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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투표해 보는 독일 어린이들

어른들은 보수정당 CDU에, 아이들은 좌파정당 Die Linke에 1위를

by 이진민 Feb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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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의회 선거 결과]


   어제는 이곳 독일에서 연방의회 총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중도 보수 성향의 기민당(CDU, 기독민주당)이 1위를 차지하여 메르켈 이후 3년 만에 보수당이 집권하게 되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가 현 총리인 사민당(SPD,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의 뒤를 이어 차기 총리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입니다 (사진 출처: AP)이 분입니다 (사진 출처: AP)

   메르츠는 같은 당 안에서 메르켈의 오랜 라이벌이었습니다. 2000년 당 경선에서 메르켈에게 패한 뒤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 2009년 정계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돌아갔다가, 2018년 메르켈 전 총리의 후계자를 뽑는 기민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약진하는 가운데, 독일의 보수 유권자들이 극우 정당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메르켈 때보다 우경화된 방향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이민·난민 문제에 강경한 입장인데, 최근 극우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손잡고 초강경 이민 통제 결의안을 통과시켜 잠자고 있던 메르켈을 깨우기도 했지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내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출처: AP)"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내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출처: AP)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이었는지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불법 이민자 추방, 전면적·상시적 국경 통제, 유효한 서류 없는 이민자의 입국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결의안에 집권 여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이 반대표를 던지자, 메르츠가 AfD와 손을 잡고 찬성 348표, 반대 345표로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죠. 그러자 퇴임 후에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내지 않던 메르켈이 뛰어나와 메르츠를 비판했습니다. 외신도 "독일의 원내 정당들은 '나치의 후예'로 불리는 AfD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그간의 금기를 깨뜨렸다고 보도했던 사건입니다.)


   이번 선거 결과 각 당의 득표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빨간색이 현 집권 여당인 SPD(사민당), 검은색이 메르츠가 이끄는 CDU/CSU(기민당·기사당 연합), 녹색이 지난 선거에서 제3당의 위치에 올랐던 Grüne(녹색당)입니다. 기존 5위였던 파란색의 약진이 돋보이지요. 바로 AfD(독일을 위한 대안)입니다. 독일의 극우정당으로, 최근 일론 머스크가 공개적으로 지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정당별 득표율정당별 득표율

   아래는 지난 선거와 비교해 각 당의 득표율 득실을 퍼센트로 따진 자료입니다. 빨강과 노랑이 크게 세를 잃은 것으로 보이는데, 각각 집권 여당인 SPD(사민당), FDP(자민당: 자유민주당)입니다. 빨노초, 소위 ‘신호등 연정’이 모두 타격을 입은 것이죠. 반면 AfD는 지난 선거 대비 10.4%나 더 많은 득표로 제2당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나치의 후예들이 주류 정당으로 올라서다니, 가출하고 싶습니다.)

지난 선거 대비 득실 비율지난 선거 대비 득실 비율

   메르츠 대표는 앞으로 독일을 이끌기 위한 연립정부 구성에 나서게 됩니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이후로, 단 한 번도 특정 정당이 단독 집권을 하지 않고 연립정부를 구성해 왔어요. 다당제와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서 하나의 정당이 쉽게 절대다수를 점하지 못하게 해 놓은 덕분인데, 유일하게 57년 총선에서 CDU가 단독 과반을 얻었지만 이때도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거대 여당의 횡포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독일의 정치문화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 2당의 지위에 올라선 AfD의 바이델 대표가 이번 연정에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이번 총선에서 CDU, SPD, Grüne, FDP, Die Linke 등 독일의 주요 정당 모두가 극우와는 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메르츠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데, 현재 독일 사회에서는 기존의 집권 여당인 SPD와의 연정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각 정당의 연령별 득표율각 정당의 연령별 득표율
성별에 따른 정당 지지도성별에 따른 정당 지지도
학력에 따른 정당 지지도 (이런 것이 필요하나 싶지만 가장 변동이 큰 지표라 흥미롭기는 합니다)학력에 따른 정당 지지도 (이런 것이 필요하나 싶지만 가장 변동이 큰 지표라 흥미롭기는 합니다)

