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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07. 2024

아내와 난 9월에 헤어지기로 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의미를 되새기고, 문화로 이어간다면 그 또한 전통

"이제 명절 제사는 너희가 모셔라"


전화 통화 중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말에 조금 놀랐지만 '네'라고 조용히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폐암 확진 후 아버지가 장남이라 이미 제사는 내 몫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명절 제사는 내가 모셔도 조부모님 기제사는 작은 아버지가 모신다고 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내와 내겐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도와 십 년을 넘게 명절제사 준비를 해 왔지만 직접 도맡아서 하긴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첫해가 어려웠지 해가 거듭될수록 익숙해져 갔다. 제사가 마치 원래부터 해오던 일인 것처럼 명절 전에는 괜히 몸도 긴장되고, 명절 때면 명절증후군도 찾아왔다.


한해, 한해 제사를 지내며 요령을 부릴만했지만 처음과 변함없이 올리는 음식 가짓수나 형식을 예전 그대로 따랐다. 그 사이 어머니 기제사가 늘었고, 작은 어머니도 나이 들고 지치셔서 조부모님 제사까지 우리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늘어난 제사가 힘은 들었지만 일 년에 명절 제사, 기제사해서 총 네 번의 제사라 큰 불만 없이 제사를 준비했다.


그사이 시간이 지나며 아내와 나도 나이가 들었고, 주변들 중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분들이 하나둘 늘었다. 처음엔 '긴 세월을 모셨으니 이젠 좀 쉬셔도 되지'하는 생각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도 조금은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번졌다. 우리 마음을 더욱 부추긴 건 아내 주변 지인들이나, 회사 동료들조차도 명절 제사는 간소화하거나 가족들끼리 식사하는 자리로 바꿨다는 얘길 듣고나서부터였다.


그렇다고 우리 제사상차림이 전혀 바뀌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우리 상차림 준비에도 변화가 있었다. 제사준비에 하이라이트였던 '전' 준비하던 방식을 조금은 바꾸었다. 여섯 가지 전을 직접 준비했었지만 이제는 절반 정도만 직접 준비하고, 전, 튀김을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점에 맡긴 지도 몇 해가 됐다. 이것도 명절 때면 하루종일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내를 보고 아버지가 결단을 내린 후부터였다.


'제사 준비할 때 전은 따로 사서 준비하는 게 어떠냐. 영희가 너무 힘이 들어서 안 되겠구나'


전을 사서 준비하기로 한 첫해에는 육전, 산적, 고구마튀김, 오징어 튀김, 호박전, 새우튀김까지 여섯 가지 전을 가짓수대로 샀다. 생전 처음 '전'을 사봐서인지 금액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맛은 더욱더 아내나 나를 실망시켰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다음번 제사에는 육전, 산적, 호박이나 두부 전은 직접 준비했고, 집에서 준비하기 어려운 오징어, 새우, 고구마는 전문점을 이용했다.


그렇게 우리 제사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수박이나 멜론을 올려야 된다고 고집하던 아버지도 물가 상승과 버리는 음식이 많다는 걸 듣고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놨다. 


그러던 어느 명절제사에 올라오신 아버지와 얘기도중 용기 내어 아버지에게 조부모님 기제사에 대해서 의견을 물었다. 말이 좋아 건의지 제사를 지내는 당사자로서 불만을 얘기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는 제가 언제까지 모셔야 할까요? 따지고 보면 작은 집도 있고, 저희가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명절제사도 우리가 다 모시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의 낯빛이 갑자기 당황한 기색으로 바뀌었다. 여러 해 전부터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조금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늘 불만처럼 있었다. 제사 음식을 간소화해서 준비한다던가 다른 방법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릴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함께 의견을 나누고 싶었고, 가족이 모이는 자리답게 모두가 즐거운 자리였으면 했다. 말하려는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말도 의미도 잘못 전달된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고 답을 하셨다.


