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삼일 째 비가 내린다. 나는 창문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무리 오래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빗소리를 듣고 있자면 평소 들뜨고 어수선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빗소리 듣는 낭만을 즐기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대신 ‘비가 오니 밖에 돌아다니기가 어렵겠다’, ‘그럼 아이랑 집에서 하루종일 뭘 하며 놀까?’, ‘비가 어서 그쳐 오후 늦게라도 놀이터에 가서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날이 서늘하지 않으면 데리고 나가 같이 비를 맞은 적이 있었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유성처럼 둥글게 내리는 비를 보는 기쁨, 하얗게 보이는 그 빗줄기를 맞는 감동, 귀를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의 향연을 아이들과 즐겼다. (중략) 엄마가 앞장서서 일부러 나가 함빡 적셔 들어오면 일거리가 산처럼 쌓인다. 하지만 우리가 누린 기쁨은 태산이 되어 우리 마음에 남는다. 비 놀이 뒤에 집 안으로 바로 들어와 따뜻한 물로 씻고, 뜨거운 차를 마시고, 이불로 몸을 싸고 마주 보는 우리는 행복에 폭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 기쁨을 아는 우리에겐 일이 대수가 아니다. (서형숙, 『엄마학교』중에서)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엄마학교』라는 책을 읽으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다. 밑줄 쳐 가며, 엄마로서의 무한한 인내심과 애정에 감탄을 연발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가정에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엄마가 아니라 언제나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가 있었다. 비오는 날이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니! 외출하는 것조차 귀찮고 꺼려졌던 내게 그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어른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아이의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 첫 발을 디디는 호기심 충만한 아기에게 비오는 날이란 얼마나 신기한 세계일까? 옷이 비에 젖으면 옷은 갈아입으면 그만이고, 온몸이 젖으면 목욕 한번 하면 그만인 것을. (나도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은 너무 걱정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안돼!’라는 말을 참 자주 한다. 저자는 나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면,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시도하고 엄마의 사랑 안에서 격려 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저자만큼 크고 넓은 그릇을 가진 엄마가 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육아 방향은 닮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어제 아이와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얼굴에, 어깨 위에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이 신기한지 연신 생글거린다. 물웅덩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는 웅덩이에 고인 물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발로 물을 마구마구 밟아서 물을 튀게 해 보기도 한다. 아이가 원하는대로 하게 두고, 난 그냥 옆에서 지켜봐주었다. 손발은 더러워졌고 옷에는 흙탕물이 튀어 지저분해졌지만 내 생각을 바꾸고나니 그건 아무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 염혜원 작가의 『물웅덩이로 참방!』이라는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는데, 물웅덩이가 나오는 부분에서 아이가 그림을 손으로 가리키며 '음! 음!' 이렇게 말했다. 낮에 빗속에서 놀았던 것이 생각났나 보다. 아직 어려서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아이가 보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잡았을지 모른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빗놀이를 즐기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코코아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상상을 해 본다. 비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