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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1. 2024

이 죽일 놈의 상사놈아

막말하던 상사는 어디로 갔을까

"니들은 어떻게 잊지 않고 매달 회식이냐? 매출 가져오는 영업부서도 아닌 것들이 회사돈으로 꼬박꼬박 회식은 정말 잘한단 말이야. 염치라는 게 있긴 한 거야? 엉"


5년을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다녔던 회사의 경영난으로 여러 차례 급여를 받지 못한 일이 생기고 나니 이직할 회사의 조건은 오히려 간단했다. 급여 주는 데 문제없을 만한 탄탄한 회사면 족했다. 기업평가 보고서를 따로 구매해서 볼 정도로 전문가는 아니지만 코스닥 상장회사고, 업력이 십 년이 넘는다고 하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연봉 조건도 나쁘지 않으니 달리 잴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큰 고민 없이 회사를 옮겼다. 모든 게 만족스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불길한 생각은 비껴가는 일이 없다.


A 이사 등판!!!


이직했던 회사는 5층짜리 작은 건물 세 개층을 임대해서 사용했다. A 이사는 세 개 층 중 하필 내가 근무하는 부서와 같은 층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생긴 것과 똑같은 사람인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는 회사에 몇 안 되는 임원 중 하나였다. 당시 팀장으로 입사한 난 임원이라면 임원에 맞는 품격이 있어야 된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내 상식을 깨버렸다. 이사라는 직급에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언행은 기본이었고, 부하 직원에게 욕설은 습관이 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야 씨~, 넌 과장이나 되는 게 그 모양이냐. 직급을 돈으로 샀니? 왜 그러는 거야"


하다 하다 막말에 인신공격은 그에게 일상이었다. 아주 인성은 쌈을 싸 드셨는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갖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성별 앞에서도 평등했다. 여직원들에게조차 심한 말을 일삼으니 남녀 직원 가릴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있다가 그가 눈에 띄면 피하기 바빴다.

하루는 A 이사의 부서원 한 명이 연차 휴가를 신청했다. A 이사가 휴가 내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해당 부서의 직원들은 휴가를 좀처럼 내지 않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그 부서원도 휴가 승인자체가 어렵다는 걸 알지만 맞벌이에, 애까지 아프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야, A 차장 잠깐 이리 와봐'

주변이 다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A 이사가 휴가를 올린 그를 자리로 불렀다. 휴가 신청한 걸로 한 소리 할 걸 미리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리로 부르니 A 차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 됐다.

'야, 휴가 신청은 왜 하는 거야? 너 이번주까지 마무리 지을 보고서 있잖아. 한가한가 봐. 어?'

'애가 아파서요. 밤에 고열로 힘들어했는데 아무래도 내일 병원을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업무에는 차질 없게 하겠습니다'

'야, 애가 아프지 네가 아프냐?'

자리로 불러한다는 소리가 휴가 사유에 대한 확인이 아닌 휴가 신청에 대한 핀잔, 잔소리였다. 게다가 자신의 화풀이 상대쯤으로 생각하는지 A 차장을 더욱 몰아세웠다. 아무리 회사래도 자식일인데 주변에 앉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언행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로 부서 직원들은 더욱더 휴가신청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아예 휴가 신청에 대한 마음을 접는 직원들도 있었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그의 악행 속에서도 시간은 갔고,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매년 돌아오는 일이지만 직장인들이 가장 설레하는 연초가 됐다. 직장인들이 설레하는 이유는 하나다. 작년 한 해 고생한 것에 대한 회사의 평가와 보상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연봉 인상, 승진 등이 직장에서의 유일한 낙이자 보상이었다.


당연히 평가는 전년도 팀장과 부서장이 하게 되어 있고, 지원 부서에 있었던 우리 팀과 다른 지원부서는 지원본부를 담당한 임원이 평가를 했다. 기대와는 다른 아쉬운 결과의 반복이었지만 적어도 작년과 다른 급여를 받는 것에 작게나마 만족해했다. 하지만 올해는 평가 이후 보상보다 더 충격에 가까운 사실이 지원부서에 들이닥쳤다. 내가 근무했던 A팀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2개 지원팀이 A 이사가 본부장으로 있는 부서로 인사이동됐다. 전년도 매출 목표 미달성에 따른 회사의 결정이었다.  


'야 우리 이제 정말 X 됐다. 어쩌냐?'

'그러게, 이젠 휴가도 마음대로 못쓰고, 회식도 물 건너갔네'


다들 조직개편 이후 모였다 하면 앞으로 회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얘기들 뿐이었다. 다행히 내가 팀장으로 있던 A팀은 신제품 지원부서라 타 부서와는 독립적 운영을 약속받고 기존 조직에 남아있게 됐다. 그런 우리 팀을 보는 다른 팀 동료들은 한동안 부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이렇게 걱정하던 일은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인사이동으로 본부가 바뀐 B, C팀의 팀장을 A이사가 따로 불렀다. 좋은 얘긴 아닐걸 알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얘긴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회의실 자리로 불러서 한다는 얘기가 규제, 제약, 제한에 대한 말 뿐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연봉 올려달라는 얘기만 하지 뭐 제대로 일들은 하는 거야? 급여만 안 오르고 다 오른다는 불만 갖지 말고 제대로 일이나 하고 얘기해. 니들 매달 회식하지. 고객사 나가서 사고 치는 일도 영업애들이 수습하지. 하루 여덟 시간 제대로 일들 하는 거야? 야근 좀 했다고 회사에 돈이나 청구하고. 팀원들에게 전해. 내일부터 시간단위로 뭘 했는지 일일 보고 써서 내게 직보 하라고. 직보! 알았어?'


