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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r 26. 2024

독일 사람들이 성(城)을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

가장 좋은 것을 아이들에게 주는 마음

 성(城) 아시죠? 요런 것 말입니다. 동화 속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

 커버 이미지로 사용한 성은 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인데요. 디즈니 로고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져 관광객이 무척 많습니다. 신데렐라 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나오는 성과 더 가까워요. 절벽 위에서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네모나게 각진 모습에다 절벽 위에 높이 올려진 것까지 비슷합니다. 신데렐라 성은 높이 솟은 시계탑이 포인트인 것 같아요. (© Disney, 가운데는 제가 찍은 사진)

 독일에 살다 보니 성을 정말 많이 봅니다. 웬만큼 이름 있는 동네에는 대체로 성이 하나씩 있는 듯해요. 노이슈반슈타인 성처럼 정말 큰 성도 있지만, 작고 아담한 성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이런 성을 사용하는 방식이 제 눈에는 참 독특했답니다.


 처음 듣고서 어리둥절했던 것이 바로 유스 호스텔이었어요. 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숙박할 수 있게 만든 유스 호스텔 중에는 중세 시대의 고성(古城)이 많다는 게 아니겠어요?


 뭐라고? 그런 건 중요 사적으로 지정해서 보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사실은 독일어 수업을 듣다가 알게 되었는데요. 여행과 숙박에 관련된 테마를 공부하던 중 유겐트헤어베어게(Jugendherberge), 즉 유스 호스텔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건물을 학생들이 수학여행할 때 숙소로 이용하게 함으로써 숙박 자체가 좋은 역사 경험이 될 수 있게 하고, 독일을 여행하는 외국 청년들에게도 인상을 남기는 것이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지 않냐고요. 네. 그렇고 말고요. 그런데 진짜 그래도 되나요?

 그래도 되나 봅니다. 실제 독일에는 성이 정말 많은데, 거주 공간으로도 많이 쓴다고 해요. 독일 전역에 성이 25,000개쯤 있다고 하니 정말 많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용 방법이 유연한 것 같네요. 이 글에서는 제가 목격한 성의 이용법 세 가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이 성을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
바로 도서관과 학교, 유스 호스텔입니다.


1. 도서관


 저는 뮌헨 근처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데요. 뮌헨에 위치한 국제 어린이청소년도서관(Internationale Jugendbiblothek)은 15세기에 지어진 블루텐부르크 성(Schloss Blutenburg)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그렇게 웅장한 성은 아니고, 도서관 건물로 딱 매력적인 크기의 아름다운 성이랍니다. 우리는 흔히 압도적 크기의 화려한 건물만 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곳에서 성은 꽤 다양한 모습으로 지어졌어요. '파티'라면 동화 속 무도회만 생각했던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 어처구니없는 선입견을 깼던 경험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과 친구가 파티에 오겠냐고 묻는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줄...) 동화책에 등장하는 성이나 파티는 늘 크고 화려한 것이었지만, 사실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에서 블루텐부르크 성의 모습을 보시죠.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 담겼을 것 같은 빨간 지붕의 아담한 성과 주변 경관을 보시면, 이곳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공간을 내주고 있는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사진출처: Internationale Jugendbiblothek 홈페이지

 이 도서관은 매해 전 세계 어린이 도서를 대상으로 화이트 레이븐스 리스트(The White Ravens List)를 선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 작가님들 책도 이 리스트에 제법 많이 올라 있는데, 대표적으로 2021년에 루리 작가님의 《긴긴밤》이 선정되었지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 이곳에 짧은 후기를 남기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지난 주말에 이 도서관에 한국어 그림책 코너가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왔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꽤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하는 데다 건물로 사방이 둘러싸인 아늑한 뜰이 있어서 기분 좋게 단절된 느낌이, 책과 아이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는 제가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며 대충대충 찍은 사진들인데, 그래도 예쁘죠?

드디어 마련된 한국어 그림책 코너
여기서부터는 모두 안뜰 사진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고 있더라고요.
안뜰에 비어가르텐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여름에 다시 와봐야겠습니다

 옛 건물의 문제점이라면 대체로 좁은 문과 창문, 계단 같은 것들이겠는데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그게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 듯 오히려 오밀조밀 아늑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휠체어를 타는 친구들일 것 같은데, 도서관 측에서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가 바로 눈에 띄지는 않았어요. 이 날은 건물 안에 사람도 너무 많고 스태프들도 오프닝 행사로 바빠 보여서 차근히 둘러보거나 물어보지는 못했는데, 과제로 남기고 다시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

안뜰로 통하는 후문이 보이는 풍경 © Myra GB

 사진으로도 짐작이 가시겠지만 이 도서관은 소풍을 가기에도 참 예쁜 곳이에요. 사진에 보이는 뒷문으로도 들어갈 수 있지만, 정문으로는 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건물과는 달리 내가 지금 성에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조금 더 들지 않나 싶습니다. 도서관을 감싸고 있는 녹지와 평화로운 풍경, 그리고 책을 보다 나와서 해를 쬐며 놀 수 있는 안전한 안뜰까지, 뮌헨 지역에 사신다면 가족 나들이로도 추천하고 싶은 도서관입니다.

