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엽 Jul 18. 2021

기축통화(7) 복합적 위기에 빠진 미국2

2. 닉슨 쇼크와 변동환율제의 시작

미국의 금 보유량 감소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으로 금 가격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결국 폭증하는 금값을 잡는 것이 미국의 노력만으로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금 1온스당 가격이 40달러를 넘나들 정도였다. 금값을 잡지 못하면 1 온당 35달러의 교환 기준이 무너지면서 각국의 금태환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달러 가치의 유지를 위한 런던 골드 풀 제도


결국 미국의 제안으로 1961년 11월에 런던 골드 풀(London Gold Pool) 제도가 도입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7개 국가 중앙은행이 참여한 공동단체를 구성하였다.



런던 골드 풀 이후 요동치는 금 값 <출처 : 위키피디아>



금의 가격이 온스당 35.2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금을 시장에 매각하여 가격을 안정화시켜 금 가격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했고 금 가격 안정화를 영원히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프랑스의 반발로 깨진 골드 풀 제도


결국 6년여를 안정적으로 끌고 오던 이 제도는 1967년 프랑스의 반발로 깨졌다.  


프랑스의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은 미국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강제적으로 수출한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즉 미국이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만회하고자 달러를 계속 찍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달러의 수가 늘어날수록 각 국의 외환보유고 가치가 하락되어 전 세계 금융 체제를 교란시킨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의 입장에서는 적자 구조를 메꾸는 길은 달러의 발행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해결하는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선택권을 부여받은 미국


엄청나게 발행된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키거나, 달러의 금태환(금으로 교환)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달러 가치 하락은 기축통화의 신용을 깎아내리는 일이었고 금태환 포기는 2차 대전 후 세계 금융 질서를 지켜온 브레턴 우즈 체제를 종료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기축통화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불변의 원칙이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변동 그래프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시기에 미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추가적인 문제는 베트남 전쟁 중에 발생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찍어낸 달러는 계속 가치가 하락하는 추세였다.


시중에는 넘치는 달러로 물건 가격이 인상되는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량을 축소시키자, 반대로 시중에 부족해진 달러로 경제가 위축되었다.


초조한 닉슨 대통령과 측근인 아서 번즈의 임명


경기가 나빠지고 실업자가 증가하자 닉슨 대통령(Richard Nixon)은 몸이 달았다.



아서 번스 연준 위원장  <출처 : 위키피디아>



측근인 아서 번스(Arthur Frank Burns)를 연준 위원장에 임명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새로이 임명된 번스 위원장은 닉슨의 대선을 지원하기 위해 긴축 정책을 완화하는 동시에 시중에 통화량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경제 구조가 바뀌지 않은 이상, 갑자기 좋아질 수 없는 환경이었고 늘어난 달러의 양만큼 달러 가치는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되면서 수출 상대국의 대외적 압박도 심해졌다.



닉슨 대통령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달러를 금과 교환하는 금태환이 늘어난 것이었다.


결국 최종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결국 1971년 8월 ‘닉슨 쇼크’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전 07화 기축통화(6) 복합적 위기에 빠진 미국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