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Feb 13. 2024

내 오랜 친구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람 관계는 쉽기도, 어렵기도, 단순하기도, 복잡하기도 하다

'우리 모임 통장에서 부의금 빼는 건 아니지 싶다. 부의는 각자 따로 하는 걸로 하자'



며칠 전 이른 아침에 카톡 메시지에 잠이 깼다. 카톡을 보낸 친구는 오래된 고향 친구 중 하나였다. 한 달 만에 연락이지만 메시지에 담긴 내용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장인께서 돌아가셨어.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친구 장인이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길 들은 건 꽤 오래전이었다. 병세가 호전됐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더니 세월에 장사 없다고 나이가 드시면서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병환으로 돌아가신 듯싶었다. 명절이고, 지방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통에 친구들이 갈 수가 없는 상황임을 감안해서 당사자인 친구가 남긴 메시지였다. 하지만 정작 친구들은 명절, 지방이라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 생각도 이내 떨쳐버렸다.


우선 톡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고, 고향 친구들 중 하나에게 전화를 돌렸다. 친구 장인의 부고 소식에 바로 위로의 메시지로 답을 한 친구들 중 하나였다. 게다가 현재 고향 친구들 모임을 주관하고, 통장을 관리하는 친구여서 더욱 대화가 필요했다.


'A야! B 장인 돌아가셨는데 우리 모임통장에서 늘 하던 대로 다른 친구들하고 똑같이 부의를 보냈으면 해서...'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반응은 조금은 뜨뜻미지근했다. 다른 친구들과 얘길 해보고 단체 톡방에 메시지를 남긴다고 얘길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A 친구와 통화 후에도 몇 안 되는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A와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다들 수긍하는 듯싶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전화로 했던 말처럼 단체 카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전화상으로 동의했던 말들과는 다른 의견들이 쏟아졌다.


'개인적으로 부의하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지만 회비에서 부의금을 보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


친구 한 명이 반대하는 의견의 메시지를 보내자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반대하는 의견들이 터져 나왔다. 회비는 친구들끼리 모아놓은 가족모임 회비여서 안된다, 친구지만 모임 회비를 안 낸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그건 아니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아내들 의견도 있는데 등까지 많은 그럴듯한 이유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모임회비를 십 년 가까이 내지 않은 친구여서 당연히 모임통장에서 돈이 나가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상의 이유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친구가 친구들과 멀어져서 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린 학창 시절부터 친구였고, 그 시절부터 어울렸으니 30년도 넘은 시간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다. 총각 때만 해도 항상 적극적으로 어울렸고, 매사에 진지함은 없었지만 밝은 웃음은 잃지 않았던 친구였다.


친구들 모임이 시작된 것도 20년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나둘씩 더니 일부러 시간 내 만나기가 점점 더 뜸해졌고, 무언가 구속력이 없으면 정말 만나기가 어려워지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그러던 하루 친구들끼리 모임회비를 걷어서 가족여행 등을 계획하게 되었다. 한동안은 이 계획은 생각대로 실천되는 듯했다. 하지만 대부분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들까지 생기니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가족여행 가는 것만큼은 지키려고 애썼다.

'얘들아, 난 다음 모임부터 아내가 나가지 말자고 하네. 아내가 모임회비도 더 이상 내지 말래'


그러던 어느 날 B가 자신은 앞으로 모임 회비를 못 내겠다는 선언과 함께 가족모임을 나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절 선언까진 아니었지만 당시 우리에겐 꽤 큰 충격적인 현실이었다. 어떻게든 친구 마음을 바꿔보려고 회유도 해보고, 협박도 해봤지만 친구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결국 그날 이후로 친구는 본인이 말한 대로 실천했다. 오히려 친구는 한술 더 떠 가족모임뿐만 아니라 한 동안 친구들끼리 만나는 자리에도 이, 삼 년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일이 이지경이 되고 보니 처음엔 친구의 아내를 비난하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화살이 친구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친구와 친구아내를 향하던 비난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듯, 아니 오히려 그들을 위해 쏟는 에너지가 아까워여서인지 더는 친구들 사이의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 주제에서 멀어져 갔다.


사람과의 관계 형성은 단순히 이해 당사자인 둘 간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둘 간의 관계라고 해도 주변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 관계형성이 되었다고 해도 그 관계 유지에는 옆에 누가 있는가도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내 옆에 부모, 형제, 아내, 자식, 친구가 있는 것처럼 단순하게 일, 이인칭 관점에서 맺어진 나와 너의 관계라고 해도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변 사람은 항시 존재한다. 친구 옆에 아내가 있듯이 관계 간 우리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기 마련이다.


내 오랜 친구의 경우만 봐도 결혼 전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모임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친구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친구의 아내는 본인이 우리와 함께 어울리는 것도 싫어했지만, 친구조차도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하물며 친구는 아내로 인해 직장 생활에서도 적잖이 영향을 받는 듯싶었다. 회식은 번번이 빠져야 했고, 야근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러다 보니 우린 친구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리 관계는 이번생엔 글렀으니 다음생을 기약하자'라고 말할 정도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와 관계한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주변 사람 또한 중요하다. 주변 사람의 영향은 친구 간의 관계에서도 크게 느껴지지만 부부간에는 이런 주변 영향이 무엇보다 크고 중하다. 부부란 혼인 당사자인 남녀가 만나 사랑해서 한다지만 정작 결혼 후에는 양가 집안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시부모, 처가식구 등과 같이 남편의 부모임에도 '부모'라고 붙이는 것과 아내의 가족임에도 처가 뒤에 식구가 붙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 인 듯싶다.


둘이 좋아서 결혼했음에도 둘이 아닌 양가의 이해와 오해로 헤어지는 부부들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상견례는 부모가 사위될 사람, 며느리 될 사람을 인사하는 자리라기보다 양가 집안의 사람들과 대면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상대방의 부모가 어떤지, 내 자식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집안의 부모와 식구들이 어떤지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절차일 것 같다.


상대가 좋아서 아껴주고, 사랑하고, 믿음을 주는 관계로 맺어졌지만 서로간이 아닌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헤어져야 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 간의 관계가 단순하고, 쉽기만 하지 않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난 몇 해 전 오래된 친구를 잃었다. 아니 지금도 잃어가고 있다. 돌려받고 싶은 관계임에도 당사자에게 하소연해 봤자 소용이 없다. 친구들보다 더 가까운 관계의 사람 영향으로 오늘도 친구와는 한 뼘 더 멀어진 느낌이다. 잊고 지내다가도 가끔씩 만나면 친구를 잃은 아쉬움에 난 또 한숨을 붓는다. 내 오랜 친구와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 아쉬움과 후회로만 남을까 봐.

이전 14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