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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실격 May 12. 2023

대학교, 3일 만에 자퇴했다

자퇴후, 글쓰기를 만났다


 첫 수업이 있고 3일 뒤에 자퇴했다. 환영회 날,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아무런 능력도 전문 기술도 없으면서 술이나 퍼먹어도 괜찮을까? 그러면서 잘하는 게 있나? 자신감이 있나?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외모 컴플렉스가 컸다.

  평생 아버지에게 못 생겼단 말을 들었다.  대학만큼 외모가 중요한 곳이 없다. 잘 생길 필요는 없지만 말을 걸면 스토커로 오해 받을 외모는 아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학교에 전문성 없는 학과를 나와서 어떻게 할 건가?

 물음은 심연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왜?’라는 말에 버릇 들이라 하지만 내 자식이라면 절대 그런 말은 그런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물이나 원리에 ‘왜?’는 호기심이지만 자신이나 타인에게 ‘왜?’라고 묻는 순간, 인간은 심연과 마주한다.


 우울증이 시작됐다. 침묵과 고요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낯선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됐다. 가만히 있으면 나 자신에게 잡아먹혔다.

 우울증을 격고 한 달이 지났다. 방 안에 있으면 위험하겠단 생각에 동네 공원에 나왔다. 새가 지적이고, 노인이 산책하고, 상록수가 우거진 푸른 평화가 태어나서 느낀 가장 거대한 불안이었다. 평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 행복하면 나중에 불행할 것이란 망상에 사로잡혔다.

 내게 휴식은 사치였다. 행복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뭔가를 해야 한다. 뭐가 됐든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일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사장님에게 미안하지만 한 달만 일하고 나온 적이 많다. 일이 익숙해지면 그만뒀다. 내가 있을 장소를 찾고 싶었다.

 “내가 진짜 잘 맞는 게 뭐지?”

 이 물음은 다시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할 줄 아는 게 뭐지?"

 꿈을 찾으라는 말을 시험 공부하듯 찾았다. 극도의 스트레스는 눈을 멀게 했다. 뭐든지 시작했다.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를 그렸다. 그림을 못 그리지만 스토리를 잘 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상상한 만큼의 10퍼센트도 만들지 못했다.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는 여기서 막힐 것이다. 창작은 내 상상처럼 나올 수 없다.

 초등학생이 그린 만화를 형에게 보여줬다. 형은 아무 말 없이 감상도 말하지 않았다. 이게 쓰레기란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 지금 그림을 그리자니 그 길이 너무 멀었다. 더 가까운 길은 없을까? 대체 그 동안 뭘 하고 살아왔나? 나는 20년 동안 얼마나 헛된 시간을 보냈는가?

 형은 의기소침해져 어디로 향할지조차 막막한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책도 읽지 않았다. 반면에 형은 대여점 벽 한 면의 소설책을 모두 읽었다. 형에게 한 페이지 소설을 보여주자 웃어줬다.

 “괜찮네.”


 그 인정이 내게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 형은 아마 모르겠지. 그 한마디가 잿빛구름으로 가득한 어둠 속 빛기둥이 되리란 사실을 형은 생각지도 몰랐을 것이다.

 형이 인정한 뒤로 나는 처음으로 목표를 가졌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학책을 읽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부터 읽다가 너무 힘들어 가독성이 좋은 일문학을 접했다. (국문학이 맞지 않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됐다)

 수준 높은 글을 읽다 보면 그들을 모방하고 싶어진다. 다자이 오사무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공모전에 내려고 단편소설을 썼다. 장편도 썼다. 실력은 단편보다 장편을 쓸 때 많이 올랐다. 원고지 1000장 분량의 장편을 2장 쓰다가 1년이 지났다. 매일 5000자 씩 글쓰기에 매진했다. 이 시기 기억이 하나도 없다. 바보처럼 글쓰기만 했고, 세상 모든 명령으로부터 저항했다. 집 안에 박혀 글만 쓰는 내가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단편을 만들었다. 보여줄 사람이 없다. 이게 잘 된 건지 모르겠다. 형은 이제 바빠서 보지 못한다. 유일하게 있는 친구 두 명은 글에 관심이 없다. 모르는 이들에게 보여줄 자신감도 없다.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어머니였다. 나를 반쯤 포기한 듯 보이던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완성한 단편을 보여줬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모두 읽고 제일 처음 했던 한마디가 이거였다.

 “허송세월 보내진 않았구나.”

 노력해서 얻은 칭찬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객관적이고 감정이 담긴 한마디는 평생 가슴 속을 데워줄 보물이 됐다.     

 그 다음부터 나는 글쓰기라는 강박에서 해방됐다. 1년 사이 몰라보게 성장했다. 중간부터 웹소설이 나랑 맞지 않는단 것을 깨닫고 순문학 형식으로 장편소설을 쓰자 글쓰기는 훨씬 힘들어졌다.

 “어떻게 더 잘 쓰지?”     

 세계고전을 읽고 글쓰기를 반복할수록 그들과 거리는 멀어졌다. 걸어도 걸어도 그들과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자석의 N과 S극처럼 영원히 닿지 못하는 세계일지 모른다.

 옛날의 나라면 도달할 수 없는 마라톤 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인생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간단한 쉬운 길은 없는지 샛길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알고 있다.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길은 가장 돌아가는 길이다.

 문인들과 멀어질수록 그들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처음에 가까워 보이던 위인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째서 그들이 장편 1,2개 단편 몇 장만 남겼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멀어질수록 우주와 가까워졌다. 나는 아직 하늘조차 다가가지 못했다. 있아파트 옥상 정도에 올라왔으려나?

 우주에 접근하리란 한참 멀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이 우주와 가장 가까운 길이라 확신한다.

 소설이 가까워 보였지만, 그림이나 소설이나 둘 다 터무니없이 먼 길이었다. 하지만 이게 가장 빨리 가는 길이었다. 가장 빠른 길은 가장 돌아가는 길이었다. 결승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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