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스테이크보다는 계란후라이

귀엽잖아

by 메리힐데

나는 솔직히 말해서, 평생 살면서 '정신이 반듯하게 정렬된 날'이 거의 없다. 내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청소서비스 같은게 있었다면 몰라도, 현실은 나 혼자 먼지 수북한 책상과 머릿속을 끌어안고 사는 중이다.


아침에 눈뜨면 나보다 먼저 기상해 있는 건 피곤, 저녁에 눕기 전 제일 먼저 누워서 대자로 뻗는 건 피로다.


그래서 가끔 혼잣말을 한다.

“얘들아… 자리 좀 비켜. 나도 누워야 하잖아.”


근데 얘네 둘, 참 눈치 없다. 내 방을 자기네 하숙집처럼 쓴다. 월세도 안 내면서. 청소도 안 하고 그저 내 머릿속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거 불법점유 아닌가...? 살짝 황당하지만, 동시에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종의 생존전략을 쓴다. 스스로에게 기대를 낮추는 방식인데, 이걸 나는 ‘자기 보호’라고 부른다. 남들은 ‘포기’라고 부르기도 하겠지만... 나에겐 전략이다. 진짜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사는 인간이 아니었다. 매우 계획적이고 싶었던 사람일 뿐. 계획을 세우면 세울수록 내 능력 밖의 일에 집중하게 되고, 일상의 고통은 배가 됐다. 무엇보다 타고난 청개구리 성향이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재능을 발휘했다. 계획은 내게 "꼭 해내야지!"가 아니라, "아.. 하기 싫은데"라는 감정을 부추겼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너도 계획이 다 있구나?"

맞다. 난 계획이 있다.

계획 없이 사는 것.


장점은 명확하다. 안 지킨 계획 때문에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없어진다. 실패라는 부담 없이, 오직 그날 하루만 집중하면 된다. 매일 하나씩 실패하던 삶에서, 이제 매일 적어도 하나는 꼭 성공하는 삶이 된다. 참 웃긴 일이다. 하루를 사는 나는 여전히 나인데 말이다.


뭐 하나라도 계획때문에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건 상당히 효율적인 전략이다.

비장한 각오 0%, 성공률 100%.


요즘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놀랍게도, 이렇게 힘 빼고 살기 시작하니 인생이 조금 재밌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온 후 3분 만에 지갑을 두고 온 걸 깨달았을 때, 예전의 나는 “아… 나 진짜 왜 이러지? 정신 차리자…” 라며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 오늘도 나답네. 귀엽다.”

이 정도 관대함이면 내 꿈의 절반은 이미 성공이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요즘 어떻게 살아?”


나는 대답한다.

“그냥… 내 그릇에 맞게?
내 그릇이 스테이크 접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계란후라이 접시더라.
그래서 요즘은 계란후라이처럼 살아.”


바닥에 살짝 달라붙어 있지만, 그래도 노른자는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은근히 귀여운 인생이다.


물론 뭐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다. 아직도 가끔은 아득하고, 별거 아닌 일에도 심장은 두근거리고, 모든 게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나는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사실.

대단하지 않아도,
조금 덜 해내도,
조금 더 넘어져도.


원래 나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삶이 나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 인생의 최고의 깨달음은 이거다.

“나는 오늘도 나답게 산다. 그리고... 이게 제일 재밌다.”


난 스테이크보다 계란후라이가 좋다. 은근히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으려는 그 조심스러움이 귀엽고, 어쩌다 터지면 마구 섞어 새로운 스크램블을 만들 수도 있는 생명력이 마음에 든다. 밥에 올려도, 빵에 올려도, 단독으로 먹어도 완벽한 식사가 된다. 완숙이냐 반숙이냐에 따라 맛이 천지차이로 달라진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래서 오늘도 난 계란후라이.

이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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