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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Oct 08. 2024

중화요리,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내 인생 메뉴 <중식>편


10월 들어 임시공휴일과 국경일, 주말이 이어지면서 퐁당퐁당 출근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지난주에는 사무실에 동료 한 분과 단 둘이 출근한 지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중식 어때요?"


"좋습니다. 저도 평상시 중화요리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짜장면과 삼선짬뽕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레 짜장면에 대한 추억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맨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었던 게 언제지?


그날 대화하면서도 그랬지만, 도무지 딱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초등학교 졸업식날이나 어떤 상을 받았던 날, 어린이날 등등 뭔가 특별한 날에 먹었을 법한 짜장면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집 근처에 중화요릿집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일 테다. 그리고 엄마나 아빠 따라 시내에 나가면 시장통에 있는 오래된 식당에서 팥죽이나 칼국수를 먹었었다.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어봐도 중식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성인이 된 사회 초년생 시절이다.





입사했을 때만 해도 회사는 토요일까지 일하는, 주 6일 근무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매우 추운 12월에 입사를 했는데,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만큼 학생 때는 입어보지도 않았던 정장을 입어야 했다. 투피스 스커트 정장도 있었는데 두꺼운 스타킹을 신고서도 휙휙 불어오는 한겨울 바람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추위는 정말 가혹하다.


입사 후 약 3주쯤 지났을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 차림을 하던 부서 선배님들의 복장이, 토요일이 되면 후드티나 두꺼운 잠바 등으로 많이 자유로워진다는 걸 눈치챘다. 옷의 색깔도 눈에 띌 만큼 다채로웠고.


그래서 1월이 되자 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토요일을 맞아 학생 때 입었던 두꺼운 잠바를 입고 출근하기로 한 것이다. 그날은 몹시도 춥기까지 했다.


진한 주황색의, 양털처럼 꼬불꼬불거리는 인조 털이 잔뜩 심어진 뽀글이 잠바와 길거리를 다 쓸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청바지를 입었다. (당시 H.O.T.의 등장으로 거리엔 온통 똥 싼 바지, 힙합 바지가 유행했다.)


출근했는데 사달이 났다.

다음 달이면 퇴사할 이유로 나를 후임으로 뽑았던 선배는, 그날 진행될 시상식까지는 사진촬영과 취재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 행사는 그룹에서 진행되는 연례행사 중 가장 큰 시상식이었고, 수상자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우리 회사 대표이사, 그리고 그룹의 오너들이 총출동하는 날이었다.


검은색 계열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카메라를 멘 선배는 출근을 좀 서둘렀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도로 곳곳에 빙판이 있었고, 구두를 신고 또각거리던 선배는 그것에 미끄덩 넘어지면서 발목 인대가 늘어나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네가 가야겠다."


"저, 저요?"


입사해서 사장님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였다.

게다가 그날따라 복장은 붉은 곰이 따로 없을 지경인데 하필.


그래도 수상자 사진을 찍어야 했고, 취재도 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나는 간단하게 카메라 다루는 방법을 익힌 후 시상식장으로 갔다.


시상식은 순조롭게 끝이 났다.

그런데 시상식장 1층에 마련된 리셉션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의 홍보담당자들이 카메라맨을 대동해서 방송 촬영이나 사진 촬영을 했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기에 다른 이의 동선을 배려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지나가길 기다리다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그럴 틈이 나지 않았다. 등줄기에 땀이 뻘뻘 났다.


"사람이 걸려 나와도 되니 그냥 찍으세요."


보다 못한 대표이사께서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수상자 가족과 대표이사의 기념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접으며 마무리를  때다.


"자, 식사하러 갑시다. 고생한 우리 기자님도 같이 가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내내 복장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르겠는데 이제는 식사까지 같이 하자고 하니 난감했다. 그렇지만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또 없는, 겨우 입사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다. 결국 따라갈 수밖에.


식당은 관계사에서 운영하는 고급 중식당으로 시상식장에서 옆옆 건물의 맨 꼭대기층에 위치해 있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인사담당자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몇 마디 축하인사와 덕담이 오가고 곧 시작된 식사.

작고 하얀 볼에 담긴 투명하고 끈끈한 수프가 나왔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게살수프였던 듯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짜장면을 먹은 기억도 제대로 없는 내게,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음식들이 차례대로 정갈하게 접시에 담겨 각자의 앞에 놓였다.

