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방문으로 추억 소환하다
인연 깊은 작가 C선배가 있다.
선배의 추천 덕에 메인작가를 처음 시작할 수 있었고, 사는 동네도 가까워서 종종 언니 아들의 작아진 옷들이나 다 본 책들을 물려주시기도 하고, 날짜는 한참 지났지만 생일 선물이라며 향수나 영양제가 든 쇼핑백을 뒤늦게 건네주시는 선배. 10년 전 내 결혼식 때 축의금도 제일 많이 해주셔서 남편도 기억하는 선배. 결혼생활도 엄마역할도 방송일도 여전히 잘하고 계셔서 내게는 늘 귀감이 되는 분이다.
어느 날 선배에게 작업실 구한 얘기를 했다. 카톡으로 전했는데 많이 놀라며 당장 만나자 하셨다. 며칠 후 TWG 티 한 상자와 유기농레몬즙 한 상자를 들고 작업실에 찾아오셨다.
“여기 뭐야? 회사 차렸어? 드라마 써?”
무슨 목적의 작업실인지부터 물으셨다.
“사업자 전혀 아니고, 여기서 돈 버는 거 전혀 없고,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구한 작업실이에요.”
버킷리스트여서 더 늦기 전에 질렀다는 것, 혼자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는 것, 우연히 이 동네를 알게 돼서 이쪽 오피스를 구하게 됐다는 것 등... 작업실이 생긴 과정을 타임랩스 수준으로 요약 설명해 드렸다.
선배는 큰 의문 없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셨다.
“근데 작업실이 꼭 필요한 건가? 넷플릭스는 집에서 보면 안 돼?”라고 물었던 미혼의 동료들과 달리 ‘잘했네’로 맞장구 쳐주시고 ‘부럽네’로 리액션해 주셔서 감사했다.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선배가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 유레카톤으로 말했다.
“관리비까지 30만 원 대면, 아예 침대 놓고 이런 데서 살아도 되겠어! 고시원보다 낫잖아!”
선배의 말이라면 언제나 기본 경청모드로 듣던 후배였지만 그 순간엔 빵 터지고 말았다. 선배는 오피스와 오피스텔, 고시원의 차이점을 전혀 모르시는 느낌이었다.
“언니, 이런 오피스는 주거용이 아니에요. 문틈으로 안이 보이기도 하고, 화장실도 공용이고 제대로 씻을 샤워시설도 없어요. 잠옷 입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아니라 집으로 구 할 곳은 아니죠.”
“아~ 그런 거야?”
선배가 나보다 잘 모르는 게 있다니! 신이 난 후배(=나)는 화제를 이어갔다.
“언니 고시원 가본 적 있으세요?”
“티브이로만 봤지”
“저는 살아봤거든요? 전혀 달라요.”
“읭? 네가 고시원에서 산 적이 있었단 말이야?”
금시초문이었던 선배는 매우 놀라 물었다.
그랬다. 잠시나마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살이’까지 한 건 아니고 ‘잠시 쉬기’ 정도 되겠다.
2015년.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있던 나는 당시 몸담고 있던 mbc 라디*스타 프로그램의 작가 일을 그만두었다. 프리랜서 특성상 육아휴직 같은 건 없었기에 백수 신세가 된 것이다. 만삭의 배부른(?) 백수라니!
솔직히 임신을 한 걸 알았을 때 나의 플랜은 ‘끝까지 버티자’였다. 팀이 허락한다면 출산 후 초고속 복귀를 하여 기존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싶었다. 인물 토크쇼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장르였고 당시의 네 MC도 참 좋았다. 메인 피디와 작가들의 팀워크도 너무 좋았던지라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못할 것도 없었다. 메인 피디님도 출산 공백기는 얼마든지 배려해 줄 테니 끝까지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배는 정말 상상 초월로 커졌다. 7개월에 이미 막달 수준의 크기였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도 잘 못 잤고 일어서는 것 앉는 것 다 힘들었다. 눈뜨고 숨만 쉬는 것도 힘든데 일을 잘 해내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한 회분 녹화시간이 보통 4시간 내외였는데 녹화장에 앉아있는 게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두 달 후 산부인과에서 4.62kg의 초우량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몸집 큰 우리 아들은 성량도 타고났는지 정말 크게 오래 잘 울었다. 먹이고 재우기 쉽지 않은 아이였다. 한정식집에서 백일잔치를 끝내자마자 구직모드에 돌입했다.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일이 들어오면 당장 회의하러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시스템의 핵심은 양가 할머니들을 모두 동원하는 것. 강남구에 사시던 시어머니는 월, 수, 금요일마다, 수원에 사시던 친정엄마는 화, 목요일마다 마포구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를 돌봐주셨다. 두 분 다 대중교통으로 오셨기 때문에 왕복 이동거리와 시간이 상당했는데 특히 수원에서 광역버스 타고 사당까지 오셔서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셔야 했던 친정엄마는 더욱 고생이셨을 것이다. 당시 다양한 아기돌보미 기관의 시급을 검색해 보고 그 비용을 기준 삼아 두 분께 월급을 책정해 드렸다.
