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제3병동>
(김정한의 <제3병동>을 읽고 난 후의 메모)
1974년판(1976년 재판)에서 읽었는데, 이건 검색이 되지 않는다.
3등 인간이 입원하는 전염병 병동 제3병동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오롱댁 심 작은둘(“묵은 폐결핵에, 장질부사…… 장천공?)이 입원하고 그녀를 간호하고 위해 딸 강남옥이 함께 제3병동 제5호실에 기거한다. 그리고 이제 막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선 의사 김종우가 있다.
병간호를 하던 딸도 쓰러지고, 김의사는 진찰실로 처녀를 올려보낸다.
김의사는 그 길로 본관 4층에 자리잡고 있는 내과 과장실로 올라갔다.
김의사의 보고를 받고 난 과장은,
“Maybe typhoid fever. (아마 역시 장질부사일 테지)……. 환자와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들었는데, 왜 그걸 진작부터 말리지 않았지요?”
강남옥 쳐녀의 진찰 결과가 나타났다. 역시 장질부사로 볼 수밖에 없었다. 열형(熱型) 기타의 증세로 미루어 보아도 그랬거니와 특히 현저한 백혈구 감소증이 그것을 뒷받침하기에 우선 충분하였다.
여기서 장질부사는 장티푸스를 음차한 말이다. 호열자와 같이 콜레라를 가리키는 말도 당연한 듯 쓰고 있다. 그러나 장질부사나 콜레라는 일본에서 온 말로 우리의 옛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오롱댁 심 작은둘은 끝내 죽고 만다. 온갖 고생만 하다 결국 그렇게 딱 한번 동생의 건네 준 돈으로 약간의 치료를 받다 죽은 것이다. 딸은 운다. 죽고 사흘이 지나서야 ‘누르퉁퉁한 베옷을 미리 상복처럼 입고’ 시골에서 올라온 아버지는 “오롱댁아……”하며 울음을 삼킨다.
목쉰 소리로 이렇게 한 번 울꺽하더니, 강노인은 계속 어깨만 추스렸다. 풀 죽은 두건 끝이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197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소설집 《第3病棟》에 실린 <제3병동> 끝에는 1966년 <신동아>에 발표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뒤에 실린 <허덕이며 보낸 人生-나의 作家的 自敍傳>을 보거나 ‘연보’를 보면 1969년 <世代>지에 발표된 것으로 나와 있다. 1966년은 20년 넘게 활동을 붓을 꺾고 있던 김정한이 <모래톱 이야기>로 중앙 문단에 복귀한 해다. 이로부터 김정한은 다시 활발하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