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향하고 싶은 곳을 조용히 가리켜주는 작은 나침반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조용히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때는 대개 삶이 너무 바빠서 잠시 멈춘 틈에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아주 작은 사건 하나 때문에 오래 침묵하던 물음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돌아보면 그 질문은 갑자기 생긴 것이기보다, 어딘가 얇은 실처럼 오래 걸려 있었던 것 같다. 보지 못하고 지나친 날들이 차곡히 쌓인 끝에 마침내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뿐.
문득 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오늘. 바람 한 줄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작은 부르심 하나에도 오래 잊고 지냈던 내면의 방향이 다시 깨어난다. 사람은 그렇게 때때로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자신을 다시 부르고, 세우고, 방향을 점검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이름 또한 아주 조용하게 말을 건네는 하나의 징표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를 도(到), 빛날 경(炅)’ - 도경.
개명을 하면서 새롭게 선택한 이 이름은 내가 바라보고 싶은 삶의 방향을 품고 있다. 이미 빛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 가까운 이 이름이 좋았다. 아직 닿지 않았기에 더 간절하고, 그럼에도 그곳을 향해 걷는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내 삶은 제대로 방향을 찾은 느낌이었다.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빛을 향해 가고, 언젠가 빛에 이르는 삶을 사는 사람.
그 뜻을 품고 살아가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라기보다 매일의 자리에서 숨을 조금 고르고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걷는 일에 가까웠다. 빛이라는 큰 단어가 때로는 멀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지만, 그 거리마저도 내 삶의 아름다운 일부처럼 느껴졌다. 도달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그 방향 자체가 나를 살게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조용한 위로처럼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이 각자의 이름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불리고 들리는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지가 어렴풋하게나마 담겨 있다. 누군가 정해준 뜻일 수도, 특별한 사연 없이 받아 든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름이든, 우리가 걸어가고 싶은 방향을 새롭게 담아 넣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믿는다.
살며시 마음속에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놓아두는 것.
그 작은 의식 하나만으로도 삶은 전혀 다른 결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이름이 우리를 이끌어주는 방향이 되기도 한다. 당장은 손에 닿지 않는 뜻이라도, 살아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의미가 스며들며 나만의 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 고요하게 아름답다. 매일 수없이 들리는 이름 속에 지향점 하나가 잔잔하게 놓여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아주 잠깐이라도 '진짜 나'를 떠올릴 수 있다면... 일상의 모든 목소리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조용히 묻는 동반자가 되어주는 셈이다. 이름이 한 번 불리는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비추고 싶었는가' 하는 마음의 방향이 희미하게나마 피어오를 수 있다면, 그 또한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선물일 것이다.
어쩌면 이름은 가장 개인적인 기도이자 가장 세속적인 호명이 동시에 될 수 있는 단어인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발음하는 동안 자신이 바라보는 삶의 형태가 아주 은근하게 묻어 나오는 말. 소리 내어 불릴 때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말.
'도경'. 빛을 향해 나아가고, 언젠가 빛에 이르는 사람.
오늘도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언젠가 닿을 그 빛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 마음으로 내 이름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이름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 위에서 아주 작지만 확실한 등불이 된다.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는 날에도,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하는 빛의 자리. 무심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어느 날, 그 빛이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한 줄기 희망처럼 밝혀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조용히 바라게 된다. 당신의 이름 또한 당신을 향해 있는 작은 빛이 되어주기를.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닿고 싶은 당신의 모습이 은근하게 떠오르기를.
당신의 길을 조용히 비추어주는 하나의 작은 나침반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