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어예 Apr 21. 2024

제 13화  정부는 고등역을 신설하라!

신설하라! 신설하라!

인생은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 아르미안의 네딸들 -


허리 디스크가 있는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디스크가 젤 무서운게 어느 지점이냐면 언제 아플지 모른다는거. 그게 완전 공포스러워."

아 정말 나 이느낌 뭔 줄 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무서운 건 대체 언제 왜 배가 아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음식 조절도 잘 해왔고, 아침에 화장실도 다녀왔고, 약도 잘 챙겼고. 안정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 약속은 강남역. 차를 갖고 가기엔 번잡한 동네라 주차가 힘들테니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역마다 화장실이 있으니 무슨 걱정. 하지만 꼭 이럴때 걱정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

지하철이 신분당선 판교역을 출발하자 마자 배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럴리가 없는데. 아플리가 없는데. 하지만 안 아플리도 없겠지 내 배인데. 핸드폰을 보니 아직 출발한지 30초도 지나지 않았다. 판교역 다음역은 청계산 입구역. 역 사이의 소요 시간이 무려 7분이 넘는다. 젠장.


아침시간이라 사람들이 빽빽하다. 그 틈으로 팔을 굽혀 핸드백에서 재빨리 분홍약을 꺼내어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며 껍질을 까고 입으로 집어 넣는다. 한알. 5초. 배 아픔. 마약도 아니고 입에 넣는 순간 배가 바로 나아질리 없는데 못 기다리겠다. 또 부스럭 한알. 그 와중에 손은 덜덜 떨리고 식은땀은 나고 머리 속에 수만가지 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인이 지하철에서 똥 싸면 인플루언서 단번에 될 수 있다며 농담했던 것이 드디어 실현되는 것인가. 나는 이민을 가야하나 막 울고 싶을 때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엄마다. 일단 받자.


"어 엄마."


"너 내가 주문해달라고 한 부지깽이 모종 주문 했어? 아직 안왔어. 비 오기 전에 심어야 하는데."


"했지~. 벌써 갔어야 하는데... 잠깐 기다려봐. 확인 하고 바로 카톡 남길께."


쇼핑 목록을 확인하고 송장 번호를 복사해 붙여넣기, 엔터. 거의 다 왔네. 오늘이면 도착하겠네하니 반가운 멜로디가 울린다.


'다음역은 청계산입구, 청계산입구역입니다.'


어라 ~ 벌써 7분 지난거야? 멜로디를 듣는 순간 배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아까 먹은 분홍약 두알이 이제 효과가 돌기 시작한 걸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 쉬니 옆 사람이 흘깃 쳐다본다. 뭐 어떠랴. 다음역부터는 3분 간격이다. 괜찮다.


그래도 화가난다. 역 간격이 7분이 뭐냐고. 제발 판교역과 청계산입구역 중간에 역 하나만 세워 달라고 제발... 이거 공약거는 사람 내가 우리 동네 국회의원으로 선거 운동 해준다!


이전 12화 제 12화 깨져버린 황금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