   위의 자료들은 각각 연령, 성별, 학력에 따른 득표율 분석인데요. 이래저래 흥미로운 지점들이 보입니다. 저는 특히 25세에서 44세의 비교적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AfD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겁하고 있는데요. 원래 독일에서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정당은 녹색당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족과 인종이라는 오래된 이슈가 미래의 환경 이슈를 잡아먹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무겁네요. 원래 정치란 것이 시소 같은 것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우경화되는 양상을 독일에서도 예외 없이 확인합니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색깔이 하나 보입니다. 보라색인데요. 18-24세의 가장 어린 유권자들은 Die Linke, 즉 좌파당에 1위를 주고 있네요. 오늘 글의 진짜 주제는 사실 이보다 더 어린 세대를 향합니다.


[미래 유권자들의 모의 투표, Juniorwahl]


   선거를 3주 정도 앞둔 시점에 첫째 아이가 이런 것을 받아왔습니다. 2025년 Juniorwahl, 즉 주니어 투표를 위한 투표권 같은 건데요. 저희 아이는 지금 만 10세, 독일 학교 시스템으로는 5학년으로 중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독일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하고 졸업이에요.)

브런치 글 이미지 8

   아이에게 물어보니 이번에 실제로 출마한 후보자와 정당을 수업 시간에 하나씩 살피고 토론한 뒤에, 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직접 투표를 한다고 합니다. 즉 5학년이 되자마자 실제로 투표 예행연습을 시킨다고 보면 되겠죠. 그것 참 잘하는 교육이다 싶었습니다. 아이는 실제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후보자 한 명과 정당 하나에 각각 한 표씩, 총 두 개의 표를 행사하고 왔습니다.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1999년부터 독일 전역에서 이 주니어 모의 투표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 우리 동네에서 진행되는 선거만큼 생생한 독일어·역사·사회 수업자료도 없겠지요. 수학과 미술 수업에서도 통계라든지, 선거 홍보물 같은 것과 연계해서 선거 관련 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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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주니어 모의 투표는 독일 연방 의회를 비롯한 각계의 후원을 받아 시행되는데, 이번에는 전국 1,812개 투표소에서 18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 166,443 명이 투표했다고 합니다. 90.37%라는 인상적인 투표율을 보니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어른들의 투표율이 부끄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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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투표 결과는 독일 언론에서도 관심 있게 다루어 줍니다. 결과를 살펴보니 Die Linke(좌파당)가 전체의 20.84%를 차지해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그 뒤를 이어 SPD(사민당)가 17.92%로 2위, CDU/CSU(기민당·기사당 연합)가 15.74%로 3위입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시면 비교가 쉬울 거예요. 왼쪽이 주니어 모의 투표, 오른쪽이 실제 총선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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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e Linke가 어린 세대에게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경제 활동과 독립을 시작하는 시기가 빠른 독일의 청소년들에게 현재 독일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인플레이션, 주택 문제와 복지 등에 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대책을 내놓은 부분이 주효했다는 평입니다. 요즘 젊은 유권자들에게 멋지고 힙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도 하고요. 왼쪽 팔뚝에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문신을 새긴 서른 여섯살의 젊은 당대표 하이디 라이히네크가 요즘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거든요. AfD와 손을 잡은 것을 두고 CDU의 메르츠 대표를 매섭게 추궁하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최근 틱톡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다고 합니다. 그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별로 주목 받지 못하다가 이번에 크게 약진한 AfD는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상적인 선거 캠페인을 펼쳤다고 해요. 어린 유권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경제뿐 아니라 교육 정책, 기후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동물 복지, 이민 정책, 아동의 권리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생각해 보고 투표를 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녹색당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이유가 궁금한데, 이에 관한 기사는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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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세대가 직접 선거를 경험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 어른들도 이 목소리를 귀하게 들어준다는 점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이 주니어 모의 투표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고,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여 젊은 세대를 민주주의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문제에 관해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가지고 토론한 뒤에 실제 한 표를 행사하는 것도 무척 좋은 경험이지만, 투표소의 선거 도우미가 되거나 후보자와의 토론 패널을 조직하는 등 굉장히 실제적인 방식으로 선거를 경험하기도 한다고 해요. 저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실제로 민주주의 동아리가 있기도 합니다. (동아리 이름이 굉장히 담백하게 '민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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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선거가 치러지기 일주일 전쯤에 발표되는 이 주니어 모의 투표 결과는 정치인들 뿐 아니라 다른 세대에게도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는 24년부터 유럽의회(Europawahl: EU의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선거. 독일이 9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81석, 이탈리아 76석, 스페인 61석의 순서.) 선거연령을 16세로 낮추었고, 지방선거에서도 16세부터 실제 유권자가 되는 주들이 많아요. (참고로 이번에 실시된 연방선거(Bundestagswahl)는 아직 18세가 기준입니다.) 기후나 이민 정책 같이 미래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문제들이 많아지는 시점에서, 그들의 미래를 다른 세대가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였지요.


