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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r 12. 2024

과묵했던 아버지의 이유 있는 변신

좋은 관계일수록 서로를 이해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오빠, 그 배우 있잖아. 지난번에 같이 봤던 드라마에 조연으로 나왔던... 그 배우 이름이 뭐더라?'

'아 OOO 배우. 그 배우가 왜?'

'그 배우 누구랑 열애설 있다고 하던데'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연예인을 두고 아내는 하던 말을 끊고서 얘기한다. 

'그리고, 아 저 사람 지금 사건, 사고 뉴스에 터트린 게 얼마 전 시끄럽던 사고를 덮으려는 거 같다고 하던데'


아내는 가끔 너튜브나 지인들에게 들은 뉴스를 얘기하곤 한다. 지나고 나서 사실인 뉴스도 있지만 많은 기사들이 그렇듯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픽션을 가미하여 유추한 사실이 건너 건너 뉴스거리가 되는 일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두고 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오해와 편견을 갖기 쉽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눈덩이 붇듯이 여기저기 이 붙어서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실제 사실과는 차이가 큰 가십거리들은 누가 들어도 그냥 허위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요즘 이야기들은 자극적인 주제호기심을 사는 건 기본이다.  그럴듯하게 리얼리티를 살리고, 포장하여 실제와 허구 경계의 스토리 구성으로 입맛에 맛게 감칠맛을 살리는 이야기들이 많다. 낚일 있는 이야기는 이미 뉴스로서 비싼 값을 치렀다. 호기심을 자극해 읽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주변에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있다. 무조건적인 기피는 아니지만 그들의 입방아에 내가 올라가서 주변으로 퍼진다고 생각하면 경계는 기본일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는 분은 아니셨다. 아니 말씀이 적어서 학창 시절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내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아버지는 많이 과묵하셨다. 하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그 반대다. 오히려 요즘말로 TMT, 투머치 토커다. 물어보지 않은 정보도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지금 나오는  저 가수가 몇 년생이더라. 아마 서른이 안 됐을 텐데...'

'저 여자 남편이 사업한다는데 그렇게 남편 때문에 소싯적에 고생이 많았다더라'

'지금 저 오디션 프로는 거의 A가수가 쥐락펴락해서 일등은 정해져 있다고 하더구나'

'항상 저 프로그램에 엠씨가 바뀌었는데 저 남자가 임시 엠씨에서 이번에 정식 엠씨가 됐네. 과거 저 사람에게 일이 있었는데 그 일 때문에 군대로 도망가듯이 갔다가 왔다고 하던데...'


연예부 기자가 따로 없다 싶을 정도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도 아버지 곁에 있으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아버지의 그런 대화 방식 때문에 나는 가끔 아버지와의 대화를 피하거나 꺼린다. 그도 그럴 것이 효율적, 합리적, 이성적인 대화를 즐겨하는 나여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요즘은 아버지가 입을 열면 좀 지친다 싶을 정도다.

나이가 들면 말 수가 는다고 하는 말이 사람마다 다르지 싶다가도 아버지만 뵈면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다. 아버지가 '수다쟁이(?)' 본능을 숨기고 지금까지 사셨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알던 과거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르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씀이 많지는 않으셨다 생각했고, 세월이, 환경이, 외로움이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지 싶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보는 드라마가 늘었고, 만날 때마다 정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나 나나 정치적 성향이나 주장이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세대가 달라서인지 지지하는 당도 달랐다. 좀처럼 대화에 트러블이 없다가도 정치 얘기가 나오면 어느 날엔가부터 내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자 불편하셨는지 언제부턴가 정치얘기대신 드라마 얘기뿐이다.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어 요즘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얘기가 아버지에겐 화제고, 주제고, 소재가 되곤 했다.


불편한 얘기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재미나 흥미가 없는 얘기가 아버지에게서 끊임없이 나왔다. 얘기는 하셨지만 귀담아듣지 않았고, 제대로 듣질 않으니 대답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 아버지의 대화상대는 내가 아닌 아내가 되어 있었다. 아내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여줬고, 적절한 리액션과 피드백은 기본이었다. 갑자기 그런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아버지와 대화가 힘든 건 사실이라 난 적절한 거리만을 유지한 채 필요한 대화만을 이어갔다.


'매일도 아니고 가끔 뵙는 아빠하고 대화하는데 집중하는 게 어때요? 그렇게 귀찮아하는 티를 내니 아빠라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하고 대화하고 싶겠어요? 혼자 계시니 대화할 상대도 없을 텐데 이럴 때라도 아빠 얘기 들어주고, 진지하게 대화해요'


어느 날 아내가 참다못해 말을 꺼냈다. 피하려고 했지만 싫어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고, 피드백 또한 당연히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과 대화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내의 말에 아버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내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도 금세 티가 났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겐 예전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자식이었음을 간과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 년이 지났다. 어머니 생전에 몸은 힘들었어도 아버지 곁에는 늘 말벗이 되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병간호에 지쳤던 몸은 편안해졌지만 늘 집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는 입을 닫고 지냈을 것이다. 이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이웃친구, 한 달에 몇 번 보는 친척 형제들이 아버지 일상에서 대화하는 날의 전부였을 것이다. 자주 통화는 하지만 안부 묻는 전화와 얼굴 보며 대화하는 자리와는 엄연히 달랐다. 이런 일상을 보내시는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다.

많은 대화나 말들이 필요하지 않은 요즘이다. 한때는 나를 드러내고, 포장하고, 어필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구성원 사이에서 있는지도 모르고, 존재감이 없었던 시절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도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적절한 표현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말과 표현이 과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았다. 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조심하고, 과한 표현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모든 걸 드러내기보다는 가까운 사이여도 조금은 감추는 게 미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가끔은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조금은 귀찮고, 과하다 싶은 얘기라도 들어줘야 할 상대도 있다. 그냥 아무 얘기라도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그런 관계다. 오랜 시간 우리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고, 지지해 준 그런 가족, 그런 관계라면 더 그렇다.


요즘 부쩍 나이 든 아버지를 보니 더 마음이 쓰인다. 분기 혹은 반기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버지인데도 지금까지 무심하지 않았나 싶다. 생각난 김에 아버지에게 다녀와야겠다. 코레일에 열차표를 조회했더니 다행히 주말표가 아직까지는 좌석이 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뵐 생각을 했더니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모든 일이 생각 먹기에 달린 듯싶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에서도 나름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관계일수록 서로를 이해하는 유연성은 기본이다.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아도 꾸준히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서로 간에 이해와 배려를 담을 수 있는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지 싶다. 누구에게나 어떤 환경에도 버티고, 이겨내고, 어울릴 있는 유연성은 있다. 그 유연성의 크고, 작음은 바로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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