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에 아들이 자신이 올해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목표를 얘기하면서 말했던 것들 중 하나였다. 당연히 학교 전체에서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을 듯싶어 아들이 갈 거라는 확신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끝나갈 무렵 생각지도 않게 아들은 자신이 가게 됐다는 얘길 꺼냈다. 반갑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스무 살이 넘긴 했지만 아들이 우리와 떨어져 긴 시간 해외에 나가는 일은 처음이라 더욱 그랬다.
그래도 난 좋은 경험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이어서 아들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막상 마음만 급했지 미국행을 위해 준비할 것들은 많았다. 대부분 아들이 준비하면 됐지만 결정적으로 추가 비용은 아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 미국 대학 연수 프로그램 비용 및 숙박비용 일부를 지원한다지만 비행기 삯, 나머지 아들 체제비용은 우리의 몫이었다. 게다가 자주 갈 수 없는 미국땅까지 가는 데 그냥 연수만 다녀오는 것으로는 아쉬웠던지 아들은 학교가 있는 필라델피아 근처 뉴욕 여행을 계획했다. 당연히 뉴욕 일주일간 자유여행에 드는 비용까지 우리가 지원해 주기로 했지만 만만치가 않았다.
걱정은 기우였다. 우린 부부연차로는 베테랑급이었다. 23년 차 부부라는 게 지내온 세월만큼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도 늘기 마련이다. 투명하다고는 해도 서로를 믿기 때문에 상대방 주머니 사정이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알려고 하지 않았던 각자의 주머니에서 각출하니 돈 걱정도 남의 일이 되었다. 분담하여 털어낸 비자금들이 어느새 필요한 돈을 모두 채웠다. 걱정했던 돈도 금방이었고, 아들의 출국날짜도 금세 다가왔다. 그렇게 아들은 우리의 걱정을 뒤로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긴 시간 비행 끝에 미국땅에 도착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이삼일 정도야 떨어져 있어 봤지만 이렇게 먼 나라로 긴 시간을 떨어져 본 건 처음이라 아내나 나나 매일이 걱정이었다. 뉴스에서 미국이 나오면 평소에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보도에 신경 썼고, 총기사건이라도 뉴스에 나오면 발생지역을 더 꼼꼼히 확인했다.
이런 걱정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아들은 미국 입국날부터 소식을 알려왔다. 14시간이라는 시차가 무색하게 하루가 멀다 하고 카톡에 화상통화도 자주 하며 우릴 안심시켰다. 하루에 한, 두 번 카톡 안부는 기본이고, 여러 장의 사진을 함께 보내니 아들의 현지 일상이 늘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고, 이번주에는 어떤 스케줄이 잡혀있고 등 걱정할 우릴 위해 사전에 일정을 공유했다. 덕분에 우린 아들이 떨어져 있음을 가끔씩 간과할 때도 있었다. 영상통화할 때면 전화기를 들고 있는 팔을 번갈아가며 소식 듣기에 바빴다.
나도 아들이 이렇게까지 자주 연락할지 몰랐다. 사실 친구들과 국내여행은 여러 차례 갔지만 이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소식을 알린 건 처음이라 아들이 낯설기까지 했다. 친구들과 여행 가면 이삼일 연락이 없는 건 다반사였으니 너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이리 자주 연락했던 건 다정다감한 성격 때문이지 싶었다. 국내 여행에선 크게 걱정하지 않을 우리 마음을 알기에 자신의 현재 상황에 충실했지만 장시간 미국에서의 체류는 달랐다. 아들도 국내에 있을 때 봐왔던 미국 사건 뉴스에, 연락이 없으면 당연히 걱정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아내는 가까운 친구 사이 같다. 가끔 밖에서 밥도 따로 먹고, 뻔하지 않은 데이트를 한다. 나와는 뻔한 데이트였다면 아들과 다녀온 데이트는 아내에겐 매번 신기하고, 자랑거리였다. 네 컷 사진도 재미나게 찍고, 드로잉 카페도 가서 그림도 그리고. 특히 그림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이 그림 얘길 할 때면 난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이번 미국행에서도 아들은 혼자 많은 미술관을 다녔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미술관을 혼자 다니더니 미국 가서도 미술관만은 일행을 두고 늘 혼자였다. 방해받지 않고 그림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술관을 갈 때만큼은 여전히 아들 곁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들말로는 이번 미국여행 가장 큰 수확 중 하나가 군대 가있는 동안 못 볼 그림을 미리 당겨봤단다.
