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꾸작가 May 08. 2022

월급 130만 원도 괜찮아요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중고 신입의 현실 자각 타임


중고 신입의 첫 월급 130만 원. 10년 전 첫 월급보다 적은 액수를 제안받고 자존심이 상했다. 돈이 적어서라기보다 7년 동안 일한 내 경력이 아무짝에 쓸모없음에 기분이 상했다. 


'중고 신입이지만, 7년 넘게 일한 중급기술자인데... 너무 적은 액수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를 전환하기 위해서 여행사로 취업하려고 했던 목표가 애초에 잘못된 건지 현타가 왔다. 


월급이 적어질 거라 예상은 했지만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시작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입사해야 할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세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해봤다. 


1) 다른 여행사에 다시 지원을 해볼까?

2) 이 월급으로 한 달 생활은 가능할 까? 

3) 나는 이 회사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마인드를 바꾸면 기회를 얻게 된다


첫 번째, 가장 안전한 배팅은 적게 투자하고 적게 잃는 것

생각할수록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워, 답을 내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제3자가 임팩트 있게 볼 주요 이력들을 적어보았다. 


- 나이 33세 

- 결혼 6개월 차 

- 엔지니어 경력 7년 5개월 

- 여행사 경험 없음 


이제 막 결혼을 한 30대 초반의 여성 

여행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중고 신입 


이력서 첫 문단을 보고 파악되는 나의 이력이다. 대부분의 서류는 포트폴리오를 보기도 전에 이미 자격 없음 처리를 당했을 것이다.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지라도 대표 입장에서 '모 아니면 도', 이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예측하기도 어려웠겠지...


사회생활 경험이 있지만 여행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관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표 입장에서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가장 적은 배팅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본다 해도 급여 조건은 비슷할 것 같았다. 다시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는 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이 앞섰지만 한편으로 리스크를 감수하고 입사를 제안한 회사가 고맙기도 했다. 



두 번째, 열정 페이? 하지만 마이너스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한 달에 130만 원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대략적인 계산을 해보았다. 


- 식비, 교통비, 통신비 약 40만 원

- 관리비 및 부부 생활비 약 50~60만 원

- 여윳돈 약 30만 원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은 대략 100만 원. 백수로 1년을 지냈고 그동안 모아둔 돈은 결혼 준비를 위해 전부 써버려 여유자금이 없었다. 다시 돈을 모아야 하는데 저축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빠듯한 급여를 보고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현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냉혹했다. 일을 해도 돈을 모을 수 없고 생활을 유지만 할 수 있는 열정 페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글펐지만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니니까 애써 위안을 삼았다.



세 번째,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이 회사를 다녀야 할 4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1) 지역 특수성과 여행 수요

2) 직무의 다양성

3) 미련보다는 후회 

4)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


첫 번째, 지역 특수성과 여행 수요

아시아와 유럽, 미국보다 남미는 상대적으로 정보를 찾기 어려워 여행사의 상품 의존도가 높았다. 특수 지역인 남미 여행 경력을 쌓으면 이직할 때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았다. 


'꽃보다 청춘' 페루 편 이후로 남미 패키지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을 때라 앞으로 시장성도 밝을 거라 예측했다. 


두 번째, 직무의 다양성

장점이자 단점이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대신 여러 가지 직무를 한꺼번에 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일이 많다. 직원이 20명 남짓 되는 회사에서 담당할 업무는 여행 OP(오퍼레이터)였다.


항공편, 숙박, 투어 현지 업체 수배하여 상품으로 기획하고 상담까지 하는 업무다. 평소 여행을 다니면서 국내에 없는 해외 투어 상품을 직접 예약하고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내가 좋아서 찾아 했던 일을 여행사에서 일로 하는 거라 영업 스킬도 배우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경험했던 좋은 상품들을 패키지로 기획해 사람들에게 공유하면 그들도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였고 매력적인 일이라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몇 년 뒤에는 내가 여행사를 직접 운영해 보고 싶다은 꿈도 있어서 항공, 호텔, 투어 등 전체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다양한 경력을 쌓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배우면서 다양한 경험도 쌓는 게 주된 목표였기 때문에 큰 회사보다는 작은 회사로 취업하려고 했다. 


세 번째, 미련보다는 후회

취업을 더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회사를 관둔 지 벌써 10개월, 백수가 된 지 만 1년이 다 되어 갔다. 다시 면접을 보고 취업하려면 적어도 1~2달은 더 걸릴 것이다. 


다른 회사를 찾는 데 시간을 쓰지 않고 차라리 그 시간에 회사에서 일을 한 달이라도 해보고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입사를 결정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경험하지 않고 포기하면 언젠가는 도전해 볼 걸 미련이 남지만, 경험해 보고 포기하면 후회는 될지언정 미련은 남지 않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 

일 배우려고 돈 주고 학원도 다니는데 '일 배우면서 식비, 교통비, 통신비 지원에 작지만 소중한 용돈까지 받으면서 다니는 거라면?' 예전에 건설인 협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지원금을 받았던 생각이 났다. 


두 달 동안 매일 4시간씩 교육받으면서 지원금도 30만 원씩 받은 적이 있었다. 교육도 무료였는데 교통비와 식비까지 지원해 줘서 고마웠던 기억이 있었다. 


제안받은 급여가 첫 월급보다 적어서 씁쓸한 감정이 컸는데 교육비와 비교하면 4배가 넘는 금액이라 크게 느껴졌다. 일을 배우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 인가, 사람은 역시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결론은, 

1) 나는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배우면서 소정의 지원도 받는 회사에 다닐 것이다. 
2)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적응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른다. 일단은 경험해보고 내 생각이 옳았는지 그때 가서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3) 내 능력을 증명하고 월급 인상을 정당히 요구하자. 나를 신뢰할 수 없는 지표가 없는 상태에서 월급을 네고해도 실패할 것이다. 나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그렇게 나는 입사를 결정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게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니 업무 외 시간에도 남미 지역의 호텔과 투어를 찾아보고 어떤 상품을 기획하면 좋을지 해외 로컬 사이트를 찾아봤다. 근무 외 시간에도 상품 기획을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입사 3개월 차, 회사 업무와 상품을 거의 다 파악했고 혼자 업무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수습 기간을 마치고 나서 월급은 40% 정도 인상되었다. 워낙 낮게 측정된 월급이라서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조금이라도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분야만 다를 뿐이지 회사의 일은 대게 비슷했다. 정해진 마감일 전에 내가 맡은 업무를 마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가령, 멕시코 칸쿤의 호텔 상품을 언제 오픈할지 정했다면?

1) 현지 업체를 수배하고 호텔 요금표는 언제까지 받을 것인지 

2) 가격, 프로모션, 유의사항, 운영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할지 확인하고

3) 상품 기획을 어떻게 구성하여 판매할 것인지

4) 웹페이지에 언제까지 업로드하고

5) 어떤 콘셉트와 타깃으로 홍보할지 정하면, 임무 완성이다. 


사실 업무 프로세스는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시간 역순으로 일정과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고 선임에게 맞는지 확인 요청을 하고 일을 진행했다. 


플랜트 엔지니어로 일할 때 공사 현장 일정과 조건에 따라서 유관부서와 일의 전후 관계를 생각하며 일을 했었는데 그때 일하던 업무 방식이 여행사에서 일할 때도 발휘되었다. 역시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치열하게 일을 배웠다. 그러다 목표했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하고 싶은 직무가 생겨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여행사 마케터가 되기 위해 다시 구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고 신입, 서류 광탈당하지 않는 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