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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를 잘랐다!

미래의 나에게 빚지고 살지 않기

by 오드리

'육십 대 이후 쉽게 돈 버는 방법 3가지'라고 소개한 릴스를 봤어요.


첫 번째, 병원비를 줄이고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다.

두 번째, 신용카드는 버리고 체크카드와 현금을 사용한다.

세 번째, 돈이 적게 들어가는 취미를 찾고 행복한 것을 한다.

(출처:instagram, @silverrichTV)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병원비도 지금까지는 특별하게 들어가지 않고, 등산, 산책, 독서토론, 브런치 글쓰기, 명상은 모두 돈이 들지 않는 취미이니, 나는 신용카드만 버리면 돈을 벌 수 있더군요. 이렇게 돈 벌기가 쉬울 줄 몰랐네요. 그래서 돈 공부를 시작한 기념으로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호기도 보태서) 신용카드를 없애기로 결심했어요. 음. 결심을 좀 오랫동안 하고 있긴 해요. 사용은 하지 않지만 없애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막상 없애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함을 고백합니다. 혹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여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어쩌지? 체크카드는 통장에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혹시 잔액보다 많은 돈을 당장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체크카드는 할부도 되지 않는데.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선 듯 신용카드를 잘라버리지 못하겠더군요. 딱딱한 직사각형 플라스틱이 살처럼 붙어 있는줄 몰랐네요.


지난여름, 딸아이가 피부과에 큰돈을 써야 할 상황이 있었어요. 한 번에 결재하기에는 부담스러워 신용카드로 5개월 무이자 할부를 했지요. 그때만 해도 딸에게 소중한 정보를 알려주듯이 말했어요. "반드시 무이자로 해야 해. 이자를 내면서 할부를 해서는 안돼." 딸은 알겠다며 비장한 눈빛으로 받아들였답니다. (제가 돈맹 I이고, 딸이 돈맹 II입니다)


얼마뒤 딸의 노트북 배터리를 교체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엄카를 들고나갔던 딸이 돌아와서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3개월 무이자가 되더라. 다행이지." 이렇게 학습이 수월할 줄 몰랐네요. 순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쳤답니다. 이게 제대로 가르친 것 맞나 싶더라고요. 무이자 할부의 유혹에 빠지면 소비가 너무 쉬워질 수 있겠더라고요. 좀 비싸다 싶으면 할부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딸이 아주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돈이 많이 들어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거예요. 그러자 딸이 말했어요. "돈 많아. 저기 가서 빼오면 되잖아." ATM에 카드만 넣으면 돈이 나오는 걸 두고 한 말이었어요. 그때,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는 야릇한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돈맹의 싹이 트고 있었던 거지요.


제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돈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한 것은 딸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돈맹이 돈맹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절박하네요.


'돈의 속성'에서 김승호 회장도 신용카드를 없애라는 조언을 합니다. 그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순간 카드회사에 빚을 지는 것이더군요. 일단 빌려서 쓰고 한 달 뒤에 갚는 것이고, 할부로 하면 몇 달 동안 나눠서 갚는 것이지요. 또한 미래의 돈을 당겨서 쓰는 것이고요. 미래를 위해 현재 돈을 모아야 할 형편인데 미래의 돈을 미리 써버리면 안 된다는 논리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3개월 동안 신용카드 사용을 중단해 봤습니다. 작년 여름과 가을에 '지른' 할부들이 정리되면 신용카드도 잘라버리고 체크카드만 사용할 생각입니다. 체크카드를 사용해 보니 하루하루 사용한 지출금액이 보여서 실감이 납니다. 신용카드를 쓸 때는 바로 돈이 나가지 않으니 일단, '질러보기'가 쉬웠지요. 영수증을 모아두거나 카드 명세서를 꼼꼼히 들여다보지도 않았지요.(뭘 믿고 그랬을까요) 거기다 가계부도 쓰지 않았으니 지출 결정이 즉흥적이 되기 쉬웠겠지요. 아끼고 계획적으로 소비한다고 자신했지만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충동소비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가계부를 쓴다고 소비가 확 줄어들지는 않아요. 쇼핑을 좋아하거나 낭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돈을 모으는 것은 다른 이야기랍니다) 확실히 달라진 점은 돈을 쓸 때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소비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원하는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 물어보게 되어요. '이거 꼭 사야 할까?' 스스로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한 달 생활비를 체크카드 통장에 넣어두고 잔액을 매번 확인할 수 있으니 당연하겠지요. 지난달보다 이번 달에 잔액이 더 남으면 왠지 뿌듯해지더군요.


이번 달 카드 명세서에는 대중교통비만 청구되었네요. 할부가 다 끝났고 더 이상 신용카드로 결제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제 신용카드를 잘라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목돈이 들어갈 일이 있으면 미리 돈을 모아서 사야겠네요. (구매 순간을 기다리며 모으다 보면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르지요) 40여 년을 사용하던 신용카드를 없애려니 아쉽기는 하네요. 비행기 마일리지도 모아주고, 여행가서도 주머니에 신용카드만 있으면 보디가드인양 든든했었는데. 철없이 뛰어 놀다가 갑자기 모든 걸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서늘하고 외롭고 비장한. 하하!


오늘 가위로 녀석을 싹둑 잘랐습니다. 요술봉은 사라졌지만 이제 돈 벌일만 남았네요. (일단 초긍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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