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직업을 찾는 과정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겪는 일
여행이 좋아서 여행사에 취업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일하면서 전문성을 키우면 60대까지 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분야의 '직무' 선택이었다.
여행사 경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직무는 OP(오퍼레이터)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언젠가는 내가 가보게 될 미래의 여행지와 호텔, 투어를 미리 알아보고 상품으로 기획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지만 일적으로 핸들링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점점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6개월간 맡았던 일 중에서 어떤 일을 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지, 잘했던 일과 즐거움을 느꼈던 일들을 정리하며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사에서 경험한 3가지 종류의 일
1) 어려운 일 : 현지 업체 수배
2) 잘하는 일 : 웹페이지 기획 및 마케팅 채널 운영
3) 즐거운 일 : 소비자의 반응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개선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시차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
호텔 홈페이지 기획을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중남미 현지 업체에 호텔 정보와 시즌별 요금과 프로모션을 요청하고 받는 일이었다. 호텔 정보를 확인하고 콘셉트와 타깃을 분석하고, 특징과 어메니티 등을 소개하고 사진과 기간별 요금을 업로드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제공된 정보를 재구성해서 매력적인 호텔로 보이도록 기획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현지 수배 업체에 정보를 요청해서 받는 일은 '시차' 때문에 점점 힘들었다. 담당 호텔의 대부분이 카리브해 근처에 있는 고급 멕시코 호텔로 14시간 시차로 메일 보내고 회신은 하루 이틀은 기다려야 했다. 업무 속도가 더뎠다.
한 번은 칸쿤에 유명 호텔에 요금 표를 받기 위해서 몇 번에 걸쳐서 메일을 보냈는데 2주 넘게 회신이 없었다. 내가 오전 10시 출근하면 그들은 오후 8시로 퇴근했고, 오후 7시 퇴근 시점에는 그들은 새벽 5시로 출근 전이라 전화할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다.
두 번째, 의사결정권자 누군지 알 수 없음
정해진 기한 내에 일처리 하려면 어떻게든 연락이 닿아야 하는데 담당자가 바뀐 건지, 요금 세팅이 되지 않아 회신이 없는지 상황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호텔의 본사 고객센터로 문의 요청했다.
<이메일 내용 요약>
- 한국에 OO여행사며, OO호텔의 요금 표를 메일로 요청했는데 담당자가 2주 동안 회신이 없습니다. 담당자가 바뀐 것 같으니 확인 및 조속한 조치를 부탁드립니다 -
다음 날 출근 후 대표님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내가 보낸 본사 고객 센터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칸쿤 호텔로 연락을 취해 해당 내용을 전달해서, 담당자가 대표에게 다이렉트로 연락을 해왔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회신이 늦은 이유는 바빠서 확인하지 못했다며 화를 내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시도는 좋았으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해 주셨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본인에게 이야기하라며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이후 매월 말에 메일을 보내기 전에 요금 표가 꼬박꼬박 왔다.
공식 홈페이지가 있는 호텔의 경우는 이런 작은 해프닝을 겪으면서 해결이 되었지만 현지 소규모 업체는 잠수를 타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몇 번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남미 여행을 가려면 왜 여행사를 통해 가는 것이 안전한 지 이해가 됐다. 시차로 인해 현지와 연락하기 어렵고, 물리적 접근성도 떨어지고, 로컬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시스템이라 내가 주최적으로 핸들링할 수 없는 요소들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책의 첫 번째 챕터에서 협상론을 함축하는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상대방은 누구인가?
설득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협상에 필요한 3가지 질문이며 내가 협상 담당자라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질문에 답해봤다.
L 목표 : 요청 자료를 빠르게 회신받는 것
L 상대방 : 현지 호텔 담당자
L 필요한 것 : 컨텍 시스템 개선
시차로 실시간 소통이 어려운 점을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면 같은 상황이 반복이며, 짧은 기한 내에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품은 내가 책임진다
멕시코 칸쿤, 로스카보스 호텔과 투어 수배, 코스타리카 여행 상품 기획, 패키지 항공편 예약 등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배우면서 마케팅 업무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기획한 상품을 오픈하려면 동시에 마케팅도 진행돼야 하는데 마케터가 한 명이라 일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일정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른 담당자들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서 내 상품을 먼저 처리해 달라고 재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케팅 업무를 도와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마케팅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 어려운 마케터의 입장, 기한을 맞추려면 어떻게든 홍보해야 하는 내 입장은 대립되었지만, 일단 일정이 급하니까 진행하기로 했다. 마케팅은 채널에 맞게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 상품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일념 하에 기획, 마케팅, 세일즈까지! 여행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직무를 경험하면서 6개월간 어떤 일을 잘하는지 알게 되었다. 바쁜 마케터를 돕기 위해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경험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마케터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긍정적인 경험이나 가치를 제공하는 일
처음에는 마케터가 요청하는 방식으로 두세 차례 콘텐츠를 기획해 제작했다. 상품마다 타깃과 콘셉트와 소구 하는 포인트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왜 같은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지 물어봤다. 담당자는 상품마다 다르게 콘텐츠를 기획, 제작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며 이전 담당자가 하던 방식대로 해왔다고 했다.