'전통과는 많이 다르고, 이렇게 해도 되는 줄 모르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를 다음번에 네 엄마 제사와 합치자꾸나. 이번 제사까지만 모시고, 내년부터는 네 엄마 제사와 함께 모셔라'


조금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타협이 됐지만 어찌 되었든 난 제사를 한 번 줄였다는 생각에 기대 이상의 성과로 생각이 들었다. 그 대화 이후 제사에 대한 얘기가 더 이상 오가지 않았고, 몇 개월이 지난 얼마 전 조부모님 제사가 다가왔다.


"영희 씨, 이번 제사 때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다음번부터 어머니 제사에 오시라고 하면 되는 거죠?"

"원래 제사 합칠 때 그렇게 하는 게 맞긴 하다는데, 전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와 엄마 제사를 합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줄일 거면 명절제사를 줄이는 게 맞지 않나요? 조상님은 일 년에 두 번 모시는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는 한 번은 모셔야 되지 싶네요"


아내의 얘길 듣고 보니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보다는 내 기억 속에 계시는 조부모님, 어머니 제사가 더 중요했다. 게다가 결혼 후 한 번도 명절 전날 처가를 방문하지 못했던 아내를 생각하면 명절제사를 한 번쯤 줄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내의 조언대로 하기로 결정했고, 아버지와 이런 대화에 능숙한 아내가 직접 나서는 것으로 이야길 마쳤다.


조부모님 기제사일이 되었고, 제사 전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앉은 식탁자리에서 대화가 한창이었다. 아내가 아버지께 먼저 의견을 물었다.


"아빠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옮기지 말고 그냥 지내요. 그래도 민수 아빠 조부모님이고, 아빠에겐 부모님이시잖아요. 그 제사를 엄마 기제사에 합치는 게 엄마에게도 좀 미안하고요"

"네가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나야 고맙구나. 당연히 아빠 생전에는 그냥 모셔줬으면 하는 바람이긴 해"

"그럼 아빠 저희 추석제사는 제사 없이 보내는 건 어떨까요?"

"아버지 다른 오해는 마시고요. 이 사람 작년에 장인 돌아가시고 아마 처가 식구들끼리 추석날엔 장인어른 모셔놓은 곳에 모두 가기로 했나 봐요"


아버지는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셨다. 게다가 아내만 보내지 말고 나도 함께 추석에는 처가로 내려가라는 말까지 더했다. 아내는 결정해 준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했지만 난 아버지 결정에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 결정에 반하는 내 의견은 아내는 처가로, 난 아버지께 가기로 한 것 때문이다. 자식이 버젓이 있는데 명절에 아버지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어서였다. 아직까지는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길이 다니실만하겠지만 나이가 더 들수록 힘이 드실 테니 내가 자주 찾아뵙는 게 더 맞지 싶어서였다.


내 얘기를 듣기 전 아버지와 아내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내 얘기를 듣고서는 아내는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했고, 아버지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됐다'는 말만 계속했다.

아내의 현명한 생각과 아버지의 큰 결단으로 우린 모두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얻었다. 혼자계시는 장모님도 추석전날부터 딸을 볼 수 있어서 좋을 테고, 아버지도 생전 해보지 않았던 아들과 둘만의 시간에 설레시지 않을까. 아내와 난 제사를 줄이자는 목적 외에도 조금 더 부모님들을 배려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더 기뻤다. 다만 이 결정으로 아내와 난 추석 때만큼은 헤어져야 한다. 모든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라고 하지만 우린 오히려 헤어져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문화와 전통은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통은 지금까지 지켜져 왔고, 지켜나갈 것이다. 다만 모든 전통이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전통을 이어옴에 그 이어온 전통에 맞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 의미만큼은 퇴색되지 않는 선에서 환경에 맞게 변화하것은 순리대로 흐르는 절차다.


누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혀를 찰 수도 있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 역사 속에도, 살아가는 현재에도 전통이 있듯이 한 가족 내에서도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전통이 있다. 형식에 꼭 얽매이지 않아도 의미를 되새기고, 그 가족만의 문화로 이어간다면 그 또한 전통이다.


'왜', '무엇을 위한' 등과 같은 의문을 갖고 해야 한다는 의무아래 단순하게 행해지는 전통이 아닌 의미를 찾아, 그 의미에 맞게 변화하는 전통 또한 지탄이 아닌 박수, 응원받을 만한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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