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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작가 May 29. 2022

두 번째 주니어의 성장곡선

계단식 성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

출발 전 준비 과정, 스스로 정의한 책임감


입사 후 팀장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저를 마케터로 뽑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팀장님과 신뢰가 쌓였을 무렵 회식 자리에서 넌지시 물었다. 당시 면접관은 팀장님 포함 두 분이었다. 한 분은 내가 신입으로 입사하기에 또래 직원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어울리기 힘들 것 같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팀장님은 나를 뽑자고 상대방을 설득했다고 한다.


'과장까지 일했던 경험이 있으면, 경험이 없는 신입보다 일을 더 잘할 것 같은데요?'

'경쟁사 리포트 분석도 마음에 들고요'


7년간의 사회 경험, 입사 전 경쟁사를 미리 파악해 보고 온 열정을 좋게 봐주셨다. 나를 믿고 뽑아준 팀장님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더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중고 신입에 대한 나쁜 선례도 남기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여행업계는 타 분야보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서 비전공자, 다양한 연령대에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잘할 것 같은 기대감과 달리 적응을 못하거나 금방 퇴사하게 되면 기업에서는 시간, 비용 모두 손해를 본다.


미래에 입사할 신입들을 대표하여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 나로 인해 안 좋은 인식이 굳혀지면 중고 신입들의 설자리를 더 좁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올바르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그들보다 먼저 출발선에 설기회를 잡았으니 그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토목공학과 출신의 엔지니어, 비전공자도 마케터가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정의한 책임감이 나의 성장 원동력이 되었다.



성장 곡선의 3가지 조건


드디어 커리어 전환 첫 테이프를 끊었다. 33세, 여행사 마케터로 취업했다. 대학 졸업 후 엔지니어로 취업해서 일하다가 9년 만에 다시 주니어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서 여행사에 취업한 게 계기가 되어 마케터로 일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유럽팀 마케터로 마케팅과 홍보 관련 업무를 다 할 줄 알아야 해서 심리적인 압박감도 조금 있었다. 잠깐이지만 6개월 동안 남미 여행사에서 적응하고 일하면서 얻은 성취감 덕분에 '이 일도 잘할 수 있겠지'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부담감으로 바뀌지 않도록 함께 일하는 동료, 마케터로서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앞으로의 성장 곡선을 미리 상상해 봤다. 이전에 과장까지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다시 그 단계까지 올라가려면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할지 3가지 조건을 정해봤다.


두 번째 주니어의 성장을 위한 3가지 조건

계단 거리를 늘려갈 것 '진취력'    

계단 폭을 높일 것 '협력'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힘을 키울 것 '지속력'   



24/7 마케터 모드, 진취력

첫 번째,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

마음속에 비전공자 마케터라는 꼬리표가 나를 괴롭혔다. 마케팅을 전공하고 일을 시작한 사람들보다 적게는 5년에서 10년이나 늦게 시작했으니 몇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지배 의식이 있었다.


마케팅 이론까지 거슬러 올라가 공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은 맡은 업무에서 성과를 내는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들었다. 그래서 출퇴근하면서 마케팅 관련 서적을 읽고, 글쓰기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4~5편의 글을 발행했다. 주말에는 일하면서 궁금했거나 의문점이 있었던 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강의도 찾아들었다.


실무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된 일은 레퍼런스를 모으는 일이었다. 마케터로 직무를 전환하고 나서는 퇴근 후에도 직장인 모드가 오프 되지 않았다.


- 길 가다가 우연히 본 카피가 마음에 든다면?

L 메모앱에 적어둔다.

- 웹페이지에 눈에 뛰는 프로모션 구성과 혜택은?

L 사진을 찍어 보관한다.

- 요즘 유행하는 콘텐츠나 인플루언서?

L  뜨는지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L 직접 참여해보고 비즈니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운영하는지 살펴본다.

- 매일 업무 리스트를 작성하고 매주 회고?

L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다양한 인풋에서 퀄리티 높은 아웃풋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샷'을 쏘기 위해 총알을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회사 밖에서도 다양한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경험하고, 기록하고, 생각하며 나만의 인사이트를 쌓는데 열중했다. 하나씩 쌓아 올린 레퍼런스는 업무 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요기 나게 꺼내 썼다.


제대로 된 '샷'은 기획한 콘텐츠가 저비용으로 이슈 되었을 때다. 제작한 콘텐츠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소개되며 직접 유입된 트래픽이 늘어났다. 콘텐츠를 확인하고 상품 문의와 구매까지 이어지는 전환들, 이런 경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마케터 능력치도 쌓아갔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습관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다 보면 계단의 거리를 넓힐 수 있다. 당장에 눈앞에 성장이 보이지 않아서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될 때도 있지만 정체기와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경사각을 높이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쌓는 걸 지속했다.



서로 윈윈 하는 사이, 협력


두 번째, 친화력 있는 사람

앞서 나의 합격을 반대했던 면접관의 우려는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한다 해도 조직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노파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과 일하는 것, 친밀도가 있는 사람과 일할 때 가장 큰 차이는 결과물이다. 친밀도가 높을수록 더 자주 소통하며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전 세계에 모든 호텔을 경험해 보고 기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호텔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고객 리뷰에 의존한다. 입사 초반에는 담당 직원에게 뭔가 물어보는 거 자체가 부담스러웠는데 입사 한 달도 안 돼서 다른 부서 직원들과 친해졌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동생들도 있다.


부서 사람들이 부담 갖지 않는 선에서 먼저 다가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 했다. 점심을 함께 먹으러 다니면서 회사 밖에서 그들의 성격, 취향, 업무 성향도 파악했다. 평소에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하며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


회사 내 성과 규정이 제대로 갖춰진 곳이라면 이런 과정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관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무 협조를 구할 때도 친밀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


산토리니 호텔 프로모션을 기획할 때였다. 벽을 깎아서 만든 동굴 형태의 고급 호텔이 많았는데, 사진으로 볼 때는 호텔 인테리어가 비슷해 보여서 특징으로 어떤 점을 소구 할지 막막했다. 파견 다녀온 직원과 친분이 있어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현지 호텔 담당자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내가 요청한 규정도 빠르게 확인해 주었다.


담당자와 관계를 잘 유지하면 양질의 정보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일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협업으로 콘텐츠 퀄리티가 높아지고,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확률이 높아져 세일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친화력은 서로 윈윈 하는 사이를 만들기도 한다.


협력은 내 능력과 동료의 능력을 더해져 계단의 폭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유관 부서와 관계를 잘 유지하며 그들의 능력을 흡수해 시너지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는 나중에 성과로 돌아왔다.



내외면의 단련, 지속력

세 번째, 건강한 육체와 마인드를 가진 사람

엔지니어로 7년간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아마도 꾸준함에 대한 것이다. 내게 맡겨지는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해내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내 그릇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내 그릇에 넘치게 담으려고 하면 에너지가 금방 소모되어 지치게 된다는 것을. 지치지 않게 컨디션 완급조절을 하며 꾸준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회사에서 계속하고 싶다면, 컨디션을 좋은 상태로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번아웃이 오는 걸 예방할 수 있다.


번아웃이 왔던 5단계의 과정

1) 매일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다

2) 일하기 싫어서 출근하기 싫다

3) 하기 싫은 일을 반복하면서 내적 갈등이 생긴다

4) 우울감이 생기고 무기력해진다

5) 퇴사 생각이 간절해진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여러 단계를 거쳐서 퇴사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라톤은 우리의 인생과 닮은 점이 많다. 42.195km 골인 지점이 보이지 않는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꾸준한 속도로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직장 생활도 마라톤과 비슷하다. 언제가 끝일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잘 끌고나가려면 에너지를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상태를 중간중간에 체크하면서 계획을 수정 보완하며 이끌어가야한다.


내외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훈련은 달리기와 글쓰기였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뛰고 나면 기분이 상쾌했다. 고민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체력적으로 힘들 때는 글쓰기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단련하는 과정은 일과 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었지만 일을 지속할  있도록 나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진취력, 협력, 지속력 3가지를 염두에 두고 마케터가 될 마음가짐과 준비를 마쳤다.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살게 된다고, 성장 곡선을 그려보며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나갈지 계획해보고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설렘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유럽&아시아팀 마케터로 1 동안 콘텐츠, 퍼포먼스, CRM, 인플루언서, 바이럴 마케팅, PR  다양한 업무를 접하고 수행했다. 가설을 세워 테스트하고 성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행업계에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홍콩 반정부 시위, 일본  재팬 불매 운동으로 팀의 매출이 휘청였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나의 마케터 커리어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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