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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Sep 04. 2024

지금 이 순간에 풍덩!

Day. 6

2024년 8월 9일 금요일


홍박사✐


평소 러닝을 즐기는데 여행 중에는 그 재미가 더 쏠쏠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 주위를 뛰는데 워낙 아침잠이 없기도 하고 늦잠을 즐기는 김 군과 이은이 자는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함께 하는 여행이지만 이 시간은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며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된다. 여행 전 숙소를 고민할 때, 근방에 괜찮은 러닝 코스가 있으면 숙소 선택에 좋은 명분이 생긴다.


나뭇잎과 파란 하늘은 지구 같다 (홍이은 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5km에서 10km를 뛰는데 그 정도면 숙소로부터 꽤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뛰는 동안은 관광객으로서의 정형화된 시야에서 벗어나 한 도시의 소소한 아침 풍경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고 지도에서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동네와 의외의 장소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돌아와서는 눈에 담아둔 곳을 일정에 살짝 끼워 넣어 가족과 함께 둘러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아침에 뛰면서 봤는데 말이지’로 시작하며 잠깐이나마 도시의 얄팍한 가이드가 되어보기도 한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뛸 준비를 했다. 22층 숙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일출과 함께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뛰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며칠간 관찰한 호주는 저녁은 금방 끝나버리지만 대신 아침을 정말 일찍 시작한다. 카페든 마트든 개장 시간이 한국보다 훨씬 빠르다. 늦게까지 머물거나 일하는 우리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부지런한 걸까. 아리송하다.


보라, 금쪽 해변을!


골드코스트의 해변은 한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장대한 길이를 자랑하는데 (실제로 보면 그 규모가 정말 놀랍다) 비치를 따라 조깅 코스와 공원이 훌륭하게 조성되어 있다. 넓은 인도를 기본으로 하되 기분에 따라 물에 젖은 모래사장을 선택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통째로 가져와 집 앞에 놓고 싶을 정도로 쾌적하고 아름다웠다. 채비를 마치고 혹여나 깨울까 조심조심 문을 나섰다.


워밍업 후에 숙소가 있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노스 비치에서 북쪽인 메인비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동쪽 바다를 따라 이어진 해안이라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순간에 흥을 돋우는 음악은 필요 없다. 지금 이 공간의 모든 것들이 뒤에서 나를 힘껏 밀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힘이 들어도 힘이 들지 않는다.


음악이 필요 없는 바이브


뛰면서 이리저리 주위를 살펴보니 선수처럼 엄청난 속도로 뛰는 사람, 반려견과 함께 걷듯 뛰는 사람, 아이를 카트에 태워 함께 달리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로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좋은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멋진 곳과 맛있는 곳을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평소에 즐기던 일상의 것들을 새로운 공감각으로 시도해 보는 것도 나름의 여행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반환점에 이르러 왔던 길을 되돌아 숙소로 향한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을까, 다시 이 길을 뛸 수 있을까. 매년 7월 경에 이곳에서 마라톤 대회(Gold Coast Marathon)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 핑계로 골드코스트로 돌아오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까지 잘 있거라, 나의 멋진 조력자들!






김 군✐


어제까지는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쌀쌀했는데, 오늘 아침은 햇살이 따가워 잠에서 깼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창 밖의 바다는 저 멀리까지 또렷한 수평선을 그리고 있었다. 해변을 즐기기에 최고의 날씨였다. 간만의 산뜻한 바깥 풍경에 기분까지 덩달아 명랑해졌다.


가능한 최선을 다해 놀자


한결 가벼운 옷차림과 발걸음으로 트램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30분 거리의 또 다른 해변인 Burleigh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릿한 바다 바람이 불어왔다. 탁 트인 백사장과 짙푸른 산호해 바다. 속이 뻥 뚫리는 풍경을 눈앞에 두고 ‘여행이란… 인생이란…’하며 서서히 감상에 빠져 들 때쯤... 아차! 바다만 보면 무조건 반사 마냥 일단 뛰어들고 보는 우리 집 아홉 살을 깜빡했다. 그는 이미 발이 폭폭 빠지는 모래사장을 최고 속력으로 달음박질쳐 파도가 발목 위로 드나드는 곳까지 진출해 있었다. 이 장면은 내 오늘 하루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다. 여벌 옷이나 수건도 따로 챙겨 오지 않았는데. 물에 빠진 생쥐를 수습해야 하는 몇 시간 후의 내 모습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젖지 않게 조심하라고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일뿐이었다.


바지 다 젖은 상태..


