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원하는 두께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지

다시 해보는 시간과 견뎌내는 온도

by 메리힐데

처음엔 방망이를 부드럽게 앞뒤로 밀어야 한다. 힘껏 아래로 누르지 말고. 같은 힘으로 꾸준히 밀면 우리가 원하는 동글납작한 모양이 된다.


원하는 모양이 있을까?

글쎄. 무엇을 담아야 하지?



나에겐 오래된 그릇이 하나 있다. 내가 빚어 만든 그릇. 기분 좋게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가끔가다 하나씩 잘게 갈린 돌 같은 입자가 만져지기도 하는 황토색 진흙 덩어리. 한 뭉터기로 주어진 이 진흙을 작게 떼어도 보고 조물조물 만져 손바닥 위에서 데구르르 굴려보기도 한다.


완벽한 구를 만들고 싶은데 항상 어느 한 부분은 조금 튀어나와 좀처럼 원의 모양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튀어나온 부분을 매만지다 보면 다른 부분이 튀어나와 있는 듯 보이고, 계속 옥에 티를 만지다 보면 이곳저곳이 티 투성이. 오히려 처음의 것보다 못한 못생긴 모양이 된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 호흡을 다듬는다. 다시금 진흙을 떼어 이번엔 하염없이 바라본다.



"넌 어떤 모양이 되고 싶어?"


"나는 밥그릇이 되고 싶어. 사람을 살리는 밥그릇 말이야."


음, 그러면 진흙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



진흙을 조금 더 떼어 두 덩어리를 하나로 뭉친다. 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첫 만남에 생긴 틈을 메꾸기 위해 한참을 손으로 굴려내야 한다. 손에 힘을 풀고 하염없이 두 손바닥을 마주 보고 그 사이 따뜻한 품에 흙을 넣고 데굴데굴 굴린다. 울퉁불퉁 손금에 따라 조금씩 틈이 메워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작은 둘이 모여 좀 더 큰 하나가 됐다.


이젠 밀대차례. 밀대로 중간 부분을 힘차게 누른다. 그러고 나머지 부분을 맞는 두께로 펼쳐본다. '이 정도 힘이면 될까? 좀 더? 좀 덜?' 흠..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또다시 울퉁불퉁. 어떻게 밀어야 일정한 두께가 될까?




"처음엔 방망이를 부드럽게 앞뒤로 밀어야 해. 힘껏 아래로 누르지 말고. 같은 힘으로 꾸준히 밀면 우리가 원하는 동글납작한 모양이 된단다."


조언에 따라 다시 흙을 하나로 뭉치고 살살 밀어 본다. '이 두꺼운 걸 어느 세월에 얇게 편담...?'




"같은 힘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얇아지지 않을 것만 같겠지만, 언젠가는 된단다. 원하는 두께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그릇의 두께가 되었다. 그릇의 높이나 넓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모양이든 밥은 담을 수 있으니까.


이제 내 그릇이 가마에 들어갔다.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도자기가 잘 구워져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깨지지는 않을까?




"도자기들이 내 기대대로, 내 기대 이상으로 예쁘게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도자기들은 손쓸 수 없을 만큼 깨지기도 한단다. 어떤 경우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 뚜껑을 덮고 나면 가마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손을 떠났다는 걸 깨달아야 한단다. 인생에서 나에게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은 고를 수 없지. 같은 가마 안에서 어떤 도자기를 완벽하게 구워지지만 어떤 것이 깨지고 바스러지는 데에는 이유가 없단다."


밥그릇이 잘 완성될 수 있을까? 이 밥그릇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실패작이면 어쩌지...






인생에 보장된 것이 있을까? 내 생명이 예고 없이 주어진 것처럼, 내 죽음도 문득 찾아오겠지? 수없이 많은 기쁨도 슬픔도 주문하지 않은 택배처럼 내 문 앞에 도착해 있는 삶이다. 열기 전까진 기쁨일지 슬픔일지 모른다. 주문한 적도 없는데, 살펴보니 받는 사람이 내가 맞다. 이걸 열어야 할까?


슬픔을 선물로 받고 싶진 않은데, 열지 말까..?


주방 찬장 위에 커터칼을 집어 들었다. 택배상자 양쪽을 스윽, 스윽 긋는다. 중간을 스으으윽 긋고 나니, 상자가 열린다. 기쁨일까, 슬픔일까. 아직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택배 상자를 연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의 손을 벗어난 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슬픔에 부서질 것인지, 슬픔을 딛고 강해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에게 있으므로.


밥그릇이 깨져 나오더라도, 나는 그것에 감사하기를 선택해야지.

밥그릇이 구워지기 전부터 사실 나는 이미, 살아나는 밥이 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이 이미 나를 살리기 시작한 듯하다.




가마 앞에 서 있으면 내 안에 어떤 기대와 어떤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잘 구워질까?', '깨지진 않을까?' 하는. 이 마음이 꼭 인생 같다. 살다 보면 원하는 모양 그대로 단단하게 굳어지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금이 가거나 눈앞에서 깨져 버리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애써 만든 무언가가 한순간에 무너질 때, 우리는 그 실패를 온전히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깨지는 것에도 하나의 과정이 있다. 어떤 것은 잘 구워지고, 금이 가고, 어떤 것은 다시 흙이 되어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다시 해보는 시간'과 '견뎌내는 온도'였다.



우리의 삶도 그 과정을 참 많이 닮았다.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 때도, 뜻하지 않은 상자가 도착할 때도, 선물인지 시련인지 알 수 없는 모든 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날들이 조금씩 나를 빚어온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의 밥그릇은 조금씩 완성되어가고 있다. 흠 없는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내가 닿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균열이 있어도 괜찮다. 때로는 그 틈으로 더 많은 빛이 들어오니까.


그리고 어쩌면 깨진 조각들조차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증거이자, 다음 모양을 위한 재료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예고 없이 도착한 상자를 천천히 열어본다.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안은 채로. 기쁨일지 슬픔일지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를 다시 빚어갈 것임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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