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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30. 2024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지만 그래도 아쉬울 땐

고쳐 쓰지 못하는 사람과 일할 때 필요한 자세

'과장님, 같은 실수를 도대체 몇 번째 하는 겁니까? 입사한 지 일 년이 되어가는데 혼자 고객사를 보내는 게 이렇게 불안해서야 아래 후배들 보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경력직으로 충원한 동료가 일 년째 업무 적응을 못한다면 관리자로서 어떤 기분이 들까? 수개월동안 숙련의 시간도 줘봤고, 별도 업무 지원을 위한 과제도 줘가며 기다려줄 만큼 기다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직접 면접 보고 뽑은 동료라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 잦은 실수로 지원했다 하면 고객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며칠 사이 그 동료를 뽑았던 면접 때 커리어가 짧아서 아쉽게 2차 면접에서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던 다른 지원자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다.


실수한 고객사의 업무 복귀도 해봤고, 유사한 내부 과제를 통해 기술적 스킬 향상을 기대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A 과장의 실수는 변함이 없었고, 매사가 진지하지 못해 오히려 더 내 화를 돋웠다. 처음엔 A 과장의 밝다 못해 장난스러운 태도와 모습이 자칫 무거워지거나, 딱딱해질 수 있는 팀 분위기를 좋게 한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A 과장 태도와 모습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가 없었고, 오히려 반성과 숙려가 필요한 시간조차도 장난스러운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지만 고쳐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화도 내봤고, 술도 먹으며 부탁도 해봤다. 사정도 해봤고, 자존심도 긁어봤다. 얘기한 후 잠깐은 바뀐 것 같이 아니 바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잠깐일 뿐 다시 원점으로 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짧게 끝날 것 같던 관계였음에도 그렇게 몇 년을 함께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내가 부서 전배를 시킨 건 아니지만 다른 일로 그와는 그 이후 같은 부서에 근무하지 않았다.   


다른 부서로 전배 받은 A과장은 처음에는 비슷한 업무 태도로 걱정을 끼쳤지만 시간이 가면서 잘 적응한 것 같았다. 오히려 같은 부서에 있을 때보다 다른 부서에 가서 A과장과 난 더 많은 인사를 주고받은 듯싶다. 표정은 더 밝아졌고, 업무에서도 불편함이 없는 듯싶었다.


몇 년 뒤 A과장도 나도 회사를 떠났고, 지금은 같은 회사에 있지 않지만 가끔씩 소식을 전하곤 한다. 함께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해 이직도 두 번이나 했다고 한다. 지금 옮겨간 회사에서는 관리자 직책을 받고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안 보니 알 수야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그래도 한때 함께한 동료가 잘 지낸다니 기분만큼은 좋다. 옮겨간 회사에서 A과장은 고치지 않아도 되거나, 맞춰줄 수 있는 관리자를 만났거나가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나만이 A과장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역량은 고려치 않고 자신의 기대치만을 고집하며 따라오지 못하는 동료, 후배에게 부담을 줬던 관리자인 내게도 많은 불편함을 가졌을 듯싶다. A 과장당시 자신의 관리자였던 내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누군가를 고쳐 쓰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가 맞춰보는 것이 내 마음도 편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의 생각이 아닐까. 물론 일로 만난 사이끼리 쉽지는 않겠지만.  

 

한창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의 딸아이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얼마 전까지 방황했었다. 남은 학창 시절이라고 해봤자 고등학교 2년, 아니 정확히는 3학년 1학기까지니 1년 반이 고작이었다. 어르기도 해 보고, 붙잡아놓고 사정도 해봤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도 아쉽고, 부모라는 주관적 관점을 빼고서라도 먼저 살아본 인생선배로서도 딸의 무기력한 생활 태도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고쳐 쓰지 말아야 된다는 말은 늘 했지만 또 한 번 난 딸의 태도를 고쳐 쓰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긋나는 건 아이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에 마음도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학원을 바꿔보려고도 해 봤고, 자기주도 학습이 안 되는 딸아이에게 계획과 실행이 몸에 밸 수 있도록 우리가 하지 않던 '간섭'이라는 것도 일상이 되어갔다. 하지만 세상일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듯이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이긴다는 말인가. 결국 두 손, 두 발 모두 들기 일보직전까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딸과 우리에게 구세주처럼 등판한 아들 덕분에 학습 계획이라는 걸 세우게 됐다. 아내나 내가 아닌 네 살 터울 오빠의 빡빡한 간섭으로 딸은 어느 정도 태세를 전환했다. 평소 같으면 12시가 넘어서 가던 독서실을 아침 10시만 되면 꼬박꼬박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목표했던 인터넷 강의도,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는 시간도 흔들리지 않고 늘려갔다. 시작한 지 아직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습관이 되면 딸에게도 도움이 될 듯싶다. 시작한 지 어느새 3주가 지났다. 사람 고쳐 쓰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 어려운 걸 딸아이가 해내고 있는 듯싶어 기특하다.


예전엔 집에만 들어오면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던 녀석이 이젠 거실 전세를 내고 살다시피 한다. 내 공간 일부를 빼앗겼지만 싫지 않다. 처음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터디 카페를 다니면서 딸아이가 우리에게 선을 그은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그 정도는 당연한 권리로 얘기했고,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아침에 스터디 카페를 가는 것, 하루 스마트 폰 사용을 자제하고 학업에 전념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 그리고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


생각의 전환과 서로 간의 타협으로 우리 관계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물론 그 전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 간의 신뢰가 있는 게 전제지만 딸아이를 믿기에 우린 딸이 내건 권리를 지켜주려 한다. 집에 오면 저리 편해하고,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니 우리 또한 딸아이가 집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신뢰가 중요하다.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고쳐보려고 애쓰다 보면 그 신뢰가 무너질 수도 관계 자체가 깨져버릴 수도 있다. 고쳐서 쓰기 어렵다면 배려하는 마음으로 서로 간의 타협점을 찾는 노력이나 아예 상대방에게 맞춰보는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떨까. 관계에서는 한 사람의 주장만으로 오랜 시간 유지는 힘들다. 힘이 있는 쪽에 이끌리는 건 당연하지만 맞춰주는 이런 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면 그 관계도 끝이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잘 맞춰가는 관계일수록 그 관계는 견고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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