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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될 것인가. 노동이 될 것인가.

같은 일도 상황에 따라 놀이가 될 수 있고, 노동이 될 수 있다.

by 연금술사

저는 지난 주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태안에 다녀왔습니다.

저녁에 갯벌에 나가 간만에 해루질을 했었죠.

간조때 조금 멀리까지 나가니, 땅을 파는 곳마다 조개가 한 가득이었습니다.


다만, 조개가 아직 작아서, 작은 것들은 내버려두고, 큰 조개들만 찾아서 10개 정도 캐온 것 같습니다.


거진 1시간 정도 캐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허벅지에 알이 배겨 다음날 힘들더군요

그래도 너무 즐겁고 좋았습니다.


문득, 놀이와 노동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갯벌에 나가서 조개를 캘 때, 육체적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호미와 삽을 들고 땅을 파는 행위가 재미있었거든요.


조개가 언제 나오려나 기대하면서 들떠있었습니다.

간혹 가다 나오는 조개들은

마치 도박의 슬롯 머신처럼 저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도박에서 사람들이 빠지는 이유가 간헐적으로 보상이 나오는 부분 강화 때문이라고 하죠. 그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간혹 가다 나오는 조개가 그런 간헐적 강화에 해당되었습니다.)


또 갯벌에 오고 싶습니다. 조개 캐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생각을 바꿔서,

제가 만약 이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이라면,

갯발에 나가는 것을 어떻게 여겼을까요?


잠시 고민을 해보니,


매일 똑같은 갯벌에 나가서 호미와 삽을 휘두르는 행위가

단순 육체노동 같아서 하루하루가 너무 지겨울 것 같습니다.


노동으로 생각하니 갑자기 해루질의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문득 나에게 지금 어떤 일이 노동이고, 놀이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브런치 글쓰기 같은 경우,


현재로서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은퇴해서 글쓰기가 제 생계가 되어, 노동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식은땀이 납니다.

글쓰기가 마음대로 잘 안되고, 지은 책이 잘 안팔리면, 그때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동이 아닌 놀이로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니,


네, 노동으로 안만드면 됩니다.

글쓰기로 돈 벌겠다는 생각을 안하면 되네요.


결국 역시 돈이라는 경제적 뒷받침이,

글쓰기를 노동이 아닌 놀이로 계속 남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힘든 노동이라도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사람은 즐겁게 하고,

어떤 사람은 마지못해 대충 합니다.


예컨대, 예전 한 다큐에서 본 어부들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네요.

한 어부는

"오늘 못 잡으면 내일 잡으면 되고,

내일 못 잡으면 모레 잡으면 되지요."


다른 어부는

"오늘 너무 안잡혀서 큰일이네요.

일하는 사람 인건비도 안나오게 생겼어요. 에휴..."


같은 고기잡이를 하고,

둘다 고기를 못잡았음에도

대하는 태도가 다르더군요.


분명 같은 노동이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놀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놀이가 될 것인가.

노동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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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Pearse O'Hallo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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