그렇게 다시 일할 준비를 마쳤을 때 만났던 프로그램이 MBC에브리원의 <비디*스타>였다. ‘여자 MC버전의 토크쇼’를 기획 중이던 에브리원 피디님과 연이 닿았고 그렇게 나는 출산 공백기를 깨고 다시 방송작가 일을 이어가게 되었다.
우리 아들 출생일이 2016년 1월 8일. 그리고 <비디*스타> 첫 방송일이 2016년 7월 12일. 나는 아이 둘 키우는 심정으로 일했다.
집에 가면 신생아를 잘 키우기 위해 매일 밤잠을 잘 못 잤고, 회사에 가면 새 프로그램을 잘 키우기 위해 엄마임을 잊었다. 덕분에 우량아 아들은 쑥쑥 잘 자랐고 프로그램 역시 화제성도 시청률도 모두 좋았다. 겉으로 봤을 때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그런데 속사정은 좀 달랐다.
내가 간절히 원해서 출산 백일만에 빠른 복귀를 하게 됐지만 사실 몸이 말이 아니었다. 대본을 쓰고 고칠 때마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잠은 또 어떻고. 통잠을 자지 않는 아기 때문에 밤에 수시로 깨서 늘 피곤했다.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정신력으로 워킹맘 생활을 연명해 갔다.
에브리원 회의실은 일산 장항동 드림센터에 있다. 마포구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왕복 40km를 운전해야 했는데 러시아워에 갇히는 날이면 속수무책으로 자유로에 갇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속이 타들어 갔다. 남편과 나 둘 중 오늘은 누가 먼저 퇴근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매일 중요한 이슈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길 건너편 건물 3층에 붙어있는 ‘여성전용고시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전용고시원? 방송사 앞에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는데... 마치 어제 새로 달린 간판 마냥 갑작스레 내 눈에 꽂혀 들어왔다. 뉴스에서나 간간이 봤던 고시원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시스템이며 가격은 얼마인지 갑자기 매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직접 가서 문의해 보면 단박에 해결될 호기심이었다.
가보면 되지 뭐! 프로그램 장소섭외를 위한 자료조사 차원이라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잠시 그 고시원에 가보았다.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니 여자 실장님이 맞아주셨다. 한 바퀴 둘러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중앙 복도를 기준으로 양쪽에 다닥다닥 개별 룸 문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조명에 고요했다. 한켠엔 공용 부엌이 있다. 싱크대와 6인 식탁, 냉장고 등이 자리하고 있었고 세탁기과 건조기가 있었다. 코너를 돌면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공실인 방이 있다고 해서 방 안쪽도 살펴보았다. 뉴스에서 본 것처럼 정말 작았다. 우리 집 아파트 제일 작은 방 사이즈보다 더 작은 듯했다. 그 안에 슬림한 침대, 간이 책상과 수납장, 모니터 한 대가 놓여있었다. 대략 내부를 둘러본 후에 물었다.
“CCTV는 잘 돼 있나요?”
당연히 여성 전용답게 입구부터 CCTV설치 및 도어록잠금시스템 등으로 보안은 철통 같으니 안전은 믿어도 된다고 하셨다.
“여기는 얼마예요?”
보증금 1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이라고 했다. 관리비 등 추가비용은 없었고 단 한 달만도 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 둘러본 후 제일 궁금한 마지막 질문을 드려보았다.
“여기에서 사시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 들이신가요?”
바로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정도 돼 보였다. 매우 무거워 보이는 백팩을 메어서 어깨가 많이 기울었고, 눈꺼풀은 반쯤 감겨있었다. 어쩌면 밤새 편집하다가 이제 겨우 눈 좀 붙이려고 들어온 막내 피디나 FD, 혹은 작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주로 어떤 분들이 숙박하고 있는지 대답을 듣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친 사람.
상황과 형편은 다 다르겠지만 지친 몸 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해 자료조사하는 느낌으로 방문해 본 여성전용고시원이었는데 나는 그날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금 10만 원을 송금하고 나왔다.
‘부디 지친 나에게 잠시 쉴 곳이 되어다오.’
당시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남편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결혼 후 상의 없이 결정한 거의 유일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하루 두세 시간 정도 편히 있고 싶은 마음으로 구한 건데 걱정만 많이 끼칠 것 같아서 과감히 비밀에 부쳤다.
