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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30. 2020

엄마 삶의 마지막은 엄마 뜻대로 해야 하니까

사실은 그 농담같은 말이 엄마의 연명의료의향서이자 나의 대답이었던 셈이다

최근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 무연고자가 식물인간 또는 의식불명이 되었을 경우 수술이나 연명치료에 대한 동의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일어난 일인가 싶어 순간 모두들 염려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가 쓸 웹소설 설정을 위한 조사 과정이었다. 안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화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다가, 진지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사람이 나 포함 단 세 명으로 압축됐다. 직장이 병원인 J는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이 요새 큰 논의 거리이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많은 의견을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Q는 연명치료를 10년 가까이 받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향으로 여기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우리 셋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연명치료를 결정해야 했거나, 그 결정의 과정이나 결과를 가까이서 지켜보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건 일 초가 백 개씩 천 개씩 쪼개져서 그 시간의 낱알 하나하나가 내게 달려드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살면서 가장 다급했고, 또 가장 무력했던 순간, 그래서 이렇게 분명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날은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빠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해외에서 막 돌아온 터라 전날 응급실에 간 엄마 상태가 어땠는지 내 눈으로 보거나 자세히 들은 적이 없었는데도 '엄마가 다 죽어간다'는 말이 과장이나 비유가 아니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두 번 묻지도 않고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에는, 통증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나 좀 빨리 데려가 주세요 아버지”라는 말만 되뇌는 엄마가 있었다. 일주일 전 나랑 과자를 먹고, 손이 왜 이렇게 거치냐며 내가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온 우리 엄마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돌 갓 지난 아기와 단둘이 있는 언니에게도 빨리 연락해야 하지 않겠냐고 아빠에게 말하려는 찰나, 응급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지금 환자분의 암세포가 깨졌다고 보시면 되는데, 쉽게 말해서 원래 있던 암세포가 파편처럼 깨지면서 온 몸으로 퍼져서 지금 모든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연명치료에 대한 결정을 해 주셔야 돼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인 나를 보고 의사는 말을 이어갔다.

"환자의 임종 시에 심폐 소생술과 삽관을 비롯한 연명 치료를 하겠냐 하지 않겠냐는 건데요, 신중하게 결정해 주셔야 하는 게, 하기로 결정하면 중단할 수 없어요."

'아, 그거구나. 심장이 멈추면 살려내는 거. 인공호흡기 끼고 살려놓는 거.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엄청 중요한 거 같고, 지금 아빠도 울고불고 정신 못 차리는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사람.'

"선생님, 저희 언니가 와야 되는데요, 언니가 오고 나서 결정하면 안 돼요?"

"언니가 언제 오시는데요"

"한 시간 내로 올 수 있어요"

"아뇨, 지금 결정하셔야 됩니다. 삼분 내로 그런 상황이 오거든요."


고작 양치 한 번 정성껏 할 시간이 삼분인데,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그거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 의사가 미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방금 전에 내 눈으로 본 엄마의 고통과, 이미 패닉 상태인 아빠를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눈물을 멈추고 분명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이 상황을 전달했다. 그렇지만 언니는 언제 오느냐, 어떻게 해야 하냐, 엄마는 어디로 데려가냐 횡설수설하는 아빠는 나보다 몇 시간 전부터 이 상황 속에  있느라 이미 멘탈이 무너진 상태였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일순간 모든 것이 음소거되면서 언제인지 모를 엄마와의 대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엄마가 아프기도 훨씬 전이었다.


“내는 절대로 저렇게 안 누워있고 싶어. 호흡기 끼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 자식들 다 고생시키고. "

"어이고, 빨리 죽겠다는 사람 중에 진짜 죽는 사람 없더라. 자기가 저래 되면 또 모른다."

"아니야, 혜빈아 난 진짜야. 내는 정-말 저렇게 되면 빨리 천국 가는 게 좋지 저렇게 누워있으면 안 좋아. 니가 딱 기억해 놔."

