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자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안정환이 뛰었던 곳이라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 거쳐온 도시들에 비해서는 꽤 규모가 있었고 콘도들이 군집해있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 같았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페루자의 초입은 아주 한적하여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세 느낌이 팍팍 드는 골목을 지나 광장으로 가니 탁 트인 페루자의 중심가가 나왔다. 도시 안에 큰 마트도 있고 제법 활성화가 된 이 곳은 인생 피자를 만난 곳이기에 잊을 수 없다.
트러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송로버섯으로 파스타에 휙 두르면 그 풍미가 살아난다는, 죽은 음식도 살려낸다는 기적의 소스. 한국에서는 쉬이 구할 수 없는 재료이기에 비싸기도 하거니와 트러플이 들어갔다 하면 음식의 가격이 배로 뛰기 마련이다.
페루자에서 만난 트러플 가게는 단연 으뜸이었다. 작고 좁은 이 가게의 주인은 본인이 트러플을 찾으러 가기 위해 강아지를 데리고 나섰던 사진을 보란 듯이 걸어두고 있었다. 트러플만을 전문으로 한 상점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어떻게 트러플을 찾는지 설명을 듣고 싶었다.
- 트러플은 개코로 찾아야 해요.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트러플을 아주 잘 찾아내는 착한 친구입니다. 여기 있는 트러플은 나와 내 친구들이 찾아낸 것들로 만들어졌어요. 최상품이라고 할 수 있죠. 트러플 보실래요?
가게 주인이 보여준 트러플은 아주 굵고 실했으며 박스를 열자마자 가게 전체에 트러플 향이 퍼지는 것 같았다. 아저씨의 자신만만한 소개에 이끌려 우리는 오일에 담긴 트러플 소스와 크림소스 몇 개를 사 왔다. 나중에 요리해 먹어 보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겠더라.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는 주변의 가게를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뿐이었다. 정말이지 그런 곳은 가기 싫었다. Yelp를 빛의 속도로 검색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태리 와서 제대로 된 핏제리아에 못 가본 것이 전광석화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핏제리아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제대로 된 화덕피자를 여행 메이트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겨우 찾아낸 그 가게는 20분 후 영업이 종료된다고 쓰여있었다. 점심 장사 후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가게였던 것이다.
- 일단 가보자. 가서 비벼보자.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 종업원은 곧 가게가 문을 닫을 것이며 주문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피자 정말 한판만 먹고 갈 거고 사우스 코리아에서 멀리멀리 왔는데 제발 들여보내 달라고 빌었다. 먼 타국에서 온 한국인들이 불쌍해 보였는지 -게다가 피자는 인당 1 판도 아니고 둘이 1판을 시킴- 주문을 받아주었고 기적적으로 우리는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0분. 그 와중에 맥주도 주문하였다. 이 지역 맥주 하나와 기네스 하나. 한 여름 맥주 맛이야 말해 무엇하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아주 촉박했기에 더욱 귀한 맛처럼 느껴졌다. 화덕에서 갓 구워져 나온 피자는 따끈하면서도 고소했다. 왜 이태리 사람들이 피자를 한 판 씩 먹는지 알 것 같은 곳이었다. 가게를 둘러보니 가족모임까지 할 정도로 잘되는 곳이었다.
나의 맛집 레이더망은 틀리지 않았지만 미리 알아보지 않은 탓에 피자를 욱여넣어야 했던 아쉬운 경험이다. 다음에 이태리를 간다면 여행 메이트는 페루자에 가서 반드시 여유롭게 이 핏제리아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며 인생 피자를 먹고 싶다면 꼭 페루자에 들리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