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퇴사의 그림자
커리어 어떻게 쌓는 거죠?
드디어 정식 마케터가 되었다. 새로운 일을 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갔다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갈망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케터로 1년 동안 일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회사 안팎으로 부단한 노력을 했다. 1년 동안 맡았던 업무와 노력을 정리해 봤다.
1년 차 마케터의 일
1) 프로모션
웹페이지 기획 및 스토리보드 작성 (해외 유럽, 아시아 호텔 및 액티비티 상품)
2) SNS 채널
블로그 : 포스팅 기획 및 작성
인스타그램 : 카드 뉴스 기획 및 제작
페이스북 : 광고 인사이트 분석 및 리포트 작성
유튜브 : 인플루언서 마케팅 운영 및 집행
3) 기타
인플루언서 마케팅 : 팸투어 기획, 운영, 관리
대행사 마케팅 : 기자단, 체험단 캠페인 진행
바이럴 마케팅 : 카페 이벤트 진행
보도 자료 : 원고 작성 및 언론사 요청
회사 안팎의 생산자
마케팅 직무 전체를 전반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빠르게 배우고 성장하고 싶어서 일이 많은 건, 곧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느껴졌다.
회사 안에서는 기업의 입장, 밖에서는 소비자 입장에 생산자로 인사이트를 쌓았다. 최고의 배움은 다양한 경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회사에서 AB 테스트를 하고 결과 따라 개선점을 찾아가며 일하는데, 회사 밖에서 미리 테스트하고 얻은 인사이트를 회사 업무에 바로 적용하면서 실패 확률을 낮춰 빠르게 성과를 냈다.
커리어, 목표보다는 찾아가는 과정
콘텐츠를 기획, 제작, 채널을 운영하면서 인사이트를 쌓고, 다양한 기업과 사람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참여하여 어떤 점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 보고 인사이트를 모아 두었다가 기획할 때 참고 했다.
어떻게 커리어를 쌓을 것인가 목표나 방향을 먼저 설정하지 않았다. 커리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 최대한 많은 옷을 직접 입어보고 어울리는 걸 찾아가는 과정과 비슷했다. 기회가 될 때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핏이 맞는 일을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었다.
갑자기 찾아온 퇴사의 그림자
홍콩 반정부 시위, 일본 노 재팬 불매 운동으로 전체 매출의 70%가 감소하면서 순식간에 회사가 휘청였다. 외부 상황에 의해 회사 자금 사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럽팀 매출 상황은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던 일본팀 매출이 10% 미만까지 떨어지자 최소한의 인력만 남긴 채 전체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차례대로 회의실로 면담을 다녀왔고 권고사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언니, 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관두게 됐어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언젠가 다시 또 만나요...'
'또르르~'
입사 한지 3개월. 3년 차 경력자로 입사해 일을 썩 잘하는 친구들이었는데 갑자기 퇴사 소식을 전했다. 업무 성과로 대상자를 정한게 아니라 가장 최근에 입사한 순으로 인수인계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도록 결정된 것 같았다.
팀 내 마케터는 나 혼자라 권고사직을 받지 않았지만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의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을 듣고 마음 한편이 쓰렸다. 앞으로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성과와 관계없이 외부 상황으로 인해 내부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깊은 근심에 빠졌다.
환상 속에 일, 현실 자각 타임
퇴사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당장 내 차례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회사가 더 어려워지면 나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불안했다. 퇴사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사정이 더 악화되면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미리 고민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과도 따라오고 매출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회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이 튼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호텔과 투어 상품을 중간에서 연결해 주고 수수료로 이윤을 얻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지면 자연스럽게 매출이 줄어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코로나 발생 4개월 전이었지만 예측이라도 한 듯, 이런 상황이 앞으로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어수선한 이 타이밍이 이직할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업이 아닌 다른 분야로.
마케터의 첫 번째 이직
이직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비즈니스 모델
성장의 한계
첫 번째, 비즈니스 모델이 불안한 게 이직의 주요 원인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매출 내기 어려운 구조라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나도 안전지대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도 매출 구조가 안정적이어야 지속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자사의 기술을 갖춘 회사로 이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어떤 분야로 이직할지 정해진 건 없었지만 마음먹었을 때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뜻밖에 결정에 차장님은 적잖아 놀라셨고, 해외 출장 중이었던 팀장님도 한사코 만류했지만 결정을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두 번째, 1인 마케터로 다양한 일은 접할 수 있던 점은 좋았지만 이제 전문성을 키워야 할 때가 왔다. 혼자서 역량을 키우기에 어려운 타이밍이었다. 콘텐츠, 프로모션 기획과 인플루언서나 체험단 직무에서는 강점을 보였으나 퍼포먼스는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페이스북 담당자와 유선 통화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광고 효율을 개선할 수 있을지 광고를 집행하면서 궁금한 사항이 생길 때마다 꼭 문의 사항을 남겨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선임 마케터에게 제대로 배우는 것, 마케팅 팀 구성원이 여러 명인 회사로 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다른 물에도 가봐야 다른 물고기도 만나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퇴사 후, 4개 회사를 거쳐 나의 핏에 맞는 회사로 입사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프로이직러라도 된 마냥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다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