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혜심, 《지도 만드는 사람》
《매너의 역사》를 읽으며 설혜심 교수가 쓴 책들을 찾아봤는데, 2016년 《그랜드 투어》, 2020년 《소비의 역사》, 2021년 《인삼의 세계사》, 《애거사 크리스티 읽기》를 읽었었던 걸 기록해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설혜심 교수의 작품을 꽤 좋아하면서 초기 작품은 건너뛰고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2023년에 나온 《지도 만드는 사람》은 읽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학자의 책이니 사이먼 가필드의 《지도 위이 인문학》이나, 특히 영국 역사에 빠삭하니 사이먼 윈체스터의 《세계를 바꾼 지도》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하면서 펼쳤다.
(읽기 시작하면서 서지를 보니 2007년에 나왔던 설혜심 교수의 두 번째 책이다. 2023년 개정판을 낸 것이었다.)
16세기가 무대다. 설혜심 교수의 전공 시대라고 한다. 그 시대 앞뒤로 주로 영국의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읽는 지도’, ‘보는 지도’ ‘듣는 지도’. 이렇게 세 가지의 주제로 나누고 있고, 그게 각 부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읽는 지도’나 ‘듣는 지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도’와는 사뭇 다른 개념의 지도를 가리키고 있다. ‘읽는 지도’에 관해서는 ‘역사지지학’을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존 릴런드가 《답사기》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이루고 있다. ‘듣는 지도’에서는 ‘듣는’의 의미가 청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영국(의 지리)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지도와 관련지은 것은 약간은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므로 이 책의 중심은 2부의 ‘보는 지도’다. 영국의 지도 그리기의 변천을 다루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도가 점점 정교해지고, 또 범위도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그 점이 바로 설혜심 교수가 16세기의 영국을 지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설혜심 교수는 영국의 국가주의가 발흥한 시기를 16세기 초반으로 잡고 있는데, 바로 이 시기에 앞에서 얘기한 존 릴런드의 《답사기》가 나왔고, 영국의 지리를 자세히 구현한 지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16세기 초반은 바로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바티칸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세운 시기이기도 하다. 헨리 8세의 조치가 비단 개인적인 이혼 문제 때문만 아니라 수도원 혁파를 통해서 재산을 몰수하고 국가의 재정을 늘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조치가 파급력을 가지면서 영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도는 영국이라는 한 국가를 통합하는 역할을 도운다. 그리고 나중에는 해외로의 팽창을 도울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또 정립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영국이라는 국가가 근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또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는 시기의 초석이 바로 지도를 만드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설혜심 교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다. 그러니까 여기서 ‘지도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근대 국가의 기획자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