사회초년생 때만 해도 나는 정말 입 짧은 사람이라 그때 같이 근무했던 선배들이 지금도 한 마디씩 하는 때가 있다.


그런 내가 처음 마주한 중화요리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대체로 밀가루 옷을 입고 기름에 튀긴듯한 요리들은 튀김옷 속에 어떤 재료들이 숨어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중간에 샥스핀 요리가 나왔는데(이 또한 몇 년이 흐른 후 알았다), 까맣고 그 물컹하게 생긴 것을 어찌 먹을지 난감했다.


"왜 안 먹어요? 대표이사님은 음식 남기는 거 싫어하셔."


맞은편에 앉은 인사담당자가 나지막이 속삭이며 조언했다. 회사 식당에서 잔반 줄이기 캠페인이 펼쳐져 취재를 한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럼에도 끝내 코스로 마련된 고급 음식들에 수저만 갖다 대며 먹는 시늉을 했을 뿐, 먹지 못했다. 여전히 새로운 음식에 대한 겁이 났다.


몇 년이 흘러 그날 맞은편에 앉았던 인사담당자는 나의 부서장이 되었다. 인연은 참 알 수 없다.


"너 아직도 못 먹는 게 많냐? 그날 그 좋은 음식들을 손도 못 대고 치우는데 아오! 얼마나 아깝던지. 사장님 눈치도 보이고. ㅎㅎㅎ"


그리고 창립기념일을 맞아 퇴임하신 대표이사를 초청하는 행사를 할 때, 재임기간 사보기자였다는 이유로 나는 간담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아, 기억나요. 꿋꿋하게 카메라 메고 산행 따라다녔던 사내기자님. 아직도 편식하고 음식 남기나요?"


참석자들이 대표이사와 엮인 에피소드를 말하며 자기소개를 할 때 나를 보며 그리 답하셨다. '편식'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날 그렇게도 '깨작거리던' 모습을 눈여겨보셨을 지도.


"아니요! 지금은 없어서 못먹습니다!!!"


물론 마음속의 외침이었을 뿐, 그저 웃고 말았다.

진작 중화요리의 맛을 알았더라면 그날 최고급 호텔 중식당의 코스요리를 즐겼을 텐데. 오호통재라!






조직문화 업무를 담당하던 때의 속 쓰린 기억이다.


그날은 스탭 임원들과 대표이사의 석식간담회가 있었다. 메뉴는 중화요리로 정해졌고, 회사 인근의 괜찮은 식당을 수소문하여 몇 번의 답사 끝에 메뉴를 미리 주문해 두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


"코스요리 뭐 먹잘 것도 없고. 그냥 메인요리 서너 가지하고 각자 식사나 하지."


담당임원보다 직급이 높았던 한 임원이 말했다(고 들었다).

문제는 시간! 6시 30분부터 석식 시작인데 그걸 말한 시간이 6시였다. 15인분 남짓 주문한 코스요리를 취소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서둘러 메인요리를 다시 주문해 간담회가 진행되는 룸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임원들의 운전기사님들을 불러 모았다.  매번 그렇듯 석식간담회가 늦게 끝날 것을 알고 저녁식사를 하고 온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거의 빌다시피 해서 다른 룸을 빌려 주문해 둔 코스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15인분 정도의 코스요리를 이미 식사를 해서 배가 부른 기사님들과 먹으려니 잘 줄어들지도 않았고 자꾸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간담회 전까지 기미상궁 노릇을 하느라 며칠 먹었더니 중화요리는 물릴 수밖에 없었다.


'먹어치운다'라는 표현을 그토록 싫어하건만, 그날은 코스요리를 먹어치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예약을 회사 이름으로 한지라 노쇼(는 아니었지만)로 어딘가 올릴까 두려웠고, 그 많고 맛있는 음식들이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보관할 수만 있다면 두고두고 매일 와서 먹고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임원들의 석식간담회에선 서너 가지의 메인요리가, 그 옆방에선 임원이 아닌 우리가 숨죽여 코스요리를 먹는 모습이 어쩐지 자꾸만 서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날 같이 코스요리를 먹었던 기사님 중에는 지금도 회사에서 마주치는 몇몇 분들이 있다. 그날 꾸역꾸역 먹방을 함께 했다는 동지애 때문인지 웃으며 안부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짜장면 얘기에  다시 생각나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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