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Mar 19. 2024

그 해 봄날, 우린 구타까지 당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곳에서도 관계는 필요하다

너무도 낯설기만 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이 내려앉은 깜깜한 산능선과 멀리 보이는 행정반 불빛이 전부다. 아직까지도 현실감각이 깜빡깜빡할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어깨에 기댄 긴 총열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다시 한번 날 상기시킨다.


'야, 김철수 근무교대자 오는데 암구호 안 해?'

'아? 이병 김철수, 죄송합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어어어... 암구호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납니다'

'이런 씨~ , 바람~!'


군에 입대하고 세 달째였다. 적막한 밤 경계 근무에 지금 처지를 잊고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근무교대시간임잊고 있었다. 갑자기 온 교대자에 당황해 난 숙지했던 암구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날 나와 바로 위 선임은 함께 근무 나간 선임병에게 된 통 혼이 났다. 이럴 때마다 더 집생각이 나곤 했다.


한 달 전 6주의 훈련을 끝내고 잠깐 부모님을 봤을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짧은 면회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엄마표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긴 시간 훈련하며 담았던 추억을 털어놓느라 바빴다.


그렇게 짧은 면회를 뒤로하고 배치받은 부대로 입소한 지 이제 사 주째다. 아직도 내무반에서는 눈치를 봐야 했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밥 먹은 게 소화가 안되거나, 잠이 안 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부족한 음식맛은 늘 허기진 내 배와 입맛으로 채웠다. 또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자는 딱딱한 침상은 혼자 쓰던 내방과는 천지차이지만 머리만 대면 잠이 들법한 피곤함이 자장가가 되었다.  


'야, 김철수', '철수야~', '김철수 이병'

'이병 김~철~수~'


아침부터 불러대는 선임병들의 부름은 각양각색이다. 늘 화난 사람처럼 혹은 정이라고는 하나 없을 것 같은 목소리로 차갑게 부르는 선임도 있고, 아주 가까운 선배, 형, 친구처럼 부드럽게 부르는 선임도 있다. 하지만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무반 막내인 내 대답은 한결같다. 차가운 선임이든, 부드러운 선임이든 구분 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늘 대답하곤 했다. 가끔은 이런 내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는 선임들도 있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내색이다.


처음 지낼 내무반에 들어갔을 때는 선임들 인상이 모두 험악해 보였다. 5월에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에 들어갔으니 모두 검게 탄 얼굴은 기본이었고, 잔뜩 긴장한 신병에게는 모든 게 두려움 천지였다. 게다가 막내 신고식이라는 명목하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을 놀리는 게 병영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던 때였다. 정말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지만 이런 일을 도모하기엔 군대만 한 장소가 없는 것 같다.


'총은 사서 왔어?', '우리 부대는 나이 대우해 주는 부대인데 몇 살이세요?', '사격 잘하면 진급도 빠른데 밖에서 사격 연습해 왔지?', '침대 쓰고 싶으면 부대에 돈을 내면 돼' 등