"참 나. 알았어 내가 딱 '우리 엄마는 이런 거 안 해요!' 할게"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의식 없는 가족을 오랫동안 간병하는 장면 같은 게 나오면 주요 내용이 아닌데도 늘 엄마는 한 마디씩 하곤 했다. 한두 번이면 잊을 법도 하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때부터 늘 빼먹지 않고 저런 상황에서는 그냥 천국가게 해달라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저 대화는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되었을 수도 있지만 엄마의 뜻은 오해하려야 오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죽음의 방식은 탄생의 그것과는 달라서 사람마다 가지각색일 텐데도, 엄마는 '저렇게 되면'이라는 조건절을 붙이고는 마치 재밌는 상상이라도 한 것처럼 유쾌하게 웃곤 했고, 나는 또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곤 했다. 우리가 남 얘기하듯 몇 번이나 주고받았던 말, 시시한 농담 같아서 늘 담고 다닐 필요도 없던 말이 이 순간에 떠오를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은 그 농담 같은 말이 엄마의 연명의료 의향서이자 나의 대답이었던 셈이다.


결국 엄마의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내가 가족 대표로 서명을 하기까지는 일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만 떠오른 생각일지언정 나는 "엄마는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나한테 분명히 말했어"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아빠는 거기에 한 마디도 더하지 않았다. 이제 막 집을 떠났을 언니에겐 오는 길에 무슨 일 날까 봐 자세히 얘기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연명의료가 어쩌고 말을 꺼낸 지 삼 분 정도 지났을 때 의사들이 급하게 엄마를 다른 침대로 옮겼고, 응급실의 분주한 기계소리와 발자국 소리 속에서 우리 엄마의 소리만 조용히 멈췄다. 아늑한 병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영화나 드라마 속의 평온한 임종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엄마가 떠난 직후 이 이야기를 몇 명의 사람에게 했었다. 듣는 사람마다 눈물을 훔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 누구에게나 그런 감정을 주나 보다 싶다가도 우리 엄마의 마지막이 특별히 슬펐나 싶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 엄마는 한 때 존재했었던 사람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임종 순간의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경험한 나 역시 그 기억을 꺼내어 쓸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이었는지 다시 고민해 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군가 그때 그 순간에 내 선택이 최선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위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초단위로 다시 들려주며 그럼 당연하지 듣고도 모르겠냐며 면박을 줄 것이다. 내가 서명한 것은 사실 내 뜻도 아니고 다른 가족들의 뜻도 아니고, 고통으로 정신을 잃어가는 마지막 엄마의 뜻도 아닌, 아주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엄마 스스로가 내린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오랜 논란 끝에 제정되어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이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존엄하게 임종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 법의 시행 전인 우리 엄마 때만 해도 이러한 상황에 갑자기 던져지는 가족들은 너무나 힘든 선택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남겨진 우리에게 조금의 짐도 지우지 않았고, 나는 그저 엄마가 했던 말들을 기억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다고 절대 담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꼴일지언정 그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혼란이 없었다.

지금은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혀둘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 작성할 수 있는 연명의료 계획서는 좀 더 나중의 이야기지만 나는 조만간 건강관리공단에 찾아가 만 19세 이상이라면 어느 시점에든 작성 가능하다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 해 둘 계획이다. 나이를 먹는 것과는 별개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위험도 높은 세상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요즈음, 백세시대 준비란 아주 운 좋은 사람의 희망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래서인지 엄두가 안 나는 노후 준비보다는 임종 준비가 내게 훨씬 쉽고 어쩌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미래를 알지도 못하면서 연명의료 의향을 농담처럼 밝히곤 했던 우리 엄마의 딸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들 고생시키면 안 된다는 가치를 가장 먼저 이유로 들었던 엄마와는 아무래도 결이 다르다. 살면서 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 정말 몇 개 되지 않는데, 삶을 마감하는 순간만큼은 내 뜻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  그것도 못하고 가면 분명 아쉬울 테니, 나 자신을 포함해 다른 누구의 고통도 늘리지 않으면서 존엄하게 세상을 떠나는 쪽을 아주 능동적으로 택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엄마랑 같은 건가. 잘 모르겠지만 남을 자들의 판단에 맡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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