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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토끼 Nov 16. 2019

끼안띠의 지폐를 모으는 남자

Oliviera Agritusrismo

끼안띠로 향하는 길


 피렌체로 올라가는 길은 몽땅 내가 정했다. 모든 소도시들도 내 마음대로 골랐다. 이날은 피엔차와 몬테풀치아노를 다녀온 길이었다. 수많은 도시들과 에노테카들을 들리다 보니 지금은 아쉬운 치즈가게들도 그때는 발에 치이는 돌부리처럼 평범한 풍경으로 느껴졌다. 마지막 아그리투리스모는 끼안띠 지방에 위치해있었다. 이 지방에서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를 거하게 먹을 생각이었지만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무더위에 녹초가 되어 그저 빨리 숙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숙소는 '올리비에라'라는 작은 와이너리를 가진 아그리투리스모였다. 단돈 75000원에 묵을 수 있는 가성비가 넘치는 숙소였기도 하거니와 소규모 와이너리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는 컸고 와이너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작았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그전에 들린 와이너리들은 백화수복처럼 좀 더 대중에게 보급될 수 있는 큰 유통라인을 가진 사업장이었고 이곳은 경주에 있는 교동법주처럼 아주 소규모로 소량생산을 하는 곳이랄까.

 이곳에서도 역시 야옹이가 주인처럼 누워있었고 민박 주인겸 와이너리 소유주는 와인을 사러 온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바빴다. 와인 설명을 추후에 듣기로 하고 방의 키를 받아 숙소로 왔는데. 오 마이 갓. 여기 숙소 진짜 대박사건이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다이닝은 깨끗함과 정갈함의 끝이었고, 침대 옆에 붙어있는 발코니 또한 환상적이었다. 문을 열고 다녀도 될 만큼 치안 또한 문제없었고 에어컨은 없었지만 천장에 달린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했다.

 짐을 푸르고서 와이너리 및 포도밭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가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Pedro였고(이하 빼드로)자기 소개부터 시작했다.

 P:  나는 이 와이너리의 소유주야. 그리고 엄마랑 나랑 둘이 살고 우리 고양이 폴도 함께 살아. 있다가 보게 되거든 소개시켜줄게. 폴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고양이야. 가고 싶은 데를 마음대로 가고 내가 밥을 챙겨주거든. 내 와이너리는 아주 작은 로컬 와이너리야. 이 지방 사람들에게 공급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수요가 충분하거든. 그리고 사실 큰 와이너리만큼 생산을 하지 못하기도 해. 그나저나 너네 한국에서 왔다며?

 - 우리 한국에서 왔어. 한국인은 처음이니?

 P: 너희의 예약을 받고 사실 정말 좋았어. 내가 내일 조식 먹는데 설명하면서 보여줄 게 있어.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따라와.


 지폐를 모으는 남자


 빼드로는 내일 조식을 먹으러 와야 할 식당을 소개해주었고 그 옆 공간으로 우리를 불렀다.

 P: 나는 지폐를 모으는 게 취미야. 그런데 한국 지폐는 아직 본 적이 없어. 너희 혹시 지폐 있어?

 - 아마도 찾으면 있을 것 같아.

 P:잘됐다! 그냥 달라는 게 절대 아냐. 그 가치에 상응하는 돈을 유로로 꼭 줄게.

 - 됐어 됐어. 그냥 우리가 선물로 줄 수 있어!

 P: 무슨 말이야! 나는 우리 민박에 오는 손님들에게 그 나라의 지폐가 있다면 교환을 하지 공짜로 받지는 않아. 여기에 중국돈도 있고, 세계 2차 대전 당시 돈도 있어.

 - 아니, 세계 2차 대전? 어떻게 그게 가능해?

 P: 우리 동네 할머니가 가지고 계시더라고. 할머니들은 다 가지고 있어. 그래서 돈 주고 바꿔왔지.



 그의 취미는 참으로도 신기하고 신박했다. 하나하나의 지폐를 어떻게 모았는지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표수집은 봤어도 지폐 수집은 처음 봤다. 해맑은 소년처럼 얘기하는 빼드로가 마음에 들었다. 순박한 그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와인 또한 기대가 되었다.