   아이에게 어떤 정당을 뽑았는지 물어봤는데 비밀이라면서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아이와 정치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한국 뉴스에 깊이 처박고 있던 코를 빼내어 독일 정치와 사회문제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Kenneth Andersson (Financial Times)© Kenneth Andersson (Financial Times)

[곁다리로 붙여보는 작은 아이 이야기]


   작은 아이는 이제 8살로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초등학교의 사회·자연 과목에 해당하는 HSU 시간의 이번 테마가 '불'이어서, 동네 소방서에 불 끄러 다녀왔다고 해요.


   가능하다면 교실에서 글로만 배우지 않고 최대한 생생하게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점이 학부모인 저로서는 무척 고마운데요. 참고로 불 이전의 테마는 '숲'이었는데,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 동네 숲으로 세 번이나 나가더라고요. (적절한 옷을 입혀줄 것을 부탁하는 통신문이 계속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테마는 학년별로 다시 변주되어 돌아오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모두 숲에 나갑니다. 산책하러 아이들과 밖에 나가면 이 나무는 이름이 뭐고, 특징이 뭐고, 두 녀석이 조잘조잘 얘기해 주는데 멍청한 엄마는 자꾸 까먹습니다.

   이번 소방서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엌에서 뜨거운 기름에 불이 붙었을 때, 잘못해서 불을 끈다고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고 해요. 안전하게 공터에서 뜨거운 기름에다 물을 부어 보여주신 모양인데 "펑!"하고 엄청나게 폭발해 버린다고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눈을 빛내며 그 상황을 묘사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 오늘 뭐 한 가지를 제대로 배웠구나' 싶더라고요.

"엄마, 기름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꺼야 하는지 알아?"

"물 말고 모래를 뿌려야 돼."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모래? 모래를 가지러 밖에 나갈 수가 없잖아."

"...ㅎ_ㅎ...(눈만 껌뻑)"
"엄마, 부엌에서 불이 나면 뚜껑을 덮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래. 더 탈 수 있는 게 없어지니까. 뚜껑을 덮고, 거품(소화기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을 찾아와서 지켜보다가 불이 안 꺼지면 그때 거품으로 끄면 돼."


   생각해 보니 저는 불 끄기를 그야말로 글로만 배웠더라고요. 그렇죠, 그 상황에 모래를 가지러 나갈 수 없을뿐더러 (그리고 삽질을 언제... 아니 삽은 또 어디에 있담.) 모래가 흩뿌려진 부엌을 생각하니 제 안에도 불이 활활...


   아저씨들이 10초 만에 방화복 입는 것도 보여주시고 (매직!!! 바지 안으로 다이빙 한 뒤 쭉 올리면 된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자기도 아침에 10초 만에 옷을 입어보겠다며 난리...) 교육이 끝난 뒤에는 소방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저는 어렸을 때 꽤 모범생이어서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많은 것이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 하라고 하면 몸이 선뜻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글로 배운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듯해요. 특히 안전 문제에 관해서는 어릴 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상황을 경험하며 몸이 적절히 반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미리 투표도 해보고 불도 꺼보는 독일 어린이들이 부디 잘 자라서 전쟁의 불도, 혐오의 불도 꺼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상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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