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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스터디카페에 바친 시간과 돈 전격 공개

스터디카페가 개인작업실이 될 수 없는 이유

by 밀도

방송사-집-방송사-집을 오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어쩌다 개인 시간이 주어질 때면 고민 없이 평소 애용하던 집 근처 ‘스터디 카페’로 직행했다. 그즈음은 만족도가 복불복일 수 있는 카페들을 찾아가는 시간마저 아깝고 지쳐가던 시기였다.


내가 애용하는 스카(요즘애들은 스터디카페를 이렇게 줄여 부른다)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고등학생 이상만 출입할 수 있어서 비교적 조용하고 깨끗하며 관리자님의 카톡 피드백이 빠르다는 장점을 가진 곳이다.


회의 없는 날, 아이 학교를 보내고 집안 정리를 휘리릭 한 후 오전 11시 즈음 스카에 갈 때가 많다. 평소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 남들이 어떤 공부를 하나 어떤 책을 보나 관심을 두는 편인데 그 시간대엔 갓 20대 젊은이들이 은근히 많이 와있다. 대부분 아이패드를 세워놓고 인강을 듣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N수생 들이리라.

파이팅 젊은이들.


늘 같은 자리에 앉아계신 중년 이상의 남자분들도 몇몇 계신다. 어김없이 ‘00 기사’ 등의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자격증 공부 중이시다.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시리라.

파이팅입니다요, 어르신들.


솔직히 나 같은 40대 여성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어딘가에서 다들 바삐 무언가를 하고 있으리라.

파이팅 하자고요, 동지들.


처음에 스터디카페가 생겼을 때 활용도가 약간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24시간 독서실로 가면 되고, 좀 더 캐주얼하게 학습을 하려면 돈 안 내도 다닐 수 있는 지역도서관을 가면 되고, 오디오의 자유까지 원하면 커피 마시며 전화통화까지 할 수 있는 카페를 가면 되는데 ‘스터디카페’는 도대체 뭘까, 하고.


하지만 몇 번 애용해 보고 나서 알게 됐다. 그 모든 것들 사이의 미세한 어느 지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라는 것을.


스터디 카페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도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일관된 수준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 역시 수년 동안 꾸준히 나의 서브작업실로 이용해 왔던 것이고. (지금 40대 여성분들 영업하려고 어필 중인 거 혹시 티 나려나? 경험 안 해 보셨으면 한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추천드린다.)


암튼, 만약에 내가 사업이란 걸 하게 된다면 스터디카페를 운영해도 괜찮겠다, 잠시 생각해 본 적 있을 정도로 나에겐 극 호감인 장소이다.


내가 가는 스터디 카페엔 당일권, 시간권, 기간권 다양한 옵션이 있는데 나는 주로 <100시간에 13만 원짜리 정액권>을 구매해서 사용했다. 문득 내가 스카에서 얼마를 쓰고 총 몇 시간을 보냈나 궁금해서 그동안의 출입내역과 결제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음... 이만큼이나 썼다고?!


혼자만 알고 있기 왠지 억울해(?) 공개하겠다.


-총 700시간 이용 (2021년 11월 25일에 첫 100시간 이용 후 2년간 총 7회 재이용)

-총 97만 원 지출 (700시간 이용권 + 사물함 4회 이용권)

-총 209일 방문 (월평균 8~9일 방문)


스터디카페에 나보다 더 많이 돈 쓴 분들 아는 척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다 이 정도는 결제하는 거 맞지(맞나)요?


KakaoTalk_20251021_125652794.jpg 내가 즐겨 갔던 집 근처 스터디카페


사실 비용보다 내가 더 주목한 것은 한 달에 8~9일 정도 꾸준히 스터디카페를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스터디 카페를 ‘개인 작업실’로 대입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월 8~9일 방문을 위한 작업실이 꼭 필요할까? 그냥 이대로 저렴한 스터디카페를 작업실 삼아 종종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닐까?’


마음이 약해지다가도 반대의 접근법으로 해석하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지, 굉장히 보수적으로 이용했는데도 저만큼이나 갔잖아! 나만의 작업실이 생기면 얼마나 자주 가겠어! 사물함에 물건 넣었다 뺐다 할 일도 없잖아. 게다가 노트북 타자를 크게 쳐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얼마나 좋겠니!


노트북 타자를 크게 칠 수 있는 점에 대해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에 겪었던 부끄러움을 고백해 보겠다.




스터디카페는 노트북, 패드 등의 전자기기 사용도 가능하다. 단 조용하게. 대부분은 아이패드로 프로그램 관련 영상(나는 유튜브프리미엄을 비롯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디즈니플러스까지 거의 모든 OTT앱 사용자다)을 보는 편이지만 가끔씩 노트북을 가져가서 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하필 그날 노트북을 챙겨갔었는데 급 새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거다. 삘이 확 와서 노트북을 열고 PPT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기획안을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짐작하시는 분들 계실 거다. 네, 맞습니다) 스카 관리자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00번 좌석 고객님, 노트북 자판 소리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스터디카페 입구에 비치된 무소음 키패드 사용을 권해드립니다.]


으아!!! 그 문자를 본 순간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평소 무소음 키패드를 꼬박꼬박 사용해 왔는데 그날따라 빨리 쓰고 싶은 마음에 깜박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어폰까지 끼고 있었으니 내가 내는 소음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 내 주위에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누가 관리자님께 민원을 넣었는지는 몰라도 무튼 너무 죄송했다.


이 일을 계기로 잠시나마 잠잠했었던 개인작업실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화르르 불타올랐다. 스터디카페를 찬양하지만 내가 생각한 ‘그’ 작업실은 결코 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 ‘혼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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