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믿맨에 대처하는 다양한 자세.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도를 아십니까?”
진부한 멘트를 버린 일명 도믿맨들은 상황별 갖가지 멘트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학생이세요?"
“인상이 좋으시네요.”
“혹시 OO은행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자취를 하던 동네는 건대입구역 근처였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라 2인 1조의 도믿맨이 몇 팀 있었고, 나 역시 혼자 걸어가다가 잡히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매번 잡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목표물인 나를 보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미간에 양껏 힘을 주고 강력한 눈빛을 발사하면서 걸어가는데도 매번 잡히는 것이 짜증 났다. 혼자 걸어 다니면서 그들에게 안 잡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무시하고 걸어가도 꼭 한 번을 더 잡는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근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오전 7시에 오픈을 하는 토스트 집이었는데, 주변에서 출근하는 회사원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주 고객층이었고 이른 시간부터 꽤 바쁜 가게였다.
길거리의 음악 소리보다 매미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 여름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뜨겁게 달군 불판 앞에서 토스트를 굽고 있는데, 앞에 도믿맨들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들은 목표물을 정한 듯 맞은편에 걸어오고 있는 한 남성 분을 향해 시선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남성 분은 그들이 아닌 누가 봐도 인상이 좋은 분이었다. 도믿맨들은 짜인 각본대로 남성 분을 지나치는 듯하다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잡았다.
“저기요.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네.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허허.”
순식간의 상황 종료였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도, 2인 1조의 도믿맨 팀도 멍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 다른 민망함을 갖고서.
도믿맨들은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에 민망함을 느꼈고, 나는 그 남성 분의 태도에 스스로 민망함을 느꼈다. 내가 저들에게 잡힐 때면 지을 수 있는 제일 못 생긴 표정을 하고서 신경질을 내곤 했는데, 그분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면서 단 한 마디로 저들을 할 말 없게 만들고 홀연히 가던 길을 가셨다. 그것도 누군가와 스치기만 해도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끈적하게 더운 여름날에, 게다가 시간을 지키느라 아침 식사도 놓쳤을 법한 현대인의 출근길에.
이 얼마나 로맨틱한 자세인가. 이건 연륜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기 보단 사람의 그릇인 듯했다.
바로 며칠 전에 내 앞을 막고 "학생이세요?" 묻는 도믿맨에게 "학생이면 뭐요? 학생 데리고 뭐 할 건데요?" 날카롭게 반응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부끄러웠다. 방금 본 남성 분처럼 예의 있게 거절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아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많이 배워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다시 한번 도믿맨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영화 일을 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였는데, 길을 가던 친구에게 “인상이 좋으시네요. 그런데 혹시 요즘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하며 두 사람이 다가왔다고 한다. 내 친구의 표정은 늘 진지하고, 우환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매사에 심각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 표정이 그들에게는 쉬이 낚을 수 있는 물고기처럼 보였는지 대번에 2절까지의 대사를 쳤다. 친구는 그들이 어떤 의도로 다가온 사람들인지를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네.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반응을 했다.
나는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너는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여.
도믿맨은 자신 있는 표정을 내심 숨기며 친구에게 근처에서 차 한 잔을 하며 이야기하자고 했고, 영화 연출을 전공하는 사람답게 호기심이 많았던 친구는 의심 없는 얼굴을 하고 그들을 따라갔다.
인근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그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도믿맨 팀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은 친구에게 인덕이 워낙 좋은 사람이지만, 조상에게 공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는 적극적으로 동요하며 대답을 했고, 도믿맨은 "조상님께 공덕을 드려야 합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하고 말했다.
영락없이 속아 넘어간 얼굴을 하고 그들을 따라 간 친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일반 한복과는 다르게 어딘지 좀 이상한 한복을 입히더니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피아노 한 대만 둔 작은 독방 같은 곳에 준비된 형형색색으로 사람을 휘두를 것 같은 조잡한 제사상 앞에서 절을 올렸다고 한다. 공덕을 드리는 그 의식이 끝나고 도믿맨은 친구에게 이제 조상님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니 성의를 보이는 의미로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꾸밈이 전혀 없는 얼굴로 "돈이 없는데요." 대답했다. 당황한 도믿맨은 머뭇거리며 고민을 하다가 가지고 있는 돈 조금이라도 내고 가라고 했지만, 친구에겐 정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돈 없다는 사람 보고 도믿맨은 '도를 믿습니까 맨'이 아니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반응맨'인 것처럼 믿을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다음에 돈이 생기면 그때 주시겠어요?" 말하고는 친구를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아마도 신입 도믿맨이었나 보다. 제사상 앞에서 한복까지 입히고 절까지 시켰는데 돈 한 푼도 못 받았으니 관리자급 도믿맨에게 제대로 혼나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박한 대응의 도믿맨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조직에서의 갑과 을의 상황까지 걱정하는 것도 현대인의 몹쓸 병일까..
그래도 무엇보단 잠복근무하듯이 일부러 그 현장을 다녀온 친구가 무사히 내 앞에 있는 것이 감사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친구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제사상이 있는 방에 들어서자 무서워졌지만 궁금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별다른 대꾸 없이 하라는 대로 했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친구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듯이 말했다.
나는 그 후로도 많은 도믿맨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길거리 캐스팅 도전(?)을 받았지만, 그저 내 갈 길을 갔다. 전처럼 잔뜩 인상을 찌푸리거나 굳이 짜증 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