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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l 08. 2021

기축통화②미국의 부상과 영국과의 패권 다툼

1. 브레튼우즈 체제의 시작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내우외환에 둘러싸인 유럽과 달리 대서양 너머 하나의 국가만이 정반대 상황이었다.


미국의 경제적 호황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미국은 어부지리를 넘어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경제적 호황을 맞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군수공장의 작업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전 세계의 금이 미국으로 흡수되어 빨려 들어왔고, 경제의 부흥으로 넘치는 돈을 흥청망청 써대며 사용했다. 


유럽 국가들은 넘치는 부를 즐기는 미국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 중에는 영국도 있었다.


전쟁 전 채권국가에서 전쟁 후 빚쟁이 채무국으로 전락한 영국은 어떻게든 버티어 보려 했다.


아직은 세계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과거의 통치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다 자부하고 싶었지만 이를 바라보고 있는 다른 국가들은 불안해했다. 


어정쩡한 영국과 한 발 물러선 미국


예전 같지 않은 영국의 위상과 새로이 떠오른 미국 사이에서 ‘어느 나라에 줄을 서야 하나’라는 고민은 두 개의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영국을 대신할 줄 알았던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고립주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전쟁이 끝나도 국제 질서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1929년 미국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는데, 월스트리트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한 대공황이었다.


급속한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경제는 눈썰매 타듯 미끄러져 내려왔다.


미국의 불황은 유럽으로 수출됐고, 간신히 한숨 돌리던 유럽의 경제도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공황과 국제적 공조 위기


결국 자국의 산업을 지키고자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한 나라들은 집안 단속에 바빴고 ‘우리의 이익부터 먼저 챙기자’는 이기심으로 국제 무역 공조의 위기를 불러왔다.



미국의 대공황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영국은 이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불황을 극복할 강력한 힘을 상실했다. 이러한 영국의 패권을 누가 가져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삐걱거리며 흔들리는 문짝을 단번에 걷어찬 것이 ‘2차 세계대전’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영국의 몰락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자 보유했던 모든 자산은 물론, 미국에 돈을 빌려 전쟁을 치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눈 녹듯 사라져 버린 식민지와 전쟁사에‘영국 본토 항공전’이라 불릴 정도로 집중적으로 쏟아진 독일 공군기의 폭격으로 자국의 산업시설은 모두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모습. 독일 폭격기가 런던 시내를 폭격하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영국이 가진 패권을 자연스레 승계한 나라가 승전 국가인 미국이었다. 본격적으로 몸을 풀고 링 위에 올라설 준비를 마쳤다.


미국의 부상과 확고한 경제적 위치


미국은 군수물자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금과 유럽 국가가 발행한 채권이 금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흐뭇할 지경이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미국의 패권이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했고 서둘러 인정받아야만 했다.


이를 확고하게 정리하고자 무역 국가의 경제 관련자들을 초청, 협약을 가진 것이 1944년에 체결된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BWS)였다.



브레턴우즈 회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으로 발생된 유럽 국가의 과도한 부채 해결과 전후 복구에 필요한 비용까지 생각하면, 국제 경제를 위해 통화 제도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성이 절실했던 것이다.


브레턴우즈 회의에서의 영국과 미국의 대결


사실상 것은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을 의미했다.


사전에 영국과 미국의 주도하에 준비 작업이 진행되었고, 유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영국 대표로 참여했다.


미국은 모겐소 재무부 장관의 명을 받은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44개국과 이들의 식민지를 포함, 대표 730명이 모였다. 하지만 주도권은 미국과 영국이 쥐고 흔들었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기축통화인 영국의  파운드가 버텨낼지, 아니면 역사의 주인공이 새로 바뀌게 될지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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