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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Sep 10. 2024

신비한 아홉 가지 이야기

Day. 7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이은✐


오늘은 내가 호주에서 있었던 사건을 말해줄게. 그동안 있었던 사건. 음~ 참~ 많아. 그래가지고 그중에서 몇몇 사건들만 말해줄게. 오늘도 3가지 사건이 있었어. 엄마 아빠 잘 보고 있지?? 그럼 시작할게~!   


1. 레몬 사건: 길바닥에서 레몬을 주웠어!

2. 3마리 캥거루 사건: 3마리의 캥거루를 봤어!

3. 가오리 사건: 내가 가오리를 만들어서 골드코스트 퍼레이드에 나갔어!

4. 엄마 핸드폰 사건: 엄마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어! 하지만 되찾았어!

5. 엄마 카드 사건: 엄마가 카드를 잃어버렸는데 영원히 잃어버렸지!*

6. 소라, 고둥, 따개비, 말미잘 사건: 내가 소라, 고둥, 따개비, 말미잘을 기네스북에 나올 만큼 엄청~ 많이 잡았어!

7. 우울 사건: 갑자기 그냥 우울해서 그냥 울었어. 왜 그런 걸까?

8. 도마뱀 사건: 호텔 근처에서 도마뱀을 봤어!

9. 비행기 웡카 사건: 비행기에서 엄마가 웡카를 틀어줬어. 그래가지고 직원분들이 고쳤는데 다시 고장 나서 그냥 끄고 잤어.

The End


*엄밀히 말하자면 엄마의 카드를 아빠가 들고 갔다가 잃어버렸단다.


오늘도 잘~ 놀았다!






김 군✐


기대하던 BLEACH FESTIVAL에 가는 날. (호주 여행 일정에서 내가 유일하게 계획한 이벤트..!) 화창한 날씨와 함께 마냥 들뜬 나와는 달리 이은이는 유난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일정 때문에 가고 싶었던 벌레이 헤즈 해변에 못 갔고, 마트에서 사고 싶은 모구모구를 못 샀고, 급기야 서양 소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구름사다리를 타다가 보란듯이 철퍼덕 추락하여 그만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아침 내내 아이는 침울해져 있었다.


기운내라 어린이!


하지만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축제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고, 점점 크게 들려오는 둠칫 둠칫 음악 소리에 이은이도 설렘을 느꼈는지 점점 활기를 되찾았다.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장소는 협소했지만 축제답게 푸드트럭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스테이지는 공연 준비로 분주했으며 편안한 표정과 자세로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인파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지만 꽉 찼던 무대 (특히 기타 치는 여성분이 너무 멋졌다) 


대충 자리를 맡아놓고 축제 장소에 또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지 둘러보다가 종이로 가오리를 만드는 어린이 대상의 워크숍 부스를 발견했다. 이은이는 곧장 그리로 뛰어가더니 꽤나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종이 가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리고, 그리고, 칠하고, 붙이고, 어찌 저찌 가오리를 완성하자 주최 측에서 오후 5시부터 가오리 퍼레이드를 할 예정이니 완성된 가오리를 들고 모여달란다. 가오리 퍼레이드..? 갸우뚱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와 공연도 보고, 근처 해변에 내려가 신나게 놀았다. 가오리 퍼레이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해질녘의 골드코스트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날이 슬슬 쌀쌀해져 숙소로 돌아가야 하나 싶을 때쯤, 갑자기 이은이가 “5시다!!” 하더니 종이 가오리를 챙겨 아까 그 워크숍 부스로 달려갔다. 뒤따라가보니 아까 부스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이 전부 거기에 모여있었다. (아이들은 놀라우리만치 기억력이 좋다.) 주최 측은 작은 손으로 정성껏 만든 가지각색 가오리에 조그마한 꼬마전구를 하나씩 달아 아이들의 오른손에 끼워주었고, 해 지는 축제장 한 켠이 아기 가오리들로 밝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축제의 마지막 순서로 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 행렬의 일부로 아기 가오리들도 참여를 하는 모양이었다.


블리치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였던 퍼레이드!


마침내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가운데의 넓은 길은 행렬을 위해 비워졌고 사람들은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위해 길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섰다. 그 길 위로 빛나는 대형 갈매기가 등장했다. 퍼레이드의 시작이었다. 곧이어 대형 게, 대형 펠리컨이 나타나더니 드디어 아기 가오리들의 순서가 되었다. 작은 가오리들은 별들처럼 짝이며 축제장을 헤엄쳤다. 지도 선생님을 따라 높게 헤엄쳤다가, 낮게도 헤엄쳤다가, 8자를 그리며 춤을 추기도 하고, 아래위로 파도를 타기도 했다. 빛 사이사이로 축제의 일원이 되어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의 얼굴들이 보였다. 무리 사이에서 이은이의 집중한 얼굴도 언뜻언뜻 눈에 들어왔다. 우울했던 기분을 이겨내고 축제의 마지막을 완성한 이은이가 마음속 깊이 대견했다. 이 사랑스러운 장면을 잊지 않으려고 말벌 아저씨처럼 가오리떼를 따라다니며 연신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극성 엄마 같아 보이기도 했겠다.)


