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가 당연한 우리 사회에 많은 파장을 주었다. 공정함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부당한 것,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꼭 맞는 기술인 것처럼 느껴진다. 블록체인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투명함과 탈중앙화를 함께 떠올리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블록체인기반의 탈중앙자율조직(DAO)이나 NFT는 공정함을 추구하는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혹시 이 조차도 공정하다는 착각에 휩싸인 헛된 기대는 아닐까?
DAO의 정의와 작동방식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탈중앙자율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은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지닌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비즈니스 규칙 하에서 운영되는 회사의 형태를 말한다. 주된 아이디어는 계층구조없이 완전한 기능을 지닌 하나의 회사나 조직을 설립하는 것으로, 기업지배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규칙을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인코딩한 후, 자금 조달을 통해 DAO가 운영되도록 한다. 이 자금은 조직 내의 합의 프로토콜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큰까지 포함하며, 투자자는 운영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투표권을 갖는다. DAO가 작동하면 개발자는 물론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오픈 소스이므로 누구나 코드를 볼 수 있고, 모든 규칙과 금융거래는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DAO가 완전히 투명하고 부패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DAO의 구조(출처: Future.a16z.com)
중앙집중식은 여전하다
그러나 DAO의 구조를 보면 결국 초기 DAO를 설계한 사람들, 초기에 투자한 벤처캐피탈 정도가 투표권을 주도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같은 사용자는 결국 네트워크를 사용하거나 관련 토큰에 투자하는 정도로서 DAO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마치 액시 인피니티 게임에서 수많은 사용자들이 Network Contributor가 되어 게임을 통해 돈을 벌지만, 그들 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가는 것은 벤처캐피탈인 것처럼 말이다.
투표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규칙을 변경하거나 혜택을 받도록 할 것이고, DAO 역시 중앙집중식 계층구조에서 빗겨갈 수 없다. 기여의 수준이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무리가 애초부터 그 키를 쥐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규칙 제정, 거버넌스 권한, 인센티브 체계 등을 멤버들의 기여가치에 맞게 보상하고자 DAO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그러한 노력의 끝이 공정함일지, 아니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를 확인하고야 말것인지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DAO Landscape
DAO의 전성시대
어쨌든 DAO의 전성시대가 오고있다. 소셜미디어, 투자, 프로토콜 등 다양한 분야에서 DAO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며, 점차 블록체인 업계의 주류로 진입하고 있다. 코인베이스 최고상품책임자 Surojit Chatterjee도 2022년 예측을 하면서, DAO 2.0 시대를 예견했다. DAO의 효율적인 운영을 도와주는 도구가 등장하고, 기존 웹2.0과의 연계방안도 찾는다면 2021년의 DeFi처럼 2022년도는 DAO의 원년이 될지도 모른다.
크리에이터 친화적 도구, NFT
DAO가 전반적인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NFT는 크리에이터 친화적인 도구다. 웹2.0에서 유튜브, 인스타와 같은 플랫폼이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해 상위 크리에이터가 승자독식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NFT는 직접 거래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센티브 진화 방식
플랫폼 시대에는 크리에이터가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는 경우, 광고수익을 통해 수익을 얻었지만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내놓고 무료로 콘텐츠를 즐겼다. 물론 가장 큰 수익을 올리는 회사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이었다.
이후 크리에이터는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이메일 구독서비스를 시작했고 그로인해 사용자로부터 직접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플랫폼은 여기에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인수하거나 서비스를 새로 만들고있다.
NFT 세상에서는 크리에이터가 NFT를 판매한 후에 사용자가 재판매할 때에도 크리에이터가 그 수익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다. 유통을 컨트롤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배분받는 것을 보면 현재로서는 꽤나 발전한 인센티브 체계로 보인다. (물론 향후 웹2.0기업들이 이 또한 어떻게 포섭할지 모르겠지만)
인센티브 체계(출처: cdixon.org)
NFT 기반의 커뮤니티
예를 들어 아티스트는 플랫폼이나 레이블사 없이 음악 스트리밍을 할 수 있게 된다. Sound.xyz에서는 아티스트와 팬이 커뮤니티에서 이벤트를 갖고, 팬들은 트랙의 NFT를 만들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에 댓글을 남기고 응원할 수 있다. Sound.xyz의 로드맵에 따르면 콘서트처럼 디지털 세상에서 팬과 아티스트가 음악을 함께 듣고, 음악 큐레이터는 신진 아티스트를 발견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아티스트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앨범이나 뮤직비디오를 위한 자금 조달을 할 수도 있다.
다만, 풀지못한 법적 이슈도 존재
물론 NFT는 아직 풀지못한 저작권과 소유권에 대한 법적 이슈가 있다. 뱅크시의 작품을 작가에게 허락받지 않고 NFT로 민팅하여 판매했던 사건처럼, 오프라인 영역의 저작권을 마음대로 NFT화하였을 때 그 소유권을 인정해야되느냐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문제 제기가 일어나고 있다. NFT가 활성화될수록 이러한 문제도 더 많이 공론화될 것이다.
민주주의적 철학의 실현?
디지털 세상에서는 오프라인 세상보다 애매한 문제들이 우후죽순발생하기 쉽다. 우리가 모두 다 컨트롤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투명성과 탈중앙화, 공정한 인센티브 등은 이러한 문제를 다 덮을 수 있는 상위의 가치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과정의 일부일뿐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나 목표를 저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기여자들에게 정당한 가치를 배분해주는 민주주의적 철학을 실현하고자 하는 DAO, 크리에이터에게 정당한 보상을 배분하려는 NFT, 그 매력이 큰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과 합당한 보상, 이러한 신념을 지원하는 블록체인과 생태계를 장미빛 전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적정 거버넌스
그런데 최근 EBS '위대한 수업' 스티븐 크래스너의 강연을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DAO에서의 적정 거버넌스는 무엇일까. NFT에서의 합당한 보상은 어느 수준일까.
적정 거버넌스는 왜 어려운가(출처: EBS)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거버넌스 체계가 다른 것처럼, 웹2.0과 웹3.0의 거버넌스 체계는 많이 다를 것이다. DAO나 NFT 모두 웹3.0에서의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고, 아직 무엇이 '적정'한지는 모른다.
Harvard Business Review에서는 '현실세계와 창작자 세계 모두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데 기여하는 주요 요인은 상위 소득 계층이 보유하고 있는 지렛대'라고 말한다. 자본을 쥐고 있는, 불평등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는 한 웹3.0을 향한 장미빛 전망 역시 허망하게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같은 사용자가 공정하다는 착각을 하도록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고 그들도 수익을 챙기는, 그 적당선이 적정한 거버넌스일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