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스가 생각나는 도시들

by 애라

과일주스를 좋아한다. 간단하게 먹기도 좋고, 한 번에 과일을 많이 먹는 기분이 들어서 자주 마신다. 제일 좋아하는 건 파인애플, 싫어하는 건 딸기가 들어가는 주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갈아둔 지 오래되어서 분리현상이 일어난 주스는 정말 극도로 싫어한다. 이번 여름에는 수박 주스를 갈아먹으려고 좋은 믹서기를 사기도 했다. 그 믹서기로 요즘은 적용과 스무디를 만들어먹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주스를 좋아하는 나에게 최고의 도시는 쿠스코였다. 쿠스코 산페드로 시장이 숙소 근처에 있었다. 첫날 파스타 재료를 사러 갔다가 주스 집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자그마한 좌판에 과일을 가득 올려놓고, 전통의상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정말 한 구역이 전부 주스를 파는 곳이었다. 구경하면서 지나가다가 왠지 끌리는 아주머니 가게 앞에 앉았다. 어느 때와 같이 나는 파인애플 주스를, 동생은 딸기 바나나 주스를 시켰다. 휘리릭. 믹서기 소리가 나더니, 두 잔의 음료가 완성되었다. 파르페 잔에 한 가득 따라주셨다. 밥 먹으러 왔는데, 이 주스 먹으면 밥은 못 먹겠는데? 싶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여기 맨날 오자!!라는 얘기를 하면서 다 마셨는데, 갑자기 컵을 달라시는 아주머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드렸더니, 다시 리필을... 해주신다. 믹서기를 보여주시면서 우리의 분량이 남았으니 더 따라주시겠다는 아주머니.... 결국 그 날 밥은 뛰어넘었다. 쿠스코에 있는 일주일 동안 마추픽추를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맨날 아주머니를 만났다. 점점 반갑게 맞이해주시더니, 우리가 모를 만한 과일을 잘라서 맛보게 해 주셨다. 주스 종류가 진짜 많아서 맨날 다른 걸 마셨는데도, 다 마셔보지 못했다. 시장에 앉아서 마시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시간이 좋았고, 아주머니의 투박한 말들이 좋았다. 물론 점점 한 잔 더 주시려는 아주머니를 말리긴 했지만. 한 잔 값으로도 저렴한 가격을 내고, 두 잔을 마시는 풍족함도, 그들의 전통의상도, 다 좋았다. 그래서 웃기게도 쿠스코 하면 제일 생각나는 게 주스 아주머니다.


또, 주스가 떠오르는 곳은 마라케시이다. 제마 알프나 광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주스 가게. 앞에 과일을 잔뜩 쌓아놨다. 툭 치면 와르르 쓰러질 정도로 많은 과일들에 눈이 돌아가기 십상이다. 오렌지가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주문했다. 눈으로 힐끔힐끔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오렌지 6개 정도가 들어간 주스는 더워서 죽을 것 같은 나에게 생명수 같았다. 당도가 높은데, 과일도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진했다. 물론 오렌지 주스는 스페인에서도 자주 마셨다. 마트 가면 한편에 있는 오렌지 주스 착즙 기계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결제하고 나오는 우리 손엔 항상 들려있었다. 한국에 와서도 그 기억 때문에 오렌지를 자주 사 먹었는데, 모로코나 스페인에서 먹은 오렌지를 따라갈 수 없었다. 글을 쓰면서 살짝 침이 고이는 건 왤까. 주스를 사 먹을 때마다 여행이 떠오르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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