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이 생기다
누군가에게 드러내 놓고 말한 적 없지만 사실 나는 ‘살식마’다.
파릇파릇한 자태로 나를 만났던 식물들이 어느샌가 시름시름 죽어갈 때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는 바쁜 상황과 마음의 여유 없음을 이유로 들어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이건 그동안 내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야. 좀 더 여유로운 시기가 왔을 때 다시 식물을 키워보자, 만약 그때도 똑같다면 그때 좌절해도 늦지 않아!’
그렇게 애써 식물을 멀리해 오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잠시 과거 회상 좀 하겠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육아와 살림에 집중하던 그 시절! 대파 한 단의 가격이 거의 만원에 육박하자 ‘파테크’ 열풍이 불었다. 집에서 대파를 직접 키워 먹는 것이 재테크처럼 이득이 된다 하여 생겨난 말로 파 밑동을 흙재배 혹은 수경재배해서 다시 여러 번 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식집사로 거듭날 수 있을지 말지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시험대로 보였다.
즉시 야심 차게 파테크에 도전했다. 난 흙재배를 선택했다. 수경 재배는 페트병 안에 파 밑동을 넣고 자주 물을 갈아줘야 한다는데 손으로 매번 파를 만지는 것보다는 흙 속에 콕콕 꽂아놓고 물만 주는 게 훨씬 더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파테크 의식'은 나의 [식물 기르기 능력]을 제대로 가늠해 보는 잣대가 될 것이므로 화분으로 선택하는 게 여러모로 옳아 보였다.
그동안 우리 집에 들어와 유명을 달리했던 여러 식물들이 남기고 간 빈 화분 중 하나를 꺼내고 로켓배송 온 흙을 정성스레 담았다. 혼합배양토라 쓰인 흙 하나 고르는데 후기를 얼마나 읽어봤던지! 훗, 이런 경험들이 식집사의 길로 가는 첫걸음이겠지?
작은 삽과 물조리개도 사고 싶어 드릉드릉하는 걸 꾹 눌러 참았다. 파테크 보란 듯이 성공하면 그때 하나씩 장만해야지. 가드닝 수업을 들으며 우아하게 식물과 교감하는 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곧 파의 절단면에서 푸릇한 속잎이 올라왔고 그 높이가 손톱만큼 차올랐을 때, 감격적 이게도 두어 번 새 순을 잘라 된장찌개에 넣어 먹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식물을 죽여왔던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새 식물들을 맞이할 용기가 차올랐던 순간이었다, 로 엔딩을 맞이했으면 너무 좋았겠지만 이후의 현실은 처참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사랑해 마지않던 파 화분 주위로 날파리가 모여들었다. 그것도 많이......
대체 뭐 때문에 내 화분에서 날파리 파티가 개최되었단 말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파 밑동이 뭉근하게 썩어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탄탄한 바디를 자랑했었는데 하룻밤 새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전에 돌봤던 그 어떤 식물들보다 규칙적으로 물도 주고 들여다봤다고 생각했는데...
‘난이도 최하’로 보였던 파 기르기마저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보란 듯이 식집사로 환골탈태하려던 나의 계획은 다시 한번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그렇게 반려식물 없이 살아온 게 어느덧 삼 년이었다.
작업실을 갖게 되자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식물에 대한 짝사랑이 다시금 스멀스멀 차올랐다. 단순히 인테리어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고요함이 좋아 ‘스페이스 고요’라는 이름을 붙여주긴 했지만, 홀로 있는 삭막한 공간에서도 ‘생명체와 함께 숨을 쉴 수 있다’라는 지점이 나의 감성을 자극했다. 나 말고 다른 조용한 한 녀석이 나를 응원하며 호흡하고 있는 것 아닌가. 몽글몽글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작업실을 돌봄이 필요한 곳으로 만들면 아무리 바빠도 몇 주일씩 방치하는 일 따위는 없으리라는 점도 좋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유일한 한 가지는 하필이면 그 식물을 기를 주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 생명 붙은 것은 아들 하나 더 키우는 게 한계치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내가’ 돌봐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애물이라면 장애물이었다.
내적 갈등만 한 달. 전문가에게 상담을 한번 받아보기로 했다. 작업실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건물 1층에 위치한 꽃집 유리창에 ‘상담환영’ 이란 문구가 (구) 살식마이자 (현) 식물짝사랑러인 나의 발걸음을 인도했다.
