 다녀올 미국 연수 때문에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짧은 학교 연수지만 4월 군입대로 아마 더 마음에 여유가 없어 보인다. 본인의 마음은 그럴지라도 우리에겐 학기가 끝났으니 시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기 중에는 힘들지만 방학을 했으니 군대에 가기 전까지 하나뿐인 동생을 도와줬으면 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만 갖고 있었던 바람일 뿐 아들은 협조할 의사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지만 오늘부터 상황이 달라진 듯싶다.


"다녀왔어요. 엄마 울었어? 눈이 왜 이렇게 부었어요?"

"응. 너 오기 조금 전에 네 엄마 울었어. 지수 때문에. 오죽 속상하면 울음이 터졌겠냐. 전부터 얘기했지만 미국 가기 전까지라도 지수 지금 방학 계획 잡는 거 같이 좀 봐주면 안 될까 아들. 부탁해?"


잠시 뒤 딸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아들은 동생에게 옷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라고 말했다. 어쩌려고 저럴까 걱정도 됐지만 아들이 팔을 걷어붙인 이상 전적으로 아들을 신뢰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설마 했지만 아들은 한 시간을 넘게 쟤 동생을 붙들고 당장 내일 계획부터 시간 활용법까지 예를 들면서 세세히 알려줬다. 처음엔 딸아이도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오빠가 하는 얘길 꼼꼼히 체크하며 듣기 시작했고, 중간중간 궁금한 점도 묻기 시작했다.


 "스케줄 앱 사용해서 시간 활용하고, 그날 그날 할 것들 앱에서 메모해서 하나씩 할 때마다 체크해. 그렇게 체크한 메모하고, 앱에서 실행된 공부시간도 당분간은 저녁마다 엄마에게 확인받아"


다행히 딸은 다음날부터 함께 짠 계획대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 부모인 우리말보다 싫은 내색 해도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아들의 '약발'이 빛을 발하는 듯싶다. 다행히 아들은 다음날도 늦은 저녁에 딸아이의 스케줄을 확인해 주는 열의를 보여줬다. 아직까지 불만 섞인 표정이긴 하지만 조금은 딸아이 바뀐 모습에 '아들 찬스' 쓰기 잘했다 싶다. 아내도 이젠 편안해진 표정이다. 당분간은 이 평화에 금 가는 소리가 없길 바란다.


일타삼피!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일이 세 가지 문제를 풀어낸 느낌이다. 딸아이로 인해 흘린 오늘 아내의 눈물이 바로 그랬다. 그중 하나가 답답했던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준 쉼표가 되었고, 그 두 번째가 아내 마음 아픈 걸 싫어하는 아들이 동생을 케어하는 이유가 됐고, 마지막으로 무기력했던 딸아이가 조금은 마음을 잡은 듯싶었기 때문이다.  


일어날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생길 문제라도 피해 갈 수 있다면 피해 가는 게 좋다. 또 어차피 생길 문제라도 돌아 돌아 천천히 오래 걸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주체는 나 자신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관계 형성에 연결고리들이 존재한다. 이런 연결고리에 있는 사람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해결을 하던가, 잘라버리던가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지만 일반적인 관계와는 다르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선택지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잘라낸다고 자를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타인과의 서스름 없는 손절과는 다른 사이임을 너무도 잘 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를 두라고 했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그럴 수 없는 예외적 존재이다. 그래서 더 모질지 못하고, 더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다. 다른 관계의 사람들에게 가져간 잣대를 자식에게는 가져다 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는 그래서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다만 해답만이 존재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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