나와 아들의 관계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지 않았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일정했다. 하지만 상호 간 관계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성년이 된 지금까지 시절, 시기마다 가까웠다, 거리를 뒀다를 반복했다. 어릴 때는 첫 아이고, 부모도 처음이라끼고 살다시피 했다.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 줬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얼굴 붉히는 일이 잦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서로 대화는 적었지만 상황마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부터는 고등학교 때의 롤러코스터 같은 상황들이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나와 아들은 상황에 따라 관계의 상태가 바뀌었고, 변화됐고, 성장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의 감정, 상호 간 관계의 거리는 늘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현재에도 아내는 늘 아들을 지지했고, 상황에 따라 바뀌거나 변화되지도 않았다. 아내는 늘 아들에겐 친구이자, 선배이자, 스승이자, 엄마였다. 이런 마음을 서로 잘 알고 있어서인지 '척하면 척'이라는 말이 너무 잘 이해되는 모자다. 가끔은 아내가 아들에게 대하는 관대함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내게도 가끔은 그런 관대함이 필요한데 못내 아쉽다. 그래도 가끔 아내가 아들이 내 성격 판박이라고 할 때면 받지 못한 아내의 관대함을 받은 듯싶어 뿌듯해지곤 한다.
5년도 아닌 5개월도 아닌 5주 만에 아들이 돌아왔다. 5주라는 시간이 후다닥 지난 듯싶다. 아들이 없는 5주가 가장 아쉬웠을 아내는 아들이 귀국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영상통화로 아들이 '한식', '집밥'을 노래해서인지 주말 아침에 된장찌개에 나물까지 무친다. 아들덕에 이번 주말 식사당번은 내가 아니다. 오늘은 아내가 차려준 주말 아침 밥상을 아들 덕에 받아봤다. 주말, 휴일동안은 집에 있으며 우리와 시간을 보내는 아들을 보며 긴 타지생활이 힘들긴 힘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건 아들의 기본적인 양심과 도리였지 싶다. 아니면 귀국하자마자는 너무 피곤하고 힘든 이유로 이삼일 정도는 쉬고자 했던 아들의 큰 그림이었을 수도. 아들은 지난 한 주만 해도 5일을 밖에 나가 있었다. 아내는 군대 가기 전 만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이해하다가도 아쉬움만큼은 감출 수 없는지 입꼬리를 삐죽거리곤 했다.
오후만 되면 졸려하던 14시간의 시차 적응도 이삼일 휴식으로 풀렸는지 아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5주간의 해외살이도 이삼일 책임과 도리를 다하고서 다시 전형적인 대학생 모드가 됐다. 내가 생각하는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이삼일이 한계인가 싶다. 예전에 농담처럼 들었던 말 중에 군대 간 자식 철들어서 와도 일주일을 못 간다는 얘길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아들은 5주를 다녀와서 삼일은 유지한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군대 복무기간이 그 열 배쯤 되니 한 달은 족히 가지 싶다. 자식 키우며 큰 기대 말자고 하면서도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는 옛날 부모님 세대와 다르지 않은 듯싶다. 부모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나 보다.
5주 만에 돌아온 아들이 이제 곧 18개월간의 긴 여정을 떠나려고 합니다. 한 달 하고 조금 더 남은 시점에 입대날짜가 잡혔어요. 너무 시간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늦어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네요. 다른 건 바라는 것 없고, 건강하게 잘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잘 다녀와 아들! 아자, 아자! 아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