얘길 듣고 나서도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B, C 팀 팀장들은 귀를 의심했고, 팀원들에게 전달하는데도 어려움이 컸다. 외부 지원이 많은 부서다 보니 시간단위 일일보고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함께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A 이사만 제외하고는. 다들 불만은 가득했지만 이후 찾아올 후폭풍이 두려워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고, 한동안은 시간단위 보고가 계속됐다.

망신당한 A 이사는 결국...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일부 부서끼리 통합 워크숍을 갈 일이 생겼고, A 이사가 포함된 본부와 우리 본부가 모두 참석하게 됐다. 워크숍은 처음부터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난다고 하지만 해 떨어지면 결국 회의대신 술로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날 워크숍도 저녁자리부터 술자리가 됐고, 외부 식당에서 1차를 끝내고, 가장 큰 숙소 거실에서 그 술자리는 이어졌다.


참석 인원이 사십 명은 족히 됐고, 1차에서 취한 직원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차 자리를 지켰다. 직원들은 평소 회사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들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직급, 직책을 떠나 농담도 하고, 진지한 얘기들이 오가며 웃기도, 울기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한참을 옆에 있는 연구소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던 내 옆에 누군가 앉았다는 걸 안건 한참뒤였다. 한쪽만 보고 얘기하던 내게 반대편 당시 본부장이 불렀고, 그제야 내 옆에 앉아있던 A 이사가 눈에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까닥'하고 인사한 난 오른 취기를 빌어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다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이고, 어쩐 일로 A 이사님이 이렇게 직접 제 옆으로 행차하셨습니까? 제게 할 말 있으면 있던 자리에서 부르시지. 술이 취해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하, 김 팀장처럼 잘난 사람하고 얘기하려면 내가 직접 와야죠. 뭐 아니꼬워도 내가 본부장이 아니니...'

입사 초에 한 차례 껄끄러웠던 일(해외출장 건으로 말다툼)이 있어서였는지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팍팍 냈다.

'그러게요. 말씀 잘하셨네요. A 이사님이 제 본부장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니 B팀, C팀 애들 불쌍해서 전 못 보겠더라고요. 일일 보고도 힘들구먼 시간보고가 말이 됩니까. 일 하지 말라는 거죠'

잠깐이지만 내가 던진 말에 그의 표정은 굳었다. 오른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는지 내가 던진 말에 빨개졌는지는 없었지만 얼굴엔 웃음끼가 사라졌다. 무슨 객기였는지 난 그 얼굴을 보고 더 화가 치밀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그가 내 옆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알게 해 줬다.

'적당히 하시죠. 애들 그만 괴롭히고, 일 좀 할 수 있게요. 네?' 

속에 있던 말과 함께 덤으로 등짝 스매시를 여러 차례 후려쳤다.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사건을 지켜봤고, 워크숍이 끝나고 한 동안은 모였다 하면 그 얘기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시간 단위 일일보고는 사라졌다. 다행히 그 일을 이유로 내게 징계도 없었다. 오히려 A 이사는 나와 있는 자리를 더욱 불편해했다. 하지만 사람 쉽게 변하지 않듯이 A 이사 또한 변함없이 그 전과 똑같은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문제없는 조직에서야 문제 있는 직원하나 묻어가는 게 가능한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거나, 회사에 변화가 생기면 문제 있던 사람은 따로 구분되기 마련이다. 상무 진급까지 승승장구했던 A 이사는 바뀐 경영진, 다른 임원들과 불화설로 결국 회사에서 정리가 됐다. 회사 이인자라고 자칭하며 떵떵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의 쓸쓸한 퇴장은 그를 제외하고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정규직,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2,195만 명이다. 2024년 3월 기준 근로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56.2시간이다. 30일 기준 5.2시간, 20일 기준으로 할 때는 7.81시간이다. 하루로 환산 시 각각 약 21퍼센트, 32퍼센트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니다.


매일 보는 사람, 매일 보내는 장소임에도 불편하고, 힘이 들고, 괴롭다면 하루가 얼마나 고될까.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일상처럼 반복된다. 정작 본인이 선택해 들어온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쉽게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자신의 인내심도 시험해 보고 나서야 회사와의 작별을 선택하게 된다.

당연히 급여 조건, 근무 조건, 복지, 업종 변경 등 많은 이유들이 긍정적 변화나 발전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피치 못한 사정에서 그만둬야 하고, 떠나야 하는 일도 많다. KBS에서 2022년 조사한 '청년층 퇴사에 대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약 7명은 직장에서 1~2회 퇴사를 경험했다고 한다. 퇴사의 가장 큰 사유는 임금, 보수였지만 적지 않은 답변이 조직 내 불합리한 대우와 직장 내 관계의 어려움을 들었다. 실제 이런 이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15퍼센트를 넘을 정도이니 내 주변에도 이런 어려움으로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최근 지나친 민원에 시달려서 자신의 생명을 버린 공무원들 뉴스를 들었다. 그들에게는 퇴사의 결정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극단적 선택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조직 내 관계, 불합리함은 아니지만 이 또한 회사 일을 하며 생긴 일이고, 관계의 어려움과 불합리함의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혼자 일을 하는 사람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옛말에도 있듯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고 했다. 직장에서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업무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선과 악, 인성 등의 문제지 업무의 성과는 성과지표에 맞게 평가하고, 그에 맞는 상, 벌만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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