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고민이 필요한 이유
책임감의 무게
승진 이후 가까운 시일 내에 뭔가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지속되었다.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5년 전 과장으로 승진할 때 선임의 조언이 생각났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책임감의 무게도 늘어나'
- 나무보다 숲을 보는 능력을 키울 것
- 프로젝트의 방향과 속도, 리스크 관리
대리까지는 프로젝트의 한 파트만 담당했다면 과장부터는 '전체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넓은 시야, 목표한 방향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리더십 역량'이 중요하다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잘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프로젝트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감량이 되는지 물었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목표가 없어도 번아웃이 온다
엔지니어 7년 차, 커리어를 전환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몇 달 동안 번아웃을 겪으며 너무 힘들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지쳐서 더 이상 몸에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첫 번아웃을 극복하는 과정은 꽤 길고 힘겨웠다. 이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한 3가지 규칙을 세웠다.
번아웃 예방을 위한 3가지 규칙
- 전체 에너지의 80% 이하를 사용할 것
- 평소 스트레스 관리로 컨디션을 유지할 것
- 일정 업데이트 & 정해진 속도로 업무를 처리할 것
엔지니어에서 마케터로 업을 전환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퇴근 후에도 늘 바쁘게 사는 게 디폴트였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활동하던 모든 커뮤니티는 전면 중단했다. 운동, 독서, 글쓰기 등 보통의 일상도 멈췄다. 커리어 전환 후 처음으로 무기력한 기운이 나를 덮쳤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은데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지?'
감정이 한 번씩 다운될 때도 있으니까 일시적인 증상이라 생각하고 좀 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기력한 기분은 점점 더 심해졌다. 퇴근 후 유튜브 영상만 멍하니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어디론가 갈 곳 잃어 방황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원인 모를 두통도 생겨 컨디션을 체크할 겸 일기를 썼다. 동시에 어떤 일들이 나를 기쁘게, 화나게, 슬프게 만드는지 감정의 기복을 살폈다.
일기 속 대부분의 고민은 '커리어'였다. 갑작스러운 승진 이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 때 번아웃이 온다는 걸 알고 있어서 예방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예상은 빗겨나갔다. 목표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길을 잃었을 때도 찾아온다. 그렇다. 목표 없는 사람에게도 번아웃은 찾아온다.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
다음 달, 팀에 신규 입사자가 합류했다. 신입의 실무를 가이드하면서 내 업무까지 동시에 하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요청했던 일과 내가 맡은 업무, 모두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반복되는 이 상황이 답답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옛 동료들에게 연락을 했다.
'새로 입사했다는 인턴이랑 같이 일하는 거 어때?'
'언니, 죽을 맛이에요. KPI 달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인턴들 케어하는 게 더 힘들어요. 며칠 전에도 이슈 있어서 그거 수습하느라 타 부서에 제가 대신 사과하러 다녔는데... 퇴사 욕구가 치밀었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사원과 과장 사이, 중간을 맡고 있는 대리급은 과장님이 지시한 업무를 잘 해내면서 사원 업무도 챙겨야 하기에 기존보다 업무량이 1.5배 이상 많아진다. 업무 처리할 시간이 부족해지면, 일을 더 많이하고,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예민해진다. 비슷한 연차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다.
엔지니어로 일할 때 3년 동안 대리 직급으로 일할 때 '마인드 컨트롤과 스트레스 완급 조절 능력이 중요하다'는 걸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마라톤 완주를 위한 마인드 컨트롤 3가지
- 달리고 있는 순간과 과정 자체를 즐긴다.
- 꾸준한 훈련으로 내외면을 단련한다.
- 오버페이스 하지 않는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 오직 체력과 정신력으로 4~5시간을 달리는 꽤 힘겨운 여정이다. 완주 의지만 가지고 도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달리고 있는 순간의 날씨와 풍경, 함께 달리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꾸준한 연습으로 단련된 체력과 페이스대로 욕심내지 않고 묵묵하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골인지점에 도착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라톤을 일과 인생에 비유하는 이유는 긴 여정을 거쳐야 하는 '연속성' 때문이다. 어려움을 느끼는 지금 이 시기도 지나가는 과정 중 일부이며, 어떻게 훈련하고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즐겁게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함께 일하는 방법'을 어떻게 맞이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파도에 올라탈 타이밍
번아웃의 원인이 준비되지 않은 커리어 설계일 줄 몰랐다. 깊이감 있게 일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뿐, 넥스트 커리어 스텝에 대한 고민이 없어서 길을 잃었다. 커리어에 관한 영상과 책을 찾아보면서 한 달 동안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는 마음 챙김 일기 쓰기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의견 나누기
커리어에 관한 영상과 책 읽고 원칙 세우기
나를 위로하는 방식으로 '글쓰기 - 대화하기 - 생각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삶의 목표를 한 번씩 점검하면서 몸과 마음을 동시에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서히 번아웃을 극복하게 되었고, 다시 무언가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겨났다. 커리어 로드 맵을 그려보고 현재 나의 포지션을 고려해 함께 일하는 3가지 원칙도 정했다.
함께 일하는 3가지 원칙
-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 일의 연결성과 실무 전문성
- 프로세스와 체계를 만드는 리더십
직급이 올라갈수록 혼자 일하는 데 한계가 있다.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팀원, 유관부서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소통의 부재로 정보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잘못된 선택을 방지하고,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인지할 필요도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부서간의 업무 이해와 여러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데이터 근거와 실무 전문성',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안할 수 있도록 '업무 프로세스와 체계'를 만드는 것, 앞으로 키워나갈 3가지 역량으로 정했다.
커리어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적절한 파도가 왔을 때 올라탈 타이밍을 놓치기 않기 위해서다. 서핑을 잘하기 위해서 많이 경험하고 익숙해지면 실력이 된다. 적절한 파도(green waves)를 알아보는 능력과 파도를 탈 수 있는 실력이 갖춰져야 서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리어 그린 웨이브를 만나기 위해, 그에 걸맞은 실력과 적절한 타이밍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