20대임이 분명한 긴 생머리의 여자분이 나를 맞아주셨다. 꽃집 사장님은 아니라고 했다. 사장님이 해외여행을 가게 되셔서 일주일 동안 꽃집을 관리해 주기로 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도 내 소개를 했다. 평소에 식물을 잘 못 키우는 편인데 작업실이 생겨 새로운 마음으로 식물을 키워보고 싶어서 와본 참이라고 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왔다고 밝혔기 때문에, 알바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를 까다롭고 번거로운 손님으로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소를 함빡 머금으며 너무 잘 생각하셨다고, 이곳에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있으니 찬찬히 여유를 가지고 마음껏 둘러보시라고 말해주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시선으로 나를 쫒지 않아 줘서 걱정을 안고 들어왔던 내 마음이 굉장히 가벼워졌다.
꽃집 사장님이 인복이 많으신 게 틀림없다. 이런 알바생을 구하신걸 보니. 혹시 지인인가? 잠시나마 꽃집 사장님과 알바생의 관계가 궁금했다. 모르는 사이의 알바생을 구한 거라면 사장님의 안목과 면접인터뷰 스킬이 매우 훌륭할 터였다.
아무튼, 꽃집 알바생의 배려 덕분에 충분히 시간을 갖고 둘러보고 궁금한 나무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그분이 알려준 <식물 잘 기르는 법 2 계명>이 있었다.
첫째, 매일 조금이라도 통풍을 시켜줄 것.
둘째, 나무젓가락을 흙 속에 찔러보았다가 뺐을 때 묻어 나오는 흙들이 물기 없이 말라 있다면 물을 듬뿍 줄 것.
‘통풍’과 ‘물’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식물은 잘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오? 생각보다 쉽잖아! 유연성 없이 마냥 규칙적으로 물을 공급해 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작업실은 한쪽 면이 통창이라 햇빛도 잘 들어오고 환기도 수월하기에 통풍도 문제없어 보였으므로 갑자기 꽃집을 들어오기 전보다 자신감이 이만 배쯤 치솟았다. 당시의 마음 같아서는 1m 이상 존재감 뿜뿜 하는 나무를 데려가고 싶었는데 이내 정신을 차렸다. 작은아이부터 시작해서 점차 가족들을 늘려가도록 하자!
내가 다 예쁘다며 고민을 거듭하자 친절한 알바생이 이런 제안을 했다.
“손님 느낌대로 딱 세 개만 골라보세요! 그 세 개를 한 곳에 모아놓고 보면 결정하기 더 쉬우실 거예요!”
아르바이트생님의 조언에 따라 세 녀석을 골라봤다.
길쭉하고 거친 잎이 도도한 <아라리아>
넓적하고 동글한 잎들이 너무 귀여운 <펠레아페페>
아카시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잎들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게 가녀리면서도 우아한 <타마린드>까지!
세 녀석을 한자리에 모아보니 비교가 쉬웠다.
타마린드의 자태에 유독 눈이 더 갔다.
살랑거리는 잎들이 나른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이는 게 나의 작업실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 역시 보통 알바생님이 아니었어! 사장님의 부재가 전혀 아쉽지 않던 순간이었다.
타마린드에 어울리는 화분을 골라 분갈이까지 마친 후 작업실로 데려온 날, 나의 새 식물 ‘타마린드’의 사진을 백 장쯤 찍은 것 같다. 잎들 사이로 새 순이 콕콕 박혀있었다. 잘 키운다면 키도 훨씬 커지고 잎도 많아진다고 했다. 그 순간이 온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작업실에 갈 때마다 화분 속에 젓가락 슬쩍 찔러보기가 루틴이 되었다. 축축한 흙이 잔뜩 묻어 나오면 물 주기 과감히 패스. 이 중요한 걸 나이 마흔이 넘어 안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통풍시켜 줄 때마다 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우아하게 리듬을 타곤 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나도 덩달아 릴랙스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새꾸 자랑 조금 더 해도 될까? 이 녀석의 매력은 끝이 없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펼쳤던 잎들을 접는다. 해가 지고 나서 작업실에 들른 날이 있었는데 불을 켜보니 타마린드 잎들이 전부 수줍게 접혀있는 게 아닌가. 마치 두 손을 모은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없는 밤엔 이렇게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었던 거니? 감성이 폭발하였다.
하지만 이런 호시절은 잠시였다. 두 달 뒤 우리에게 끔찍한 비극이 찾아왔다.
