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서 대화가 될 때쯤부터 아내가 장난처럼 했던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프러포즈 장면만 나올 때면 거의 같은 레퍼토리죠.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내에게 제가 대단한 걸 속이고 결혼사기라도 꾸민 파렴치한정도 되지 않을까 가끔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그 얘길 들으며 늘 웃을 수 있는 건 뒤에 나올 말이 따뜻한 우리 연애담인걸 알기 때문에 처음 듣는 얘기처럼 리액션을 하곤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30년 전...
1995년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전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아내는 직장인이었고, 전 국가의 세금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 하던 군인이었죠. 휴가차 집에 왔던 전 아내와 우연찮게 인사를 하게 됐고, 복귀 후 부지런히 편지로 요즘 말하는 '플러팅(Flirting)'을 했습니다. 당시엔 백수나 다름없는 군인 월급으로는 휴대폰은 언감생심이었죠. 돈을 벌고 있는 아내조차도 휴대폰 소유주는 아니었습니다. 워낙 휴대폰 보급률도 저조했거든요.
그렇게 편지를 보냈지만 매번 답장이 오는 건 아니었죠. 그래도 당시 말년 병장이던 제게 남는 건 시간이었고, 자꾸 눈에 밟히는 아내의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죠. 그렇게 쉽지 않을 걸 알았지만, 불굴(?)의 군인정신으로 수개월을 두드렸습니다. 전역 후 끊임없는 관심과 표현에 아내는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했고, 결국 아내와의 긴 연애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린 1일이 됐습니다'
풋풋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나 저나 스물세 살. 지금 아들 나이보다 많은 나이에 만나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손 한 번 잡기 어려워 걷기도 많이 걸었고, 뽀뽀 한 번 해보려다 어색한 분위기도 여러 번 만들었죠. 지금에야 아내에게 자연스레 출근 도장 찍고 나오는 일상이 됐지만 그땐 그 게 그렇게 어렵고, 어색했습니다.
아내와 전 만 오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했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사실 불안 요소는 늘 있었기에 항상 빨리 결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은 연애 초부터 있었죠. 아내는 지방에 있었고, 저는 서울에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아내와 저는 장거리 커플이었습니다. 불안요소라는 게 결국 자주 만나지 못하는 허기 같은 거였어요. 자주 만나봐야 일주일에 한, 두 번이었고, 서로 주말 일정이 생기면 길게는 2, 3주 만에 재회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만날 때는 다른 연인들보다 더 기뻤지만, 헤어짐은 늘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희야, 나랑 만난 지 2년이 넘었잖아. 이 좁은 동네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어. 어디 다른 곳엔 시집갈 생각은 하지도 마. 나랑 결혼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야. 물릴 수가 없어. 알았지? 우린 결혼해서 애도 둘 낳고, 예쁜 집에서 알콩 달콩 살 일만 남았네...'
그런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다 보니 아내에게 습관처럼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아내는 그런 내 '마법 같은 주문'에 설득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문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내 절실함이 만든 행복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혼하고 후회한 게 있다면 그 한 가지일 것 같습니다. 프러포즈를 제대로 안 한 게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걸립니다. TV에서 프러포즈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내는 웃으며 절 한번 '툭' 치고 말지만, 전 늘 죄인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늘 그 '마법 같은 주문'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마법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아마 진심이 전해진 마법이라 더 효과가 컸던 것 같기도 하고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가끔은 연애 때 얘길 합니다. 남들이 생각하면 긴 연애 기간이었지만 전 아내를 만나 진정한 연애는 결혼 후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지금도 아내와 연애 중입니다. 늘 연애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 변치 말라고 늘 제게도 마법을 걸면서 말이죠.
얼마 전 함께 일하는 동료가 결혼하길 잘했다고 던진 말에 전 조금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 부부 갈등도 있었던 동료라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에 조금은 의아했거든요. 그래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봤어요.
'얼마 전 친구가 하늘나라에 갔어요. 회사에서 연락이 안 된다고 가족에게 연락이 와 찾아가 봤더니 집에 죽어있더라는 거예요. 지병이 있긴 했는데 집에 누가 있었으면... 저도 혼자 살았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거든요. 함께 있는 아내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변함없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옆을 지키는 사람 중에 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건 외모뿐이 아닙니다. 사람의 성격도, 살아가는 태도나 마음가짐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바뀌는 외모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지만 변하는 성격이나 태도, 마음가짐은 자신이 하기 나름입니다.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필요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없습니다. 말해야 알고, 표현해야 느껴지는 게 더 많습니다. 갑작스럽게 변하면 죽을 때가 됐다는 농담도 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면 표현하고, 어색하더라도 늦었지만 시작해 보세요. 삶이 바뀌고, 인생이 더 여유 있고 즐거워집니다. 속는 셈 치고 해 보세요. 여러분의 변화는 오늘부터 1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추억바라기입니다. 이번 주부터 새롭게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내의 연애, 결혼생활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미소가 읽는 분들께도 옮겨갈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써 나갈까 합니다. 누구나 마음먹고 쓰면 책 한 권은 나온다고 합니다. 종종 아내와의 따뜻한 일상을 옮길 때마다 글 읽고 응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이번 연재에서는 아내와의 행복 자랑을 책 한 권 분량으로 한 번 마음먹고 해 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께 위로, 응원, 온기를 줄 수 있는 글로 꾸준히 인사드릴 수 있길 빕니다. 매주 수요일에 발행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