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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04. 2024

불편할뻔했던 나의 동거인

불편하게 굴어서 미안해요 당신

'계약이 언제까진데 아직까지 집을 안 알아본 거야. 못 살아.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우리 집?... 하숙비 준다고? 얼마 줄 건데'


얼마 전 스마트폰을 붙잡고 통화하던 아내의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내 시선은 TV에 가 있었지만 귀는 온통 아내의 목소리에 집중해 있었다. 잠깐씩 날 살피던 아내도 어느새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민수 방에 짐 넣을 곳이라고는 베란다 밖에 없어. 그래서 얼마나 있으려고...'


아내가 말은 안 했지만 이미 확신은 들었다.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 것이라는 것을. 이런 불편해질 내 마음을 잘 알기에 아내는 전화를 끊고도 통화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잠깐의 어색한 기류는 있었지만 다음 날이 되자 전날 답답했던 집안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일어나지 않은 현실로 미리부터 불편하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우리 사이 무언의 공감대가 있었다. 평소와 같은 거리와 관계 속에 하루하루가 흘렀다.  


그렇게 뜨거웠던 8월도 중순을 지날 무렵 주말을 지날 때였다. 서로 미루고, 미루던 얘기를 아내가 먼저 꺼냈다. 당장 날짜가 임박한 상태여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아내의 초조한 마음이 먼저 얘길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대충 내가 할 얘기는 알죠? 당신 불편한 마음은 이해돼요. 본인도 출퇴근 길이 힘드니 빨리 알아보고 나갈 거예요'


드디어 올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날 현실임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러자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했지만 먼저 얘기도 꺼내지 않았고, 오히려 생각자체를 하려 하지 않았다.


'네, 어쩔 수 없는 건 알아요.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변수고, 경험이 있다 보니... 언제까지라고 못 박은 일정이라도 있었으면...'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고, 더 얘기해도 대안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내와 이런 불편한 상황의 얘기를 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다만 난 두 가지만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집에 들어오면 거실에서 자지 말고, 민수 방 비었으니 민수 방에서 잤으면 해요. 또 하나는 영희 씨한테 이것저것 시키지 않았으면 해요.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이런저런 부탁할까 봐요. 나도 너무 아까워 애지중지하는데 본인 편하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 시키는 게 싫어요. 그렇게 두 가지만 꼭 지키라고 해줘요'


당사자도 아닌 아내에게 다짐 아닌 다짐을 받고 나서야 고민은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늘어난 식구는 다름 아닌 아내의 남동생이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 집에 다시 들어왔다. 8년 만이었다.


처남은 서울에서 살 때만 해도 우리 집에 함께 살았다. 한, 두 해가 아닌 7년을 넘는 시간을 같이 지냈다. 아내와 서울살이 결혼 15년 동안 그 절반을 처남과도 함께 했으니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처음 처남을 집에 들인 건 나였다. 서울로 취업한 처남이 혼자 지내는 게 걱정도 되고, 아내의 동생이니 내 동생이란 생각에 난 집에 들어와 지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길어야 한, 두 해일 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고, 해가 거듭되어도, 이사를 해도 나이만 들었지 여전히 처남은 우리와 함께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끝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 차츰 잊힐 때쯤 우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서울살이를 접고, OO시에 보금자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처남의 회사는 OO시와는 반대편에 있는 경기도 OO시였다.


회사가 서울을 중심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한 터라 출퇴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먼저 나가겠다고 얘기하지 않을 것 같던 처남도 결국 독립을 선언했고, 비로소 우리도 독립을 할 수 있었다.


너무도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살다 보면 다툼이 있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물며 아내의 동생과 7년의 생활은 더욱 예견된 일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 맞지 않는 구석에 대한 불편함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건, 상황을 고려해도 아내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던 나였기에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노력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건 시간이 지나며 알았다. 긴 시간 자신의 동생이 함께 지내고 있으니 아내도 내 눈치를 봤다는 건 당연히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전철을 겪다 보니 요즘의 상황이 낯설지 않았고, 불편한 마음도 익숙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처남이 집에 들어오고 이틀이 지나 아내가 내게 푸념하듯이 말했다.


'둘 사이에서 눈치 보느라 너무 힘드네요'


머릿속을 '땅'하고 치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다. 입으로는 아내에게 마음 편하게 받아들인다고 해놓고, 정작 내 표정과 말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굴고 있었다.


'미안해요, 영희 씨. 제가 영희 씨 많이 불편하게 했네요. 머리로는 괜찮다고 해놓고는 마음 준비가 아직이었나 봐요. 오늘부터라도 편하게 마음먹고 잘 지낼게요'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마워요. 빨리 집 알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빌 테니 조금만 이해해 줘요'

얼마 전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결혼 후 무려 7년을 넘게 함께 동거해 온 아내의 동생이 그 주인공이다. 마흔도 훌쩍 넘긴 중년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막내 동생일 뿐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거라고 기대하지만 있는 동안이라도 아내의 마음 편할 수 있게 잘 지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그나저나 시월에는 나가겠지? 아니 올해 안에는... 제발!!!'



아내가 오롯이 내 여자였다가 가끔씩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누나로 역할을 바꾸는 날이 있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부모의 딸로서, 동생들의 누나, 언니로서 몫을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매번 하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의 모드 변경으로 아내에서 딸, 누나로 역할을 바꿀 때는 욕심내지 않으려고 한다.


당연하지만 내게도 그런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해 당사자가 나일때와 상대방일 때를 구분 짓지 말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어떠한 분쟁, 갈등도 조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마음 불편함은 순간이다. 아무리 불편해도 아내와 피를 나눈 가족이고, 아내의 가족이니 내게도 가족임을 잊지 않으면 한, 두 달 쯤이야 대수랴. 7년도 잘 지내지 않았는가.


가족은 참아내는 게 아니고,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존재다. 매 순간 좋을 순 없겠지만 있는 동안 아내가 불편하지 않게 제대로는 아니지만 그냥 형 노릇을 해봐야겠다. 서로를 위한 삶의 방식이자, 우리를 위한 방안이지 않을까.


난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큰 남자지만 아내를 아프게 할 못난 남자는 아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하고, 아내가 싫어할 만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의 예외는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내 마음을 아내도 알기에 우린 지금까지도 제법 잘 어울린다는 소릴 들으며 지낸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에서는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은 작은 사랑일 뿐이고,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 큰 사랑이라고 했다. 난 아내가 원하는 것도 해주고, 싫어하는 것도 하지 않는 크고, 작은 사랑을 모두 하고 싶다. 그래야 내 사랑에 변명도, 핑계도 없음을 보여줄 테니 말이다.


아내에 대한 내 마음은 늘 한결같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난 지금한 결정에 스스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아내의 모든 내게는 의미가 있었고, 그런 의미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의 일상이 되고, 추억이 됐다. 그래서 우린 오늘을 잘 살고 있고, 충분히 예상되는 행복한 내일도 기대하고 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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