그러나 극도로 신이 난 그를 웬만해선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상하의는 바닷물에 서서히 젖어가기 시작했고 축축해진 옷을 하나둘씩 모래밭에 벗어던지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팬티만 입은 채로 놀게 되었다. 아, 이 자유로운 영혼이여. 호주까지 와서 팬티 바람이라니. 그 모습이 하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엇이든 풍덩 빠져 제대로 즐기는 아이의 진심 어린 태도에 내심 알 수 없는 질투가 일었다. 저렇게 앞일 걱정 하나 없이, 순간에 완전히 몰두하여, ‘순수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멀찍이 앉아 아이를 지켜보면서 저 파란 바닷물에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나를 푸욱 담그는 상상을 해 보았다. 

둥둥 떠다니던 잔모래는 가라앉고 심연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새 바지를 입고 또 바다로.........


온종일 흠뻑 놀고 나니 집에 갈 시간이 되어 근처 가게에서 이은이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새로 사서 갈아입혔다. 그래, 바닷가에 왔는데 좀 젖을 수도 있지. 까짓 거 새로 사 입으면 되는 것을, 별 큰 문제도 아닌데 왜 그렇게 빽빽 대고 동동 댔는지. 심지어 새로 사 입힌 옷이 숙소에서부터 입고 온 옷보다 더 잘 어울려 보인다. 너 퍼스널 컬러가 호주 해변이었구나?


손이 가요 손이 가


내일이면 여행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째. 정확히 절반이 지났다. 여행의 후반부에서는, 여행이 끝난 이후로도, 자꾸 깜빡이를 켜고 끼어드는 불안을 멀리 하고 해맑은 아홉 살처럼 매 순간에 풍덩 빠져들어 보리라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은이도 용감하게 뛰어들어 흠뻑 젖었던 아홉 살의 푸른 여름을 오래오래 기억했으면.






이은✐


오늘은 호주 바다 생물에 대해 알아볼 거야.

(주의 사항 ※ 그림도 그릴 거고 읽는 중에는 딴 데 보면서 하지 마세요.)

그럼 이제부터 WATCH ME WORK!   


1. 호주 따개비 (색깔이 초록색이다.)

2. 호주 소라게 (발끝이 노란색이다.)

3. 호주 고동(안의 색이 초록색이고 껍질은 노란색이다.)

4. 호주 게 (오른쪽 집게발이 크고 핑크색이랑 초록색이다.)

*실제 이름을 찾아보려다가 포기.


Thank you for reading!


집게발의 디테일이 포인트


먹지 않았어요, 모두 풀어줬어요


⛳︎ 오늘의 일정

숙소 → 벌레이 헤즈 (Burleigh Heads) → 제임스 스트리트 (James Street) → 퀘스트 커피 로스터즈 (Quest Coffee Roasters) → 벌레이 헤즈 비치 → 욘 로즈 공원(John Laws Park) → 투 요크스 버레이 (Two Yolks Burleigh) → 숙소

◇ 벌레이 헤즈 (Burleigh Heads)
파랗고 깨끗한 바닷물, 서핑하기 딱 좋은 파도, 수평선 너머로 시티의 건물들이 보이는 근사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 해변, 열대우림 산책로, 공원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건너편으로는 음식점, 소품가게, 옷가게 등이 들어선 거리가 있어서 (이 곳은 아래 '제임스 스트리트'에 자세히 적어두었다.) 해변에서의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기에 더 할 나위 없다.

◇ 제임스 스트리트 (James Street)
벌레이 헤즈 해변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상점들이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는데, 이 거리의 이름이 바로 '제임스 스트리트'다. 카페, 음식점, 아이스크림 가게, 주스 가게 등 먹을 거리도 많고 옷가게와 소품가게, 식료품 가게 등 쇼핑할 거리도 많아 해변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 퀘스트 커피 로스터즈 (Quest Coffee Roasters)
제임스 스트리트 안에 위치한 카페. 가게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베이커리 종류는 모두 가게에서 직접 만들고 굽는다. 맛이 좋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 가족이 호주 2주 일정에서 유일하게 두 번 방문한 가게.

◇ 욘 로즈 공원 (John Laws Park)
벌레이 헤즈 해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 나무 그늘이 많아서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제임스 스트리트에서 먹을 것을 포장해와서 욘 로즈 공원에서 쉬는 것도 좋겠다. 발 씻는 곳, 화장실, 놀이터 등이 잘 갖춰져 있다. 

◇투 요크스 벌레이 (Two Yolks Burleigh)
제임스 스트리트 안에 위치한 버거 가게. 메뉴가 다양하고 (키즈 메뉴도 있다.) 인테리어가 팬시하고 깔끔하다. 해변에서 놀다가 허기를 달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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