오후 2시 회의가 잡히면 11시에 회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길 건너 고시원에 갔다. 그곳에서 두어 시간 정도 잠을 보충하거나 대본 수정을 하다가 출근을 했다. 회의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고시원에 들렀다. 필요한 전화업무를 하고 보고 싶던 방송을 다시 보기로 시청했다. 무너졌던 생활들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고시원을 잡기 전에는 이 모든 것들이 ‘차 안’에서 이뤄졌었다. 남편이 정시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아파트 주차장 차 안에서 필요한 전화업무를 다 하고 들어갔다. 집에서는 아기가 많이 울어서 전화통화를 잘하지 않았다. (다른 방에서 통화하면 안 되는 거냐고요? 우는 애를 혼자 두고 딴 방에서 자기 업무 꿋꿋이 보는 엄마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딴 방에서 누군가가 돌보고 있어도 아기 울음소리는 다 타고 들어오기 마련인지라 현관문 밖에서 통화하지 않는 한 큰 효과가 없다는 슬픈 이야기.)
<비디*스타>는 매 회 네다섯 명의 출연자를 섭외해야 했는데 재밌는 조합의 라인업 회의를 하면 최대한 빨리 섭외에 돌입해야 한다. 바쁜 연예인 네 명의 스케줄을 한 날 한 시에 세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매니저로부터 출연 불가 소식을 들으면 부랴부랴 플랜 B, C, D를 찾아야 했다. 만약 거절당했지만 좀 더 설득해 보고 싶은 인물이 있으면 여러 루트로 다시 제안해 보고 출연료 조율이나 넥스트를 기약하는 작업을 해 두는 게 메인 작가의 일이기도 했다.
그런 중요한 목적이 있는 전화통화에서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산만하고 조급해 보이는 협상은 망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백 프로 다 지키지는 못했을 거다. 그래도 내가 유독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이다.
차 안에서 음악 틀어놓고 엉엉 울다가 들어가는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덜 힘들게 해달라고 기도하다 보면 꼭 눈물이 나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산후우울증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일기장에 그때의 일기가 남아있는지 찾아봤는데 역시나 있었다. 다음은 그때의 기록.
며칠 전 고민 끝에 회사 앞에 있는 여성전용고시원 등록을 하였다. 혼자 있는 시간, 나만의 쉬는 시간이 절실한 날들이었다. 난 요즘 폭발 직전, 한계치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회사 바로 앞 38만 원짜리 여성전용 고시원을 덜컥 계산하고 지금 들어와 있다. 보증금 10만 원에 관리비도 없는 선불이니 20여 일 정도 온다고 쳤을 때 하루 2만 원 꼴. 침대가 있어서 눕기도 하고, TV가 있어서 다시 보기 된다는 점이 너무너무 좋다. 지난 금요일엔 ‘쌈마이웨이’ 드라마 1회를 시작, 틈틈이 8회까지 정주행 했다. 아, 이렇게 맘 편히 티브이를 본 게 얼마만인지! 무너졌던 내 생활을 다시 만들어가고 싶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내실을 다져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일기장 속 바람대로 내 생활이 조금씩 회복되고 자신감도 회복되어 갔다. 모두에게 비밀로 했던 나의 ‘고시원 일탈기’는 한 달을 꽉 채운 후 종료되었다. 매일 갔던 건 아니었지만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빠르게 몸과 마음이 충전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선배에게 그때 그 시절 나의 ‘고시원 살이’ 아니 ‘고시원 쉬기’에 대해 커밍아웃했다. 선배는 충분히 내 맘 이해해 줄 거야,라는 믿음으로.
선배는 그때의 나의 결정을 완벽히 이해해 줬다. 역시 공감여왕 선배!
그러면서 덧붙여서 하신 말이 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난 네가 갑자기 작업실을 구한 게 좀 느닷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미 8년 전에 빌드업이 있었던 거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 한번 경험해 본 사람의 실행력은 다르지!”
선배랑 저녁 먹으려고 찜해둔 곳은 작업실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함께 산책하며 가면 너무 좋겠다 싶어서 걷자고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던 선배. 5분 정도밖에 안 걸었는데 아직 멀었냐고 묻는 게 아닌가? 온 만큼 더 걸어야 한다고 했더니 선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그 정도 거리면 당연히 차를 타고 가야지! 우리 왜 걷는 거야? 나 걷는 거 진짜 싫어한단 말이야!!”
푸하하. 공감요정 선배가 처음으로 내 결정에 공감 안 해주던 순간이었다.
그날, 언니가 밥까지 계산을 다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아니 예쁜 선배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