인간과 자연이 화해를 하고있는 장면.


돌이켜보건대 오늘 있었던 많은 일들을 굳이 '좋은 일'과 '나쁜 일'로 구분해보자면, '나쁜 일' 축에 가까운 일들이 더 많았다. 남편은 신용카드를 잃어버렸고(못 찾았다…) 나는 휴대폰을 잃어버렸고(이건 찾았다! 친절한 축제 관계자님 감사합니다.) 이은이는 호주 여행 중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셋 모두에게 최악의 하루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식탁에 각자의 일기장을 펼쳐 놓고 모여 앉아서, 좋았던 순간과 기억만을 줄 세워 곱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어떤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마다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좌충우돌 다사다난했지만 새삼 오늘 하루도 나름대로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홍박사✐


운전을 할 수 없어 포기한 일정이 많지만 순간순간 대안을 찾아내며 즐겁게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아침 일찍 벌리 헤즈로 향했다. 마음에 쏙 들었던 카페에 다시 들르고(앵콜!) 오후에는 근처 에드 하디 파크(Ed Hardy Park)로 이동해 블리치 페스티벌(Bleach Festival)에 참가해 볼 심산이다. 희한하게 이곳에 와서 생겨난 아침 허기가 발길을 재촉했다.


벌리 헤즈의 제임스 스트리트(James Street)는 골드코스트에서 가장 힙한 거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역시나 다양한 테마의 멋진 상점들이 입구부터 즐비하다. 그중 우연히 발견한 ‘퀘스트 커피 로스터즈(Quest Cofffe Roasters)’는 딱 외관부터 이 동네 카페 사이에서 대장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곳으로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 인기 있는 곳이었다. 


벌레이헤즈의 핫플, 제임스 스트리트!


로고부터 센스가 느껴진다.


로스터리답게 커피맛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샌드위치와 디저트류도 직접 만들어 파는 곳으로 지금껏 호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호주는 워낙 로컬 커피의 퀄리티가 높아 스타벅스가 자리잡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소문대로 녹색 로고는 찾기 어려웠고 반면에 동네마다 맛있는 카페는 여기저기 번쩍 손을 들고 있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어디를 가야 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빵바속촉... (〃´o`〃)


여행 중에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곳을 발견하면 몇 번이고 찾는 습성(?)을 가졌는데 퀘스트 커피가 딱 그런 곳이었다. 두 번째 방문에는 어느새 내가 오래된 단골이나 된 것 마냥 하나하나 친숙하게 느껴졌고 주문을 받는 이도 우리가 다시 찾은 것을 알아차리는 듯한 눈인사를 건넸다. 커피와 요기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행자로서의 경계심과 낯 섬은 내려놓고 최대한 편하고 게으른 자세로 토요일 오전 시간을 보냈다. 문득 프랜차이즈와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기준이 된 아파트 단지 앞의 풍경이 떠올랐다. 여전히 동네의 보물 같은 카페들이 있지만 예전보다 그 수가 적어졌고, 꽤 장수하던 곳이 그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도 목격해 왔다. 애정을 갖고 종종 들르던 곳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황망함이란…


크로아상 샌드위치와 라떼 한 잔의 여유


커피와 시간을 즐기기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가장 빠르게 카페인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미덕이 되어 가는 것일까. 무인 카페, 키오스크, 로봇이 만들어주는 커피는 이제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또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오래된 것을 잽싸게 대체할지 궁금하다. 물론 가성비와 효율성을 따지는 일이 커피 문화를 후퇴시켰다고 할 수 없고, 덕분에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이점도 있겠지만 그것이 점점 더 선택의 주류가 된다면 좀 서글퍼진다. 동네마다 작은 카페들이 자부심을 갖고 아침을 여는 이곳의 풍경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게 가능하다고? 세상이 정반합으로 간다면 이다음에는 새로운 형식으로 진짜 커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정감 넘치는 곳들이 더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란 낙관도 해본다. 그러니까 결론은 호주 골드코스트에 오시거든 퀘스트 커피 로스터즈는 꼭 들려보시오! 



⛳︎ 오늘의 일정

숙소 → 벌레이 헤즈 (Burleigh Heads) → 제임스 스트리트 (James Street)→ 퀘스트 커피 로스터즈 (Quest Coffee Roasters) → 블리치 페스티벌 (Bleach Festival) → 콜스 마트 (Coles) → 숙소


◇ 블리치 페스티벌 (Bleach Festival)

골드 코스트 곳곳에서 열리는 예술 페스티벌. 2012년에 시작되어 코로나 때 잠시 멈추었다가 올해로 13회를 맞았다고 한다. 음악, 미술, 영화, 춤, 공예, 전시 등 문화 예술을 총망라한 축제가 해변을 따라 열흘간에 걸쳐 열린다.

아래 공식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 소개, 타임테이블, 예약 등 자세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 일정에 맞춰, 또는 취향에 맞게,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들을 체크해보시길.

https://bleachfestival.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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