 와인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보급용 와인, 그리고 리제르바 급이 있었다. 빼드로는 순박할 뿐만 아니라 아주 관대했다. 우리가 먹고 싶다는 와인을 그냥 다 따주었다(?). 그리고 정말 솔직하게 이 와인이 맛있다며 추천해주었다. 여기에서 먹은 와인은 와알못인 우리가 먹기에도 아주 훌륭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바디감에 입에 착감기는 와인의 맛은 환상이었다. 빼드로의 자세한 설명과 시골에서의 한적한 여유로움도 한몫했으리라. 리제르바 와인을 20유로에 살 수 있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기억이 난다.


 - 빼드로, 너 와인 한국에도 좀 팔면 안 돼? 네 와인 한국에서 엄청 잘 팔릴 것 같아.

 P: 음, 우리 해외배송도 하긴 해. 근데 중국까진 보내봤는데 한국은 안보내봤어. 아마도 비슷하겠지? 그런데 나는 워낙에 소규모 와이너리라서 보통은 배송비가 더 나와. 그래서 손님들이 오시면 다 사서가. 그리고 나는 이 지역 레스토랑에 공급을 해. 그것만으로도 내 생산량을 다 소진할 수 있어서 해외까지는 아마 불가능할 것 같아.


 그의 말에 나는 놀랐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이태리 와인들 말고도 이런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이렇게 좋은 와인을 생산해낸다니. 또 이태리에 와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빼드로 집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었기에 주변에 레스토랑이 있는지 물어봤다.


 P:  여기서 5분만 차를 타고 내려가면 피자집이 있어. 포장도 가능하니까 거기서 사와. 잘해!


 피자를 사러 5분이 넘게 차를 타고 갔는데 길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걸까. 15분쯤 지났을까. 그가 말한 핏제리아가 나타났다. 여행 메이트와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어떻게 5분? 그 전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던 운전자들의 속도로 시골길을 달려야만 5분 내에 도착할 것 같은 그 핏제리아 또한 환상적이었다.


 마르게리따 피자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레스토랑 뷰가 환상적이었다. 어쩜 이렇게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울까. 내 기분 탓일까 실제로 사랑스러운 곳일까. 지역 주민의 추천으로 온 핏제리아에서는 귀여운 피자 포장박스에 넣어주었고 우리는 곧장 숙소로 달려갔다. 끼안띠에 오는 길에 들러 샀던 와인과 마시기 위해서.


 

포도밭에서 보는 석양은 과히 낭만적이었고, 우리가 한국에서 이고 지고 온 테이블보와 블루투스 스피커는 이날 빛을 발했다. 어느 식사보다 차린 것은 없어도 분위기가 먹어줬다. 이 맛에 여행가지.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가는 길, 우리의 오천 원이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지폐를 모으는 남자의 한 칸을 우리가 채워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얼마나 뿌듯한가. 그의 첫 한국손님이었던 우리가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조식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어제 소개받았던 폴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는 어딘가를 나갔다가 밥때가 되면 돌아온다고 했다. 빼드로는 소박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조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페코리노 치즈는 특별히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이 지역의 특색 있는 치즈인데 냄새가 강해서 입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꼭 먹어보라고 신신당부했다.


 

끼안띠에서 묵은 이 밤을 잊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사 온 와인은 신줏단지 모시듯 한국까지 옷들로 둘둘 싸매어 가지고 왔다. 그리고 끼안띠가 생각 나는 밤 병을 깠다. 아그리투리스모를 딱 1박만 한다면 나는 꼭 여기를 추천하고 싶다. 가족까지 데리고 와 몇 개의 방을 예약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한 숙소.


 가끔 와인을 마실 때 지폐를 모으던 빼드로가 생각난다. 올해 와인은 잘됐을까, 새로운 지폐를 더 모았을까 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여행 메이트와 나눈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이 와이너리에 다시 한번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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