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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Apr 21. 2024

나는 비혼 상태의 반혼주의자입니다

서솔,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를 읽고

이 책을 찾아낸 계기는 다름 아닌 TVING 예능 <환승연애> 시즌 3였다. 연프에 과몰입해서 다음 편을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 리뷰를 몇 개씩 찾아봤는데 우연히 여자 둘이 나와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갈기는 채널 ‘하말넘많’을 발견했다. 환연리뷰 외에도 사투리 강의 등 몇 개의 웃기는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는 걸 보고 요새 인기 있는 개그듀오인가 했다. '과연 진짜로 뭐 하는 사람들인가'가 궁금해져서 여기저기 뒤지다가 2021년 이들이 낸 책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뭐 하는 사람인가 내 나름대로 설명하자면, 책 제목처럼 어릴 때부터 기가 세다는 말을 듣고 살아온, 그런데 삼십 대가 된 지금까지도 그 '기가 세다'는 수식어를 벗기 위한 노력은커녕 어떻게 하면 자력으로 더 '쎄게' 살아갈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는, 내 주변에 있는 평범한 친구들 (혹은 나) 같으면서도 매우 비범한 사람들이다. 200페이지 남짓의 가벼운 에세이에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각과 분투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고개가 떨어져라 끄덕였던 내용은 이 부분이었다.



그러나 시집갈 때가 다 됐다는 악의 없는 칭찬을 끔찍하게 여기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었다. '결혼하지 않는 사실' 자체가 지난 사회적 감점요소였다......(중략)...... 결혼하면 행복주택에 편히 들어갈 텐데, 아이를 낳을 때마다 대출금리를 깎아줄 텐데, 정말 결혼 안 할래? 애 안 낳을래?



나는 두 작가들처럼 비혼을 선언한 적이 없지만, 30대 후반이 되도록 연애는 계속하면서도 결혼에 대한 꿈이나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도 꽤나 자연스럽게 내가 비혼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같이 기 센 여자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린다. 비혼은 혼인에 대한 의사가 아니라 상태를 뜻하는 단어라는 점을. 혼인하지 않은 상태를 일컬어 결혼에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단어 '미혼'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처음에는 페미 용어라는 시선을 받았지만 이제는 중립적인 용어로 언론에서도 채택하는 단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혼인여부를 나타내는 '비혼' 뒤에 선언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미혼 선언'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어색하다.


앞에 한 말을 고쳐서 말하면 나는 현재 비혼이지만, 앞으로 영원히 비혼일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선언한 적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혼인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십 대 언저리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주 큰 일이지만 한편으로 아주 보통의 평균적인 삶에 안착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표준적인 생의 주기는 결혼을 한 사람에게 맞춰져 있고 국가의 정책 또한 그 경로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는 속도만큼 정책변화는 따라와 주지 않는 듯하다. 신혼부부가 아니어서, 청년이 아니어서, 부양가족이 없어서, 소득 기준이 맞지 않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정책의 변두리에 있는 내 또래 비혼여성들은 여성으로서 받는 페널티에 더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중 페널티를 받는다. '가임기' 여성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많은 유인책 앞에서 결혼하지 않은 것은 불완전하고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상태로 그려진다. 이제까지 살던 방식대로 산다는 것만으로 이기주의자가 되고, 철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의 비혼 다짐이 이전에는 자유를 원하는 단순한 소망이었다면 이제는 '반(反)혼'이라는 선언에 가깝다.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순간 모두의 눈초리를 받는 한국사회에서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굳건한 다짐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이십 대 내내 결혼은 뒤로 미루고 내 취미생활이나 여행,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는 말을 주문처럼 하고 다녔다. 경험도 보장도 없는 결혼의 행복보다는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분명한 자유와 행복을 최대한으로 길게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차도록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협박을 체감하면서 이 구조적 부조리에 대한 저항감이 생겼다. 아무리 내 삶을 비정상으로 몰고, 쉽지 않게 만들어도 보란 듯이 잘 살아내서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공부가 필요하면 배우고, 돈이 필요하면 모아야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연대할 사람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걸 반혼(反婚)이라고 하나보다.


앞으로는 나를 비혼 상태의 반혼주의자라고 소개해야겠다. 비혼이라는 말속에는 영구적인 상태나 의지의 표명이 없으며, 반혼이란 결혼 그 자체보다는 결혼 유무로 인해 차별이나 소외를 받게 되는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의 의미이다.


결혼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하는 거다. 하지만 안 하겠다는 마음이 결연해질 필요도 없어야 한다. 결혼하겠다는 사람에게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셨어요?'를 묻는 게 평범한 질문이 아니듯, 비혼을 선언한 사람에게 '왜 결혼을 안 하려고 하세요?'를 묻는 게 새삼스러워지길 바란다. 그러면 더 이상 비혼을 거창하게 선언하는 일도, 누군가를 '비혼 여성'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하는 일도 지금보다 줄어들겠지. 결혼과 육아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본인의 경험이 한 단계 성숙하고 차원 높은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나이대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생의 경험 중 하나로, 결혼하지 않은 삶보다 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치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오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결혼에 우호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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