군복 위에 이름 명찰이 있어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외워질 것 같은 이름도 부대에 간지 삼일 만에 외워야 했다. 이름뿐만 아니라 서열까지 외워야 하니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함께 내무반에서 지내는 이십여 명이 전부가 아닌 중대원 전체를 외워야 하니 그 난이도는 높아도 너무 높았다. 중대로 따지면 백 명이 넘는 인원이니 머리가 나쁘면 군대도 어렵구나 싶었다. 이, 삼일 내에 백 명 인원을 암기하는 것 외에도 군가, 식사예절, 내무반 기본 지식 등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 머릿속에 기억해야 할게 수두룩 빽빽했다. 또 암기를 못하거나 물어봤을 때 바로 답하지 않으면 기본 얼차려에 심하면 맞기까지 했으니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외우고, 숙지하고, 숙련되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됐지만 시키니 해야 했고, 해야지 몸이 편했다. 하지만 시간 지나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암기, 숙지, 숙련된 일들이 병영생활에 차곡차곡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방법이야 옳다고 할 수 없지만 해야 할 일을 짧은 시간에 숙련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한두 달 지내다 보니 마냥 선임들이 두렵지는 않았다. 게다가 몇몇 선임을 제외하고는 큰 실수를 하지 않고서는 가까운 선후배처럼 지낼 수 있었다. 아마도 한 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 계급도 하나씩 올라갔고, 계급이 올라가자 사회로 복귀도 가까워졌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흐른다는 말처럼 그렇게 더디 가던 내 군에서의 시간도 후다닥 지나갔다. 2년 2개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게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권리 중 의무에 해당했다. 피할 수 없었고, 갔다 와야만 했다. 나이 먹고 부당한 일도 겪었고, 서러웠던 적도 많지만 그 생활에서도 배움도 많았다. 무려 삼십 년이 지난 내 군 복무시절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소복하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군대라는 곳에서의 생활이 유일할 것이다. 폐쇄적인 환경, 수평이 아닌 상하관계 문화에서 어느 정도 규율과 규제가 있는 생활 자체만 놓고 보면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한 세대는 이런 단체생활 자체만 놓고 봐도 어려움이 크다. 이런 에 더해 어느 정도 자율 생활을 제약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 불편한 마음의 크기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병영 생활이나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당장 내가 군대에 있을 때와는 급여부터가 천지차이고, 생활공간도 수십 명씩 자는 내무반이 아닌 달랑 몇 명이 자는 기숙사와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당연히 먹는 것부터 생활하는 것 전체가 요즘 세대에 맞게 바꾼 듯싶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부대 생활환경과 자녀들의 건강이지 않을까. 예전과는 다르게 군대에 가면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로 더욱 건강해진다는 얘긴 하지만 군대라는 특성의 알려지지 않은 폐쇄적인 환경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알려진 정보가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군 생활을 경험하는 자식이 걱정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요즘은 훈련병들도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해지고, 병영 생활 또한 과거와는 달리 많이 자유로워진 걸로 들었다. 휴가도 많아졌고, 결정적으로 복무기간이 18개월이다. 아들 친구들만 보더라도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곧 제대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군대는 다른 곳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일반적으로 초·중·고등학교는 비슷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고, 특수한 목적의 고등학교나 대학교도 비슷한 이유,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이 모인다. 직장도 비슷한 학력의 사람들이나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직장에 모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군대는 이와 다르게 학력도, 지역도, 성향도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관계는 형성된다. 아니 오히려 형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발전을 생각할 수도 있다. 24시간 붙어지네야 하니 단순하게 맺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싫든 좋든 계속 봐야 하니 개선, 발전, 양보, 배려 등이 더 필요한 곳이 군대다.  군대에서는 본인의 의지로 관계를 손절할 수 없는 곳이다. 그나마 있는 손절의 기회라고 하면 상대방이 전역하거나 내가 전역하는 방법 는 없다. 둘 간의 사이가 내가 선임이면 그 관계의 불편함은 조금은 덜 수 있지만 상대방이 선임이면 불편해도 너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방법을 모색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풀 수밖에 없다.


관계에 있어서 군에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24시간 맞닥뜨려야 하니 불편한 관계는 해소하던가, 무시할 수밖에 없다.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단순한 상하관계만 존재하던 과거 군대가 아니다. 군대도 하나의 작은 사회다. 기본적인 규정과 규칙을 지켜가며 관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선만 지킨다면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아주 조금은 불편함은 있겠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갖고 있는 불편함도 스스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솜털까진 아니라도 짊어지기 어려운 무게는 아닐 것이다.


최근 전역한 아들 친구, 선배들 얘기만 들어도 힘들다는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전역해서 절대 군대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각서를 쓰는 것도 아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할 법한데 정말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걸 보면 그곳도 나름 지낼만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곧 군에 입대할 아들 때문인지 그런 소망이 믿음이 되고, 최근엔 그 믿음이 더 커지는 듯싶다.


모든 시작은 서툴기 마련이다. 신입생, 신병, 신입 사원, 신혼부부. 모두 새 신(新)을 사용하고, 말 그대로 특정 그룹, 집단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선에 선 사람들을 지칭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직업군인으로 가도 처음은 신병이고, 의무입대해도 처음은 신병일 수밖에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군대에서도 그 처음은 실수도 있고,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의 시기를 벗어나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숙련되면 군대도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있는 그룹 생활일 뿐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 말고 쉽게 쉽게 생각하고, 풀어가면 그뿐이다. 군대고 사람이 사는 곳이다. 군대라고 특별할 것 없듯이 군대도 결국 관계로 이어지고, 관계로 끝이 난다.


이전 19화 과묵했던 아버지의 이유 있는 변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