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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함께 살았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답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by 추억바라기

아내는 내가 TV를 볼 때면 종종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 숏츠를 본다. 서로의 다른 취미에도 우린 한 공간에서 함께 무언가를 하곤 한다. 다만 다른 부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의 흐름을 끊는 일이 많다.


"영희 씨, 이번 주에 약속 있다고 했죠? OO 언니 만난다고 했던가요?"

"네, 이번 주 수요일에 점심 먹기로 했어요. 언니한테 가져다줄 것도 있고..."


"철수 씨, 여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동작해 봐요. 저게 허리 하고, 골반에 좋은 운동이래."

"아, 그래요?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되나. 아닌가 난 잘 안되네요."


뭐 이런 식이다. 대화 내용은 특별히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짧은 저녁시간 속 서로가 다른 취미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로에게 항상 공감을 얻고, 구한다. 우리 부부는 마치 각자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함께하는 것 같은 공간 속 유대감을 느낀다.


우리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때도 난 TV를 좋아했고, TV 보는 내게 아내는 지금과 같은 소통을 원했다. 하지만 우리의 소통은 원활하지 못했고, 그 원인 제공은 당연히 TV와 내게 있었다. 아내의 대화 시도에 번번이 대꾸를 하지 못했고, 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내 혼자 감정을 삭이거나, 가끔은 쌓인 감정을 터트릴 때가 생겼다.


"TV 속으로 아예 들어가시겠네요!!! 자는 사람에게 '업어가도 모르겠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TV 보는 사람에게 '업어가도 모르겠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하하... 철수 씨는 TV 보는 옆에서 내가 업혀가도 정말 모를 거 같아요."


대답 없는 내게 답답했을 아내가 이해는 갔지만 한편으론 나도 나름의 불만이 있었던 때였다. 원래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했고, 실제도 여러 가지를 함께해 낸 적이 드물었다. 모든 일상을 들여다봐도 한곳에 집중하면 다른 일은 관심밖이 돼버렸다. 그게 공부든, 일이든, TV시청이 든 간에.


게다가 내게 취약점은 또 있었다. 여러 곳에서 함께 나는 소리도 잘 듣지 못하지만 한 사람에게 나는 작은 소리도 잘 듣지 못했다. 그래서 직장에서 막내 사원일 때는 회의 때마다 곤욕일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 끝자리에 앉아서 반대편 끝자리에 앉아 있는 관리자 얘길 빼놓지 않고 들으려면 모든 신경을 한 곳에 곤두세워야 했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타고난 신체적 핸디캡 때문에 퇴근해서 즐겨보는 드라마를 볼 때면 아내에게 자주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잦아지다 보니 아내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TV 보는 내겐 자주 말을 붙이지 않게 됐다. 한 동안은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함께하지 못한다는 결핍에서 오는 불안감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을 결혼생활을 함께 했다고 해도 많은 부부들이 하루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작은 양이다. 일반적인 부부들의 평균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몇 시간이 고작이다. 하루 네 시간을 부부가 함께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 년이면 1,460시간, 오십 년을 함께 사는 부부라면 73,000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같이 일 년에 부부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일 천 시간이라고 가정하면 절대 적은 시간은 아니다. 또, 오십 년 부부생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같은 조건으로 계산하면 칠만 시간 이상을 함께하게 된다. 수치만 보면 엄청난 양의 시간이다. 전문분야에서 얘기하는 일만 시간의 법칙으로 환산해도 시간의 양만큼은 전문가 뺨을 쳤어도 여러 번 쳤을 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어진 하루 네 시간, 일 년에 일천시간 이상을 오롯이 서로에게 쓰는 부부는 얼마나 될까? 2023년 대한민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의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 30분에서 한 시간이 39퍼센트로 가장 많다고 한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이다.


하루에 30분씩 꾸준히 소통한다고 해도 일 년으로 환산하면 182시간, 50년이면 9천여 시간이 전부다. 반평생을 함께해도 일만 시간의 법칙을 도달하지 못하는 수치다. 하지만 정작 많은 부부들은 하루에 30분이 아닌 10분 이하의 대화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소통이라고 할 만한 시간은 삼 천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결과로 유추해 볼 때 죽을 때까지 서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일만 시간의 법칙은 관계에서도 통용된다. 전문분야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이지만 관계 속에서 상대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데 걸리는 시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일만 시간을 채우는데 오십 년이 걸릴 일이 아님을 깨닫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상대에 대해 전문가로 거듭나야 우리가 원하는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유지되지 않을까.


이벤트나 이슈가 생겨서 나누는 대화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겪는 일이다. 가족, 친구들과 같이 일상의 이야기가 보편화된 관계가 있는 반면에 이벤트, 이슈가 있어야지 만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벤트가 있어야지 대화가 편하게 이어질 수 있는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는 일상의 대화가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부부간에는 이벤트, 이슈, 일상 등 소통의 주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발표한 인센티브 계획이 될 수도 있고, 무리하게 실적을 요구하는 상사 얘기가 될 수도 있고, 아이 학교 어머니회에서 생긴 황당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부부간에는 서로의 일상, 이벤트 그리고 상대가 궁금해하는 이슈도 대화의 주제가 된다.


'오늘 회사가 큰 프로젝트 계약을 따냈어요. 이게 다 내가 업체 동향, 통계 등을 잘 만들어준 덕이죠.'

'우리 콩국수 먹으러 한 번 가야죠. 다음 주에 갈까요?'


밖에서는 하지 못하는 내 자랑을 아내에게 원 없이 하기도 하고, 다음 주 데이트 할 계획을 미리 얘기하기도 한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각자 보내는 부부관계에서는 모든 일상이 소통의 주제가 되고, 소재가 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일 만 시간은 지날 테고, 어느새 서로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육아를 전담하던 아내에게 하루 중 유일하게 대화라고 할 수 있었던 시간은 내 퇴근 이후였다. 어느 날 시간이 지나며 그걸 왜 잊고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고된 하루의 소통 창구이자, 넋두리를 들어줄 친구이자,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말이다.


언젠가부터 난 그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아내와 소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아직까지도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없는 핸디캡은 있지만 아내와의 소통만큼은 극복 방법을 터득했다.


내 방법은 단순했다. 아내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대화가 오가는 동안은 TV와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연습이 필요했지만 많이 익숙해지고 났더니 잠깐 못 보더라도 줄거리를 이어서 유추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다. 오히려 상상력이 풍부해야 할 작가적 덕목을 더 얻은 기분이 든다.



퇴근하고 아내의 제안으로 한동안 공기놀이를 했다. 아내말로는 손을 많이 써야 뇌 운동도 되고, 치매예방에도 좋단다. 아내는 노동에는 수익이 나야 한다는 말로 '내기' 제안을 해왔다. 정말 못 말리는 아내다.


"공짜가 어딨어요. 무조건 현금 박치기죠. 철수 씨 돈 있죠? 30점에 얼마 할까요?"


우린 오늘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통 중이다. 아내에 대해 이미 전문가가 됐지만 난 꾸준히 소통할 생각이다. 소통을 위한 내기라도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 아내의 패배에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번번이 이겨서 재밌긴 하다. 아쉬운 건 내리 삼일을 내가 이겼더니 아내는 더는 하자는 얘길 안 한다. 그래서 더는 부수익 발생 기회가 없다. 세 번 중에 한 번은 졌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남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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