4박 5일간의 베트남 가족여행을 다녀와 보니 나의 타마린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회갈색으로 변한 채 바짝 말라 있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목격했을 때 눈물이 찔끔 났다. 너무 미안해서. 잘 지냈던 두 달이 너무 순조로워서 잠시 잊었던 게다. 그에게 반드시 해줘야 할 두 가지를.
매일 물 주지 않아도 씩씩했고 이삼일 만에 작업실에 갔을 때도 언제나 우아하고 나른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던 그녀였기에 이번에도 버텨줄 줄 알았다. 그동안 매번 한계치로 버텨왔을 수도 있는데 그걸 눈치 못 채고 안일하게 해외여행을 떠났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나란 인간 외에 다른 변수가 전혀 없는 공간이었기에 오롯이 내가 잘했어야 했다. 내 탓이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일주일 동안 물도 주고 통풍도 시켜주고 지켜봤으나 기적은 없었다. 결국 나의 작업실 첫 반려식물 타마린드와 작별했다.
속죄와 애도의 마음으로 한동안 또 다른 식물을 들이지 않고 지냈다. 화사했던 식물이 없으니 흰색 페인트벽이 유독 차가워 보였다. 급한 대로 식물 포스터를 주문해 붙여주었다. 그래도 화분 속 식물은 동사형, 포스터 속 식물은 명사형. 비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쉬움의 날들을 한참 보낸 후의 어느 겨울날.
작업실에 놀러 온 후배가 ‘포인세티아 화분’을 들고 왔다. 아랫부분 다섯 장의 잎 빼고는 전부 짙은 빨강으로 물들어 크리스마스 무드에 제격인 식물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첫 식물 타마린드를 구입했던 그 꽃집의 식물이었다. 후배가 만난 분이 사장님이셨을지 아르바이트생이었을지 모르지만 역시나 ‘통풍’을 엄청나게 강조하셨던 모양이다. 후배가 나에게 나무젓가락과 통풍 이야기를 해줬다. 그 두 가지만 잘 지키면 된다고 하면서.
꽃집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마냥 쉽게만 느껴졌었는데,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나이기에 이번엔 마냥 쉽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두 번째 식물을 맞이하긴 했지만, 당장 일주일 후로 예정된 2박 3일 강원도 여행이 있어서 걱정되었다.
떠나기 하루 전날 작업실에 갔다. 가장 큰 미션은 작업실에 있는 포인세티아 식물을 안전한 어딘가에 맡기는 것. 하지만 그날따라 꽃집도 문을 닫았고 작업실 옆 라인 쪽도 불이 꺼져있었다. 딱히 맡길 데가 없었다. 아, 정말 나는 정말 식집사가 될 수 없는 인간이로구나!
결국, 집으로 데려왔다. 작업실에서 또 죽게 놔두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못 보던 화분을 본 9살 아들이 궁금해하길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또 죽게 될까 봐 걱정돼서 데려왔다고.
아이가 식물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따로 이름이 없었네.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더니 생김이 ‘클라라’ 랑 어울린다고 한다. 수긍이 되는 이름이었다.
여행 떠나는 날 아침에 베란다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이 드는 곳에 클라라를 두고 물을 듬뿍 줬다. 행여나 얼까 봐 수건으로 화분을 둘둘 감쌌다. 그리고 기도했다.
‘클라라야, 부디 3일 잘 버텨주라’
여행 중간에 아이에게 물었다.
“클라라 잘 있을까?”
아이가 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봤을 때 클라라는 약한 애가 아니야.”
꽃집 아르바이트생이라 해도 믿을만한 자신감이었다. 순간 실소가 나왔지만 또 은근 위안이 되었다.
2박 3일의 강원도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베란다로 향했다. 과연 클라라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드라마의 중간광고처럼 길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오 마이갓! 클라라가 쌩쌩한 모습으로 우릴 반겨주었다. 역시! 넌 강한 아이 었구나, 고맙다 고마워!
다음날 다시 클라라를 작업실로 데려갔다. 통풍과 젓가락 두 가지를 신경 쓰면서 아직 잘 기르고 있다. 한 식물을 얼마나 오랫동안 잘 기르면 진정한 식집사가 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작은 식물을 시작으로 점점 그 수를 늘려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아직 1m 이상의 대형식물을 더 들이진 못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때가 온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 방송작가의 불규칙한 일상을 핑계로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보살핌’의 영역이 어쩜 사실 나와 꽤 잘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 생겼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