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때문이 아니라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랐어요"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단순한 격언 같지만,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부모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관계를 익히고, 삶의 방향을 설정해 나간다. 아이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담긴 태도까지 따라 할 때, 부모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아이에게 좋은 혹은 나쁜 영향을 끼치며 거울처럼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 저녁 식사 후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불쑥 아내가 자신의 양육 방식에 대해 자책하는 말을 꺼냈다.
“아이들한테 내가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요.”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내는 평소에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아이들과의 대화에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진심을 다해 애정을 쏟아왔다. 그런 아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기에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보기엔 당신, 정말 아이들한테 잘했어요. 우리 아이들 보면 얼마나 바르게 잘 자랐는데요.”
그럼에도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는 수긍은 되지만, 백 퍼센트 공감은 어렵다고 했다.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첫째 아이를 키울 때의 기억이었다. 아이가 칭찬받을 일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정말 잘했어, 아들. 아들 멋지네라고 칭찬해 놓고, 늘 마지막에 ‘그래도 자만하진 마. 언제나 겸손해야 해’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 말이 지금도 마음에 계속 걸려요.”
아내는 그 말을, 꼭 하지 않아도 되었던 말이라고 했다. 열 살 남짓한 나이에 아이가 무슨 자만을 한다고, 그저 있는 그대로 기뻐해주고 칭찬해 주면 될 걸, 왜 꼭 그런 말로 아이의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었을까라고. 그게 지금도 미안하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순간 멈칫했다. 맞다, 우리 부부는 늘 아이들에게 겸손을 강조했다. 잘한 일에는 칭찬을 했지만, 항상 '교만해지지 말고, 항상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그것이 아이에게 부담이었을까, 혹은 성취의 기쁨을 반감시키는 말이었을까. 아내는 그런 생각이 마음속 한편에 남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내의 자책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따뜻하게 자란 이유는 바로 아내가 그렇게 키워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IT 분야에 종사하며,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야근과 주말 근무가 잦았다. 아이가 아프다고 전화가 와도, 프로젝트 마감이라는 이유로 곧장 달려가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집안에서는 아내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육아, 살림, 교육까지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아내가 자신을 탓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여보, 그런 말 말아요. 우리 정말 최선을 다했잖아요. 아니, 당신은 더 이상 뭘 바랄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어요. 나는 그렇게 믿어요.”
우리는 매일같이 훈계하듯 가르치기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왔다. 아이들에게는 눈으로 보여주는 삶의 태도가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툼이 있어도 금세 화해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함을 자주 표현하며 살아왔다. 그런 일상의 모습이 결국 아이들에게도 스며들었다는 생각이다.
큰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둘째 아이도 자신만의 생각과 주관을 뚜렷하게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소녀로 자랐다. 무례하거나 버릇없이 구는 일 없이,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스스로의 일을 책임지려는 모습은 아내가 늘 강조하던 ‘예의’와 ‘겸손’, ‘성실함’의 결과였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칭찬을 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랐어요.”
때로는 한 마디 칭찬보다, 아이 곁을 지켜주는 일상이 더 큰 사랑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그 일상을 함께 만들어왔다.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었고, 그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에 잔잔하게 흘러들어 지금의 아이들을 만들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는 아내의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섬세한 마음을 가진 엄마이기에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따뜻한 사람으로 자란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엄마라는 거울을 보고 자랐다면, 그 거울에는 분명 아내의 따뜻함, 배려, 존중과 헌신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