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남의 남자가 될 테고, 당신 남자는 나잖아요
"오늘 얼굴이 아주 폈어요. 입이 귀에 갖다 걸릴 거 같네요 영희 씨~"
이틀뒤면 군에 있던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 오랜만에 나오는 휴가라서 인지 아내의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같이 좋아 보였다.
아들은 운전병으로 복무 중이다. 안 그래도 군대에서 보내는 첫겨울이라 고생스럽겠다 늘 걱정이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웠던 건 바로 매일 운전해야 하는 운전병이라서였다. 운전이 익숙지 않은 것도 걱정인데 복무지역이 강원도 최전방 지역이니 눈길 운전은 피할 수가 없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아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민수는 딱 아빠 업그레이드 버전이야'
아들이 아빠보다 낫다는 말을 가끔 아내로부터 듣곤 했다. 당연히 자식 자랑이야 부모의 권한이자 의무지만 남들 앞에서는 얘기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말처럼 자식 이쁜 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이자, 진실이니 객관성 잃은 자기주장이 될 수 있어 참는 편이다.
하지만 자랑하는 자식의 부모끼리야 뭐 흠 될 게 있겠는가. 그래서 아내는 곧잘 아들자랑을 내게 한다. 이런 아내의 아들 자랑이 그래서 듣기 좋다. 이런 여러 가지 아들 자랑 중에 객관성 있는 자랑도 존재한다. 그게 바로 운전이다.
집에 차도 없는데 아들은 대학에 들어가고서 첫겨울방학에 바로 운전학원을 등록해 면허부터 땄다. 이렇게 발급받은 운전면허증과 봉사점수를 활용해 이듬해 운전병에 지원했고, 지금도 운전병으로 군에 복무 중이다.
'아드님이 운전을 하신다고요? 아빠도 못하는 그 어렵다는 것을 크크'
물론 주변에서 운전을 안 하는 나를 곧잘 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번 아들 휴가 때는 아들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 휴가 이후로 100일 하고 며칠이 더 지나서야 아들은 다시 휴가를 나왔다. 상병이라는 계급 때문인지 얼굴에서 풍기는 여유가 지난번과 사뭇 달랐다. 나도 아들이 보고 싶었지만 아내의 심정과는 차이가 컸다. 들어오는 아들을 바로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삼십 년 전 첫 군 휴가 때 어머니 얼굴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저녁식사 시간 얼굴을 마주하고 온 가족이 앉았다. 아들의 근황이야 매주 전화하는 아들덕에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 보며 얘기하는 속얘기와 같을 수 있을까.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도 우리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드님, 그래 이번 휴가는 토요일까지라고?"
"네, 미리 얘기했던 것처럼 이번 주 목요일에 두 분 다 시간 되죠? 아빤 휴가 내는 거죠?"
길지 않은 휴가이기에 우리는 모든 날을 함께 할 욕심을 낼 수 없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아들에게는 연애하랴, 친구들 만나랴 짧은 휴가 기간을 쪼개서 할 일이 많았다. 다행히(?) 아들은 아내와 나를 위해 하루를 모두 할애했고, 아들 스케줄에 따라 난 회사에 휴가도 쓰고, 하루를 보낼 스케줄을 잡았다.
'아들, 아들 운전하는 차도 한 번 타볼 겸, 바람도 쐴 겸 해서 목요일에 차량 렌트할까?'
그렇게 내가 차량 렌트를 제안했고, 목요일 아침부터 렌트한 차량을 이용해 우리 셋은 열심히 하루를 보냈다. 파주 출판단지에 가서 지혜의 숲(복합문화공간)에서 책도 보고, 산책로를 따라 산책도 했다. 맛있는 한식집에 가서 청국장에 밥 한 그릇도 '뚝딱' 비우며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채웠다. 평소 같으면 생각도 못했겠지만 운전병 아들덕에 장거리를 이동해 소울원이라는 근사한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차 한잔과 긴 대화, 짧은 산책을 즐겼다. 움직임 덕에 불렀던 배도 금방 꺼졌고, 보드 게임방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까지 했더니 어느새 저녁시간이었다.
마무리는 딸이 다니는 학원 근처로 가 딸이 끝나는 시간에 차량으로 픽업해 완전체인 네 가족이 저녁만찬으로 하루를 끝냈다. 알차게 보낸 밖에서의 열한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덕에 피곤할만했지만 아내나 나나 아들덕에 힘이 든지도 모르고 잘 놀았다는 생각뿐이었다.
렌트한 차량과 운전해 준 아들 덕분에 평소에 잘 다니지 못했던 곳을 다니며 하루를 즐겼다. 특히 다 큰 아들이 부모인 우리들을 위해 하루를 오롯이 비워내 준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나 부모의 뜻을 따르지 자라면 자기 뜻대로 한다며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서운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잘 자라줘서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자식이라면 서운한 마음보다 잘 자라줘서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아들을 보는 아내나 내 마음이 그렇다.
아들의 부대 복귀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들에게 아내가 말했다.
'아들, 오늘은 조금만 일찍 귀가하면 안 될까?'
휴가 첫날과 목요일을 빼고는 늘 귀가 시간이 12시를 넘겼으니 자연스러운 부탁이었다. 휴가동안 난 아들 얼굴 한 번 보려고 자는 녀석을 보고 출근할 정도였으니 아내는 내 심정도 어느 정도 헤아려서 한 말일테다. 게다가 휴가 복귀가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 아쉬운 마음이야 백번 이해가 갔다. 그런 바람을 알았는지 아들은 웃으며 노력해 본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아들, 오늘은 노력해 본다며? 너무하셔 아드님!!!"
"하하, 그러게 노력해서 안 되는 일도 있나 봐요. 엄마 이거 선물이요. 명화가 그려진 차 받침대랑 책갈피. 아빠랑 지수 책갈피도 사 왔어요"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은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은 시간이 돼서야 집으로 귀가했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 품 안에 자식이 맞다. 그래도 기다렸을 엄마 마음 헤아려주는 게 어딘가.
주말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 속 오애순(문소리)이 시장에서 오징어를 산 한 모녀에게 남편 자랑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신이 젊었을 때는 오징어 손질도 못하게 했다는 남편 얘기와 딸의 안부 전화를 주변 다 들리게 크게 하는 장면 속에 주변 상인들이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아저씨가 다해줘서. 나 다칠까 봐. 나 무섭다고'
'오애순이 자랑 1절 나왔네'
~ ~ ~
'응, 딸. 맨날 엄마 밥 먹는 게 그렇게 궁금해?'
'애순이 자랑 2절 나왔쩌'
드라마 속 이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남편과 자식들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는 아내를 보며 안 그래도 공감이 많이 간 이 드라마가 더 재미있어지는 이유다.
'그래도 영희 씨, 영희 씨 자랑 1절은 끝까지 옆에 있을 테니 애순이처럼 우리 자랑 2절은 조금은 내 맘같이 않아도 서운해하거나, 아쉬워하지 말자고요. 잘 자라준 것만 해도 고맙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