© Myra GB

2. 학교
 

 두 번째는 학교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최근에 이사하기 전까지 저는 하임하우젠이라는 동네에 살았는데요. 이곳에 BIS(Bavarian International School)라는 인터내셔널 스쿨이 있습니다. BIS는 뮌헨 캠퍼스와 하임하우젠 캠퍼스가 있는데, 하임하우젠 캠퍼스는 아래에 보이는 하임하우젠 성(Schloss Haimhausen)을 학교 건물로 쓰고 있어요. 성을 학교로 쓰는 건 호그와트 마법학교뿐이 아니라는 사실 :)

© BIS Haimhausen
© Sebastian Stiphout PHOTOGRAPHY
© BIS Haimhausen

 이 학교 근처에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고, 작은 강이 흐르는 숲 속 산책로도 무척 예뻐서 자주 오가곤 했어요. 겨울이면 동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고요. 건물 뒤편 주차장도 널찍해서 아이들과 제가 자전거 연습을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근사한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으면 참 좋겠죠? 하임하우젠 성의 역사는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화재 후 1660년에 새로 지어졌고 1997년부터 학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겨울에 산책하다가 찍어둔 사진

 참고로 하임하우젠에는 동네의 가장 높고, 해가 잘 들고, 전망이 좋은 곳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묘지가 있었어요. 그 살짝 아래로 성당이 있었고요. 제일 중요한 장소들을 제일 좋은 곳에 두는구나, 생각했던 동네였습니다. 특히 유치원과 묘지가 담장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은은하게 상기시켜 주었지요.

 우리는 삶 안에서 죽음을 몰아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터부에 가까운 그런 필사적 이분법 때문에 우리가 죽음 앞에 유난히 당황하고 무력해지는 게 아닐까요? 애써 어느 한쪽을 가릴 이유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식하는 곳이 기피의 대상, 심지어는 혐오시설로 불린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워 계신 길을 아장아장 걸어 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의 마음과, 꼬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 계신 어른들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나요? 아이들의 동선 안에 무엇을 넣어두는지, 어떤 것을 가르쳐주고 이야기해 줄지를 고려하는 것도 어른들의 일이겠습니다.


 +
 보여드리고 싶은 학교가 하나 더 있어 함께 소개합니다. 저희 동네 근처에는 오래된 수도원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서 쓰는 학교도 있어요. 성(城)은 아니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활용하는 비슷한 사례로, 마크트 인더스도르프(Markt Indersdorf)에 있는 레알슐레의 모습도 구경해 보세요. 참고로 독일 학제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우푸트슐레로 나뉘는데, 레알슐레를 마치면 보통은 대학을 가지 않고 일찍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는 쪽으로 진로를 잡습니다. 근처를 지나다가 학교 건물이 인상적이어서 뒷이야기를 찾아보았어요. 공간이 무척 아름답지요?   

이상 사진 출처: Vinzenz von Paul Realschule 페이스북


3. 유스 호스텔

 마지막으로는 유스 호스텔로 사용하고 있는 성의 모습을 몇 개 보여 드릴게요. 우선 독일 바하라흐(Bacharach) 지역에 있는 유스 호스텔, Jugendherberge Burg Stahleck의 모습입니다. 12세기에 지어진 슈탈레크 성을 사용하고 있어요.

https://www.bacharach.de/a-burg-stahleck
안쪽 뜰에서는 전통적인 독일 주택의 모습, 즉 꽃이 가득한 반 목조 주택 느낌이 나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 Erhard Hess
유스 호스텔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1박에 단돈 19유로라고 하네요.

 아래는 뉘른베르크 유스 호스텔(Jugendherberge Nürnberg)인데요. 15세기의 고성을 사용하는데, 겉모습은 고색창연하지만 내부는 흥미로운 모습이네요. 이런 곳에서 하루 묵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며 보아주시죠.

이상 사진 출처 http://www.at-hd.de/projekt/mittelalter-erleben/

 도시가 가진 가장 좋은 것, 가장 자랑스러운 것, 귀한 가치가 담긴 것을 아이들에게 내어주는 마음에 관해 생각합니다. 선을 긋고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쫓아내는 어른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직접 숨 쉬고 공부하고 꿈꾸는 장소를 세심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어른들을요.


 어떻게 보셨나요. 독일 사람들이 성(城)을 사용하는 방식, 꽤 근사하지 않나요? 누군가의 마음에 영감이 되기를 바라며 독일에서 전합니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도 옛 건물들을 박물관이나 카페로 바꿔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지만, 정신은 선을 넘지 못하고 외관은 너무 선을 넘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
 모교에서 제 철학 동화책 <동굴 밖으로 나온 필로와 소피> 인터뷰를 부탁하셨고, 최근 학교 뉴스레터에 실어 주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철학을 알려주려는 시도를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교수님들이 굉장히 즐거워하셨어요. 몇몇 이야기는 철학자 이름과 그림만으로 대강의 내용을 짐작하시는 내공에 저도 감탄.  

 좀 부끄럽지만 여기에도 남겨둡니다. 학위를 받은 지 10년이 되는 (아니 뭐라고…? ಠ‸ಠ) 시점에 제가 그동안 찍어둔 점의 좌표를 소개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조금 기뻤습니다.

 이제 이 인터뷰가 어느 독지가의 심금을 울려 영어 판권이 팔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후후후. (봄을 맞아 꽃망울도 부풀고 간덩이도 부풀었다는 소식)


https://www.brandeis.edu/gsas/news/news-stories/jinmin-lee.html?fbclid=IwAR2ccP_UCDjvhweCqr9XlAaclW9FNEsM4GMRgKOmWNiCKr9MCicWH2ppf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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