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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19. 2023

통장 잔고보다 가방이 비싸서 '헉' 소리는 났지만...

관계 형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백화점 1층 잡화 매장, 아내는 첫 번째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 안을 살폈다. 매장 내 손님이 없어서 선 뜻 들어가는 게 더 불편하지 싶다. 아내의 눈길이 멈춘 곳은 진열되어 있는 가방이다. 슬쩍 아내의 시선이 머문 곳의 가방 가격을 보았다. '헉' 잠깐이지만 밖으로 소리가 나올뻔했다. 다행히 아내에게 들키진 않았다. 조금 궁색한 마음이 들었다. 43만 원. 남들은 몇백만 원짜리 가방이 하나씩은 있다고 하더구먼 아내는 몇십만 원짜리도 사치로 생각되는 듯하다. 아내의 마음이 읽히니 안쓰럽고, 그런 아내 마음을 모른 체해야 하는 내가 얄궂다.


생일선물을 고르라고 한지가 벌써 한 달이 다되어간다. 아내는 선물 고를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아이쇼핑하는 게 고작이다. 오늘은 어떻게든 선물을 고르게 하고 싶은 마음에 백화점으로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첫 매장부터 꼴 사납게 ''이라니. 이젠 아무 소리 없이 아내의 뒤만 졸졸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백화점 가방 매장이라고 해봤자 여남은 개도 되지 않으니 더 이상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아내는 천천히 스치듯 여러 매장을 지나쳤다. 그렇게 조용히 이동하다 한 매장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아내의 시선에 또 하나의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멈춰 서있다. 망설이는 눈치다. 난 그런 아내의 팔을 조용히 감고서 매장 안으로 이끌었다. 그제야 아내의 멈췄던 두발도 내가 당기는 대로 몇 걸음을 움직여 매장까지 들어섰다. 매장 직원은 우리가 들어오자 한달음에 다가왔다. 아내는 가방 하나를 가르치더니 직원에게 말했다.


 "이 가방 잠깐 매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고객님이 고르신 이 상품 인기가 많아요. 게다가 40퍼센트 세일 들어가서 가격도 괜찮고요"


아내는 건네준 가방을 손에도 들어보고, 어깨에도 매 보면서 자신과 어울리는지 꼼꼼히 따져본다. 그러고선 날 보며 가방이 어울리냐고 묻는다. 난 잘 어울린다고 했지만 정작 그 순간 내가 궁금했던 건 가격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들켰는지 아내는 직원에게 묻는다.


 "이 가방 얼마예요?"

 "40퍼센트 세일해서 23만 8천 원입니다. 손님"


아내는 이내 또 고민하는 모습이다. 살아오면서 20만 원이 넘는 가방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내로서는 고민할 법한 숫자다. 이런 아내의 모습에 용돈 통장 잔고를 잠깐 고민하고는 난 이내 멋진 남편의 멘트를 던졌다. 사실 잔고 고민을 할 숫자도 아니었다. 200만 원도 아닌 20만 원에 잠깐이지만 계산기 두드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마음에 들면 그냥 골라요. 나 그 정도 사줄 능력 됩니다."


통장에 있는 돈은 고작 25만 원. 하지만 허세가 아니다. 아내를 위한 진심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렇게 돈이 나가도 당장 이번주면 돈 들어올 곳이 있어서 내지를 수 있다는 나만 아는 소심한 용기다. 고민하고, 무거워졌던 아내의 얼굴이 금세 밝아진다. 아내의 밝아진 얼굴을 보니 이 맛에 선물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분 좋게 포장해서 살포시 쇼핑가방에 들고 집에 왔더니 더 기분 좋은 소식이 나를 반겼다. 아이들도 엄마 선물 값에 십시일반 보탠단다. 십시일반 금액이 기대이상이라 더 놀랐다. 아들은 7만 원, 딸아이는 5만 원. 그럼 난 남은 11만 8천 원만 내면 되는 건가. 우리 아이들도 나랑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아내를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누가 키웠는지 잘 컸다.

관계의 시작은 정해진 규칙이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순간이고, 어떤 장소이건 간에 특별한 인연으로 만날 수 있는 있는 것이 사람 간의 인연이고, 관계이다. 학교에서 친구를, 회사에서 동료를, 외부 동아리에서 선배를 사귀듯이 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다양한 시간, 공간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관계 형성에는 적어도 같은 공간, 시간, 삶의 방식, 유사한 사고 등 많은 이유들 중에 최소한 하나 이상의 공통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간혹 누군가가 자신과 너무 달라서 좋다는 말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생기려면 공감되는 영역이 있던가, 자신과 공통점, 유사점이 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관계의 유지는 더욱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형성된 관계라고 하더라도 알아서 유지될 수는 없다. 서로 간의 호감이 있어야 하고, 유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종종 만나야 안정적인 관계의 형태로 이어진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고, 이는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 간의 관계는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 사람의 전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며 많은 인연을 만나고, 많은 관계들을 형성한다.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수년, 수십 년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관계들 중에 자신의 의지로 형성하고, 유지하는 관계 중 오랜 시간이어가는 사이는 많지 않다. 결혼 한 사람은 아내, 남편이 그것이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친구가 그 이름을 채운다. 많은 인연들 중에 오랜 시간 함께할 선택도 스스로의 의지고, 이를 잘 유지하는 것도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다. 그 사람의 일생을 받아들인 만큼 그런 인연, 관계에 대한 소중함은 늘 잊지 말아야겠다.  


난 오늘 아내에게 백(Bag)을 선물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아내는 가격, 디자인, 쓰임, 사용 예상 빈도 등 많은 판단 기준을 토대로 오랜 시간 사용할 '백'을 선택했다. 최종 선택에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에게 어울릴 것 같은 예쁜 백을 골랐다. 아내 성격상 오랜 시간을 아내 손에 들려서 쓰임을 할 '백'이다 보니 좀 더 신중함과 결단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늘 그 '백(Bag)'을 사는데 내가 든든한 '빽(Back)'이 된 것 같다. 아내의 손에는 '백(Bag)'이 있고, 아내의 옆에는 나란히 서있을 내가 '빽(Back)'이어서 좋다. 아내 입장에선 아주 오래전 선택과 결정으로 인연이 된 내가 오늘따라 더 든든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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