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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20. 2024

그가 날 싫어한 이유라는 게 고작...

차이는 있지만 사람마다 쏟을 수 있는 총량은 존재한다

'박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제 회식했다던데 과음하셨나 봅니다. 출근이 많이 늦었네요'

'하~,..... 네......'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려 나오다가 옆 부서의 팀장과 마주쳤다. 오전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그는 어제 회식으로 과음에, 늦은 귀가가 문제였는지 이제야 출근하는 듯 보였다. 그와 난 본부장 소개로 이직 후 회사 내 처음 인사한 사이다. 그래서인지 가깝진 않아도 얼굴 보면 안부는 습관이 된 지 오래였다.


매번은 아니어도 종종 있는 일이어서 그의 지각은 익숙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심하다 싶었다. 아무리 회식 후 다음날이라고 해도 11시 출근은 누가 봐도 너무하지 싶었다. 마음은 그래도 내가 그의 관리자도 아니고, 같은 부서도 아닌 통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단순하게 묻는 안부임에도 도둑이 제 발 저린지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출근이 늦은 본인의 과실임에도 내가 과음, 늦은 출근을 얘기한 것에 꽤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난 불화를 만들기 싫어서 별 말없이 그 자리를 피했다.


그 일이 있은 이후에도 그는 내게 꽤나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듯했다. 면전에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뒤로 들리는 얘기가 듣고 무시하려고 해도 여러 채널로 들려왔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임에도 높은 직급이 불만이라는 얘기도 들렸고, 신생 부서임을 고려하면 업무량이 적지 않음에도 자신의 부서 업무량을 얘기할 때 꼭 우리 팀을 걸고넘어졌다. 유독 본부장과 사이좋은 우리 팀이 부러웠는지 전체 회식 때마다 번번이 본부장에게 우리 팀을 편애한다는 취중발언이 이어졌다.


이런 태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조직이 통합되면서 나를 포함한 우리 팀 일부는 그의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보직해임에 억울한 인사처분까지 당한 날 보듬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원래의 태도를 보였고, 인사평가 시기가 오자 마치 오래전부터 칼을 갈았던 사람 같았다. 평가는 보란 듯이 나를 포함한 나와 함께 전배 된 동료들을 상대평가의 아래쪽 점수에 배점했다. 기대 이하의 등급 평가를 받았고, 정당한 평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속이야 상했지만 상명하복, 계급이 깡패인 직장 내 직책, 직급이기에 조용히 묻고 맞춰보려고 애도 써봤다. 따로 술과 차도 마셔봤고, 가끔씩 조치가 안 되는 고객사의 협조, 지원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고생했어요', '수고했어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좋은 분위기는 그때뿐이었다.

사람 속이야 알 수 없지만 그런 그의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속내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나마 있던 직책마저 한참 후배에게 양보해야 할 사건이 생겼다. 팀장인 자신에게 제대로 보고 안 한다고 하는 게 그 이유였다. 바뀐 본부장에게 쪼르르 메일로 보고했고, 십여 년을 그와 함께한 바뀐 본부장은 전후상황을 무시한 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인사조치가 이뤄졌다.

 

일이 그렇게 되고 나니 고운 정은 별로 없었지만 없던 미운 정까지 더해져 더 이상 한 팀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자청해서 부서 전배를 요청했다. 결국 같은 부서에서 그와는 이년을 채우지 못하고 타 부서로 전배 됐다.  


부서를 옮기고도 이상하리만치 그는 나를 의식했지만 난 보란 듯이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 과거에 일도 잊은 듯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했다. 내 마음속과는 다른 행동이었지만 이직하기 전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의 관심(?)이 사라진 건 부서를 옮기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건 그의 이직이 결정된 시점이었다. 막상 이직이 결정되니 쓸데없는 에너지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사고에서 발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사실은 그가 더 이상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이직을 했고, 우린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싶다. 내가 웃으며 다가서든, 의견 충돌로 얼굴을 붉히든 그냥 내가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할 듯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그는 나의 모든 태도, 분위기, 업무처리 방식, 사람과의 관계 등 어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게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지나치다면 지나치겠지만 그땐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 운동, 물건 등이 다르다. 그런 이유는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선호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취향이나, 선호도는 단순히 환경, 성격 등으로 구분 짓기에는 다양한 분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세대에 따라서 다른 것도 많고, 성별에 따라서 다른 것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사물이나, 물건에 국한되진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호불호(好不好)가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평양냉면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음식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소문난 평양냉면 가게를 일부러 찾아가 먹을 만큼 인기가 높다. 하지만 난 평양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난 평양냉면을 먹어보려고 도전해 봤지만 특별한 것 없는 별맛 없는 그 맛이 내 입맛과는 맞지 않았다. 이처럼 음식에도, 전자제품에도, 여행 장소나 숙소만 봐도 호불호가 있다. 당연히 개인별로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호불호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닥칠 수 있는 현실이다.


어떤 선택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관계에 있어서 호불호는 불편한 진실이 될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누군 어때서 정말 좋다는 말도, 누군가는 어떤 모습 때문에 별로라는 이야기들도 우린 종종 말하고, 듣는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잣대로 누군가를 혹은 관계에 있는 사람을 재단하곤 한다.


같은 사람을 두고 다른 평가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항상 긍정적이어서 좋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매사가 진지하지 못하다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수가 많지 고, 진중하다고 하는 사람도, 어떤 사람에게는 음흉하고, 속을 알 수 없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누군가에게 '불호(不好)'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好)'가 될 수는 없다. 관계에 있어 누군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단순히 자신이 본 상대방 단면의 단점만을 각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유를 만들어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내가 애쓴다고 달라지거나 반전이 일어날 관계는 아니다. 단순히 생긴 오해를 풀어 해결할 수 있는 반전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불호'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거나 잘라내는 것이 가장 현명할 수 있다. 많은 관계 중에 애초에 좋은 관계도 있고, 좋은 관계로 발전이 필요한 관계도 있고, 어중간하지만 좋아질 수 있는 반전의 관계도 있다. 이런 가능성 있는 관계로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쏟을 수 있는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무한 에너지를 소유한 것도, 남들보다 시간이 차고 넘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내게 호감 있는, 내가 호감 가는, 내게 필요한 관계만을 위해서도 충분히 부족한 에너지고, 시간이다. 상대방을 이유 없이 싫어하거나, 반전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그냥 없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적절히 거리를 두는 것이 앞으로 사는데도 도움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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