마케터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가장 재미를 느끼는 일이 되었다. 내가 만든 상품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타깃과 콘셉트를 생각했다.
임팩트 있는 카피 한 문장을 쓰기 위해 광고 카피 중에 인기 있던 문장들을 검색해 내 방식으로 바꿔보고 사진 한 장으로 여행 가고 싶은 느낌이 들도록 다양한 사진을 찾고 선별하고 구도를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재미를 느꼈다.
내가 만든 상품을 홍보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게 가장 흥미로웠다. 어디에 있는 호텔인지, 언제 가는 게 좋은지, 어떻게 예약할 수 있는지, 신혼여행으로 꼭 가보고 싶다 등 긍정적인 피드백은 나의 가슴이 뛰게 만들었다.
일이란 걸 하면서 처음으로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잘 만든 여행 상품이라도 홍보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앞단의 일보다, 만들어진 상품을 분석하고 포장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마케터 직무가 나의 핏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사 마케터가 되기로 결심하다
마케터라는 업에 호감을 느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서점에 들렀다가 만난 책은 '마케터의 일'이라는 책이었다.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마케터가 되기에 충분한지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경험을 관찰하면 마케터의 자산이 됩니다
좋은 방법은 '왜'에 충실합니다
숫자 뒤에 진짜 사람이 있습니다
안 되는 이유 대신 '되는 방법'부터 찾습니다
작게 시작하고 짧게 보고 빠르게 실행합니다
무릎을 탁 치는 이야기에는 논리가 필요 없습니다.
직업으로서의 마케터를 이야기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방법을 찾고, 계획을 실현하는 <마케터의 일> by 장인성
마케터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 흡수력이 좋은 사람, 나아지려는 욕구가 있는 사람, 생각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 등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마케터의 업이 잘 맞는지 적혀있던 문장들을 읽고, 직감적으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마케터 타이틀을 달고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결심했다.
현 직장은 마케터를 더 충원할 계획이 없었고, 내가 잘 아는 아시아와 유럽 지역 상품을 메인으로 하는 여행사의 마케터로 이직하는 게 일하기 수월할 것 같았다. 여행 경험이 있는 지역의 마케팅 업무를 한다면 상품 파악할 필요 없이 마케터 업무만 몰입할 수 있으니까.
예비 마케터의 관점으로 기업을 분석하다
6개월의 여행사 경력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업데이트할지 고민되었다.
1) OP에서 마케터로 직무를 전환한 이유
2) 이전 여행사에서 맡았던 업무
3) OO회사에 지원하게 된 이유
4) 마케터로서의 자질과 능력
직무를 전환한 이유와 동종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은 필수 예상 질문이었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해 적었다. 고민은 내가 왜 이 회사에 지원했고 마케터로서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근거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소비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기업의 평판
'우리 회사 어떻게 알고 지원했어요?'
입사 초반에 동료들이 물어보는 공통된 질문이다. 입사 후에는 직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 외부에서 바라보는 기업의 평판을 궁금해한다.
평판은 기업의 마케터가 온/오프라인 상에 뿌려놓은 정보들을 소비지가 확인하면서 최초 인지를 하게 된다. 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소비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점과 입사 후 기업이 어떤 평판을 갖길 바라고,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지 답변을 준비했다.
면접 주도권을 가져오는 법, 경쟁사 리포트
또 한 가지는 마케터의 자질과 능력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건설 분야 TOP 3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업계 선두 주자기로 후발 주자들이 따라가려는 경향이 생각났다.
여행 업계의 TOP 3 기업의 요즘 마케팅 방식 분석했다. 일명, 예비 마케터의 시각으로 바라본 경쟁사 리포트. 경쟁사 리포트는 서류 통과 후 면접이 시작될 때 제출했다. 면접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나의 무기이자, 면접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나의 표현이기도 했다.
면접관들은 예상치 못한 서류를 보고 시간을 들여 리포트를 작성해온 것에 입사 의지를 높게 봐주셨다. 동시에 작성한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해 주셨다. 내가 만든 리포트 내에서 질문 주셔서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면접 주도권을 내가 가져온 기분이었다.
먼저 두드리면 기회가 열린다
몇 개 기업의 면접을 봤고 떨어진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서 면접이 끝나고 '리포트를 가져가도 되겠느냐' 물어보셨다. 면접 결과가 어떻든 리포트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만으로 내 방식이 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후 여행 업계에서 타 분야 마케터로 이직할 때도 경쟁사 리포트를 만들었다. 면접 준비하면서 경쟁사 스터디를 할 겸 제출했던 리포터에는 '마케팅 전략'도 첨부했는데 여행사 취업할 때 보다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업의 현 상황을 분석한 리포트, 정확하게 맥을 짚었던 기업에서 좋은 소식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정식으로 마케터가 되었다. 1